백암장

by 박노빈


백암장


박 노 빈


닭똥 줘서 잘 키운 따비밭 참외를 백암 장에 내다 팔았다


17번국도 한길 가 가로수 그늘마다 좌판을 벌여놓고 농사지은 것들을 판다


내가 다녀보지 못한 유치원이 있고, 흐려서 쓰기 어려운 크레용을 팔던 문방구가 있고, 형이 앨범 사진을 찍던 사진관이 있고, 명절이면 미어터지는 이발관이 있고, 풀빵장수가 있고, 나무판자를 꿰뚫는 엉터리 종이연필이 있고, 신기료장수와 외짝 고무신이 산더미처럼 쌓인 싸구려 장터가 있었다


자유당 시절의 거물 이정재도 와서 겨루었다는 백암장의 씨름판에서는, 우리 동네 형이 거구들을 쓰러뜨리고 송아지를 차지했다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시는 신사 숙녀 여러분……”라고 마이크로 떠드는, 백암장 천막극장 선전차를 따라가며 우리들은 동네 한 바퀴를 뛴다


회충약을 파는 연극판에서는 놀부의 박에서 갑자기 번쩍번쩍하는 갑옷을 입은 장군이 나와서, 칼을 빼들고 놀부를 밟고 위협한다 경이로운 아름다움이다 무엇 때문인지 그 연극판에서 스타였던 여배우가 자존심에 상처를 받아서, 몇 시간 동안 무대가 열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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