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면....?
어떻게 하면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을 살아갈까?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또 질문했다.
2006년 정신건강사회복지사의 수련을 받고 나서 늘 그 길을 걸어왔다. 그 길은 내게 익숙한 옷처럼 늘 편안했고 다시는 벗지 않을 줄 알았다. 일하는 공간이 다르긴 했지만 늘 내 앞에는 마음이 아픈 사람이 있었다. 중간에 5년의 휴직이 있었지만 복직 후 행운처럼 다시 그 일을 할 수 있었다.
2024년 7월 22일이다. 어제와 같은 동일한 하루를 살았고 퇴근길이었다. 팀장님이 전화가 왔다. 정확히 일주일 후, 정기인사 때 나는 지금까지 해 온 일과 상관없는 곳에서 업무배치를 받고 일을 한다고 했다. 솔직히 이 조직에서 지금까지 내가 해 온 일은 조직 내 사람들이 별로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은 부서였다. 오히려 내가 해보지 않은 새로운 일은 마땅히 해야 하는 중요한 부분이었다. 나에게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날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여느 하루와 다를 바 없는 하루였다.
2024년 7월 29일 새로운 일을 시작했고 그렇게 2024년 끝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 사이에 청소년상담사 3급 자격연수를 마쳤고, 2024년 10월에 임상심리사 2급 실기를 쳤다. 일을 하면서 틈틈이 내가 가야 할 방향을 생각하며 공부를 했다. 진짜 원하는 삶이라면 환경이나 사람이라는 외부 제약을 뛰어넘어 반드시 원하는 삶을 살아내겠지.
12월 초 청소년상담사 3급과 임상심리사 2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자격증을 취득했다고 원하는 삶에 더 가까워진 걸까? 내가 더 나다워지고 더 괜찮은 사람이 된 걸까? 그렇지도 않다. 나는 그냥 그대로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지 않다. 마음속으로 계속해서 자문하다. “네가 정말 원하는 삶이 뭐니?” 그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다가 멈추게 한 문장이 떠올랐다. “지금 이 순간에 머무르세요.”이다.
마음은 현재에 머무르지 않고 꿈과 욕망을 쫓아 저 멀리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에 가려고 한다.
원하는 삶을 살려고 쫓아가다가 정작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잃게 될까 봐 두렵다. 원하고 바라왔던 소망조차도 진짜인지 의문이 든다. 잘 모르겠다. 어쩌면 뜬구름일 수도 있다. 나 자신을 속이고 있을 수 있다. 익숙한 일이었기에 당연시 여겼고 의문을 갖지 않고 걸어온 길일지도 모른다.
갑작스럽게 업무 배치가 바뀌며 뜻하지 않게 서툴고 익숙하지 않은 일을 하고 있다.
늘 익숙하고 능숙하게 해 왔던 일에서 지금은 서툴고 실수투성이의 모습으로 자신감을 잃게 만든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비교하며 슬퍼지기까지 한다.
일하는 공간과 역할이 바뀌면서 나라는 사람은 동일한데 나의 존재가치가 바뀔 수 있음을 뼈저리게 느낀다.
나라는 정체성은 변함이 없다. 다만 상황과 여건에 따라 다른 역할의 옷을 갈아입는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모르겠다.
11월 말에 청소년상담사 3급 자격연수과정에서 “집단상담”수업을 줌으로 참여했다. 그때 내가 하고 싶은 일과 원하는 삶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지금까지 나는 물리적으로 제한된 공간과 업무가 주어져야만 원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 착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교수님의 피드백에서 생각이 바뀌었다. “선생님, 선생님은 그곳에서 그 일을 하는 것으로 스스로를 제한하지 마세요. 선생님은 그곳에서 그 일을 하는 게 원하는 삶이 아닐지도 몰라요. 얘기를 들어보니까 선생님이 원하는 것은 영적인 소통을 하고 싶으신 것 같아요. 자연, 사람, 글을 통해서 의미 있는 소통을 원하는 것 같아요. 자신을 그 조직에 가두지 마세요.”
집단상담을 마치고 나서 동일한 삶에서 새로운 눈을 떴다.
나 자신을 물리적 공간에 제약을 두지 않기로 했다. 어떤 부서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어디서든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곳이 자연이라면 자연 속에서 내면의 울림을 듣는다. 책 앞이라면 책 속에서 저자와 소통을 하고 질문을 한다. 마음이 아픈 사람이라면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의 세계 속으로 함께 걸어 들어간다. 노트북 앞이라면 나에게 혹은 누군가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얀 백지에 써본다.
스스로를 어딘가에 가두지 말았으면 좋겠다.
넌 익숙하고 능숙하게 일을 해도 너이고, 서툴고 실수를 해도 너이다.
네가 어디 있느냐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
그냥 너는 너야.
네가 진짜 원하는 일이라면 어떻게 해서든지 너는 그 일을 하게 될 거야. 하지만 그 일이 너의 욕심이었고 그냥 익숙해서 벗고 싶지 않은 옷이었다고 치자. 그 일을 하지 못하게 될 거야.
너무 서두르지도 조급해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너에게 맞는 옷을 찾아보자. 여러 가지 새로운 옷을 입어보는 것도 괜찮다.
너의 속도로 너의 방향을 찾아보렴.
방황해도 좋고 실수해도 좋아.
집 인근 산 둘레길에서 걸음을 멈추고 바라본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