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삶을 살고 싶니?

비를 피할 당신의 안식처는 어디인가요?

by 호모 비아토르

비가 억수같이 내린다.

초등학교 3학년 여자아이는 학교건물 앞에서 하염없이 비를 쳐다본다. 친구들은 하나둘씩 우산 들고 마중 나온 부모님과 함께 그 자리를 뜬다. 눈을 껌벅거리며 멍하게 서 있던 그녀는 용기를 내어 두 손으로 실내화가방을 머리에 올리고 빗속으로 뛰어들어간다.


비를 맞고 있는 그녀보다 비를 맞고 뛰어가는 그녀를 다른 사람은 어떻게 볼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불편한 감정을 품에 안고 뛰는 기분이다.

그렇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흠뻑 젖은 그녀는 불 꺼진 집에 홀로 도착한다.


그녀는 그날 이후로 비 오는 날은 좋아하지 않았다. 비가 오면 비를 맞아 온몸이 젖은 기억과 비를 피할 뭔가가 없었다는 게 슬픔으로 와닿았다. 찝찝했고 발이 질퍽했으며 텅 빈 집은 공허하고 온기가 전혀 없었다.


주말에 비소식이 있었다. 결국 비가 내렸다. 나갈까 말까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다. 한 시간 동안 소파에 앉아 고민을 하면서 손과 눈은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보고 있다. 계속 이러다간 주저앉을 것 같아 한 가지 목표를 정하기로 했다. 마트까지 걸어서 장보기를 하는 거다. 장보기도 하고 걷기도 가능한 일석이조이다.


귀에는 신나는 팝송이 흘러나오고 우산을 쓰고 걷는다. 왕복 30분이니 지난번에 목표했던 작은 움직임은 실천한 것이다.

장을 다 보고 아파트 단지로 들어서는데 비를 싫어했던 어린 시절모습이 회상되었다. 한 손에 우산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묵직한 보따리를 들고 씩씩하게 걷고 있었다. 그녀는 더 이상 우산이 없어 비를 흠뻑 맞은 초등학교 3학년 여자아이가 아닌데도 그때의 감정은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가 비 오는 날이면 한 번씩 떠오른다. 그때의 기억은 조금은 슬프고 허전하고 외로웠던 것 같다. 그녀가 필요할 때 있어줬으면 했던 부모님은 맞벌이로 바빴으니 충분히 이해는 하면서 빈 둥지 같은 그녀의 마음은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녀는 이제 우산이 없어 비 맞을 일도 없고 보호자의 손길이 절실한 여자아이도 아니다. 혹시 우산이 없어 비를 맞을 거 같으면 우산을 사거나 빌릴 수도 있겠지. 한편으로는 '비 좀 맞으면 어때. '하는 쿨한 생각마저 든다. 이 사실을 깨달은 것은 정신분석상담을 받았을 때이다.


그 이후부터 그때의 불편했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수용한다. 지금의 그녀는 비를 좋아한다. 사실 어떤 날씨든 다 좋다. 내 마음의 상태에 따라 세상을 다르게 본다는 걸 깨달은 이후부터 외부상황보다 마음을 먼저 보게 되었다. 마음이 슬프면 화창한 날씨도 우울하고 마음이 기쁘면 잔뜩 먹구름 낀 하늘이나 비 오는 날도 마냥 행복하기만 한 법이니까.

깨달기 전에는 출근길 아침에 버스가 늦게 오면 화가 났고, 가족이나 주위사람들이 내 뜻대로 안 되면 남 탓부터 했다. 지금도 그럴 때가 없지 않아 있지만 대부분 외부의 문제와 어려움을 만나면 이 상황을 바라보고 있는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고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할지 생각하는 흐름으로 간다.


어린 시절 그녀는 어쩌면 비가 와서 문제였던 게 아니다. 비가 오는데 누군가 우산을 씌어줄 사람이 없었다는 것과 그 상황에서 느낀 외로움이지 않았을까? 그녀에게 우산은 비라는 문제상황에서 안전한 보호처였는지도 모른다.


우리에게는 모두 인생의 모진 비바람을 피할 안식처가 필요하다. 그녀에게 지금의 안식처는 하나님, 가족, 독서, 글쓰기, 걷기, 의미 있는 소통을 하는 사람이다. 비가 오나 눈이 와도 우리를 지켜줄 보호막이 약하거나 없다고 느낀다면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찾으면 된다. 마음에 안정과 쉼을 주고 회복과 치유가 일어나는 사람, 물건, 장소, 활동 등 어느 것이든 가능하다. 오늘부터 눈을 크게 뜨고 우리의 안식처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

봄비 내리는 어느 휴일 오후에 산책길에서 만난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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