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작은 움직임이 오늘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3월이었다.
퇴근해서 돌아오면 가족들 저녁을 챙기고 습관처럼 침대로 가서 자기 전까지 유튜브를 보았다.
몸과 마음은 돌덩이처럼 무겁고 아무것도 하고 싶은 의욕이 없었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은 생각에 조금이라도 움직이기로 했다.
결심한지, 3주가 지났다.
회식이나 저녁 약속이 있는 그 주엔 3~4번 아파트단지를 걸었다. 약속이 없는 주는 매일 걸었다. 혼자 걸으면 그녀 자신과 대화할 수 있어 좋았다. 바쁜 일상속에서 들리지 않던 마음 속 음성이 그녀에게 말을 걸어주었다. 주말에는 큰아들과 동네산을 토요일, 일요일 걸었다. 동네산을 큰아들과 거닐 때면 아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할 수 있어 감사했다.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그녀 뒤를 졸졸 따라오며 "엄마, 같이 가." 하던 녀석이 이제는 그녀 앞을 가로지르며 "엄마, 빨리 와."라고 외친다.
나이 먹는 걸 잊고 사는데 문득 아들을 보면 아이는 크고 그녀는 나이 들어가고 있음을 새삼 느낀다.
계절의 변화도 눈앞에서 바로 확인한다. 생강나무, 진달래꽃, 연둣색이 산을 조금씩 물들이고 있다. 매섭던 바람도 어느새 사라지고 봄바람에 그녀의 마음도 덩달아 춤을 춘다. 비로소 걷는 순간 일상의 장면이 ktx속도가 아닌 완행열차 속에서 장면 하나하나를 보고 느끼듯 그 순간을 찍어내고 있다.
나갈 때마다 늘 마음속은 전쟁이다.
평일 저녁 밥을 먹고 할 일이 끝나면 만사가 귀찮아진다. 그 순간 기억해 낸다. 무엇을 기억해 낼까?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열고 나가기까지 한 발자국이 천근만근이지만 걷기를 할때의 즐거움과 마치고 집에 돌아올 때의 가벼움과 후련함이다.
나갈 때마다 갈등하지만 지금까지는 걷기가 이겼다. 내친 김에 30분을 걷고 11층 집까지 계단으로 걸어오는 하체근육 키우기를 선물로 준다.
30분 걷기 한다고 무슨 운동에 도움이 되겠어? 싶은데도 말이다.
돌이켜보면 눈에 띄게 획기적인 변화는 없었다. 그러나 매일 저녁 걷기와 주말 동네산 걷기를 하고 난 후 소소하지만 작은 변화는 있었다.
첫째, 저녁밥 먹고 침대에만 누워있던 그녀가 걷기를 일상의 루틴에 집어넣었다.
둘째, 덤으로 계단으로 11층까지 오르기를 한다. 이것 역시 처음에는 쉽지 않았지만 매일 길들이기를 통해 걷기 30분과 한 세트로 하고 있다.
셋째, 걷고 집에 돌아오면 바로 눕거나 핸드폰을 보지 않는다. 최근에는 매일 동영상강의수업을 들어야 할 게 있어 책상에 앉는다.
넷째, 오늘도 30분 걷기를 해냈다는 작은 성취감이 그녀의 마음을 뿌듯하게 하고 에너지를 준다.
다섯째, 매일 걷기의 작은 움직임이 다른 새로운 움직임을 시작하는데 원동력이 되었다. 글쓰기, 독서, 동영상강의 듣기 등이다.
이렇듯 사소한 일상의 변화가 삶의 풍경을 조금씩 바꿔 나가고 있었다.
너무 숨 가쁘게 살았다. 인생에서 결과와 성취가 다가 아닌데도 무엇이 그토록 에너지가 고갈될때까지 열심히 살려고 하는지 도통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다. 피곤하다는 이유로 몸과 마음에 여유를 주지 않았다. 30분 걷기 하나 한 것뿐인데 일상의 풍경이 달라 보인다.
핸드폰 화면 속에 고정시켰던 삶에서 그녀의 시선을 돌려 핸드폰 밖 일상풍경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오늘은 아들이 시험기간이라 홀로 동네산에 올랐다. 귓가에는 새소리가 가득 채우고 따뜻한 햇살과 연둣빛 세상 그 품에 있다. 둘레길 벤치에 앉아 몇 주 동안 게을리했던 글쓰기를 하고 있다.
걷고 또 걷는다. 몸의 속도에 마음도 맞추고 잠잠히 그녀 주변을 둘러보고 잠깐 멈춰서서 연두색의 새순을 바라보고 활짝 핀 진달래꽃을 응시한다.
홀로 있는 것이 언제부턴가 편안하게 느껴진다. 특히, 산 둘레길 그 어느 길에서 혼자 걸어가는 그녀가 참 행복하게 보인다. 그녀가 고요한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가면 그녀 속에 그녀가 말을 걸어온다.
"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돼. 그냥 네 모습 그대로 살아도 돼. 미리 걱정하지 마. 그냥 오늘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돼."
걷기는 오늘을 살아갈 힘과 내면의 울림에 귀 기울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준다.
산둘레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