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움직이기로 했어
그녀도 모르게 몸에 힘이 들어간다. 몸과 마음이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는다.
외적으로는 에너지가 넘치고 활력 있어 보인다.
밝고 에너지 넘치고 호탕한 웃음소리를 낸다.
지금 이 표현들은 직장에서 그녀의 모습이다.
그런 그녀가 퇴근해서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밥을 먹고 나면 확연히 달라진다.
활짝 피었던 꽃이 어느새 시든 것처럼 폭삭 시들해져서 소금에 절인 배추보다 더 못한 신세가 된다. 아마도 직장에서의 긴장이 풀리고 피곤한 이유도 있을 것인데 직장과 가정에서의 차이가 크긴 크다. 그만큼 인위적으로 힘을 내려고 애쓰고 있을 수도 있다. 공간에 따라 다른 면을 가진 그녀의 모습을 발견했다. 아마도 집에서의 모습이 진짜 민낯일지도 모르겠다. 컨디션이 좋을 때는 직장과 집에서 어느 정도의 기분 좋은 긴장감과 유쾌함이 비슷하다. 집에서도 아이들과 신나게 막춤을 추거나 아이들이 좋아하는 지드래곤 노래를 어설프게 따라 하며 떼창을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요즘 들어서 직장과 집에서의 모습은 차이가 크다.
더 이상 시들해진 상태를 두고 볼 수 없었다. 작은 움직임을 주기로 했다. 밥을 먹고 바로 침대로 가서 눕지 않기로 했다. 밥을 먹고 현관문으로 가서 운동화를 신고 나가는 것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가 아파트 단지를 걸었다. 귀에는 신나는 팝송이 흘러나왔고 몸풀기 워밍업으로 서서히 움직인다. 처음에는 추위를 탓하며 조금만 걷고 들어가기로 마음먹는다. 얼마나 걸었을까 더워지기 시작하고 음악소리에 신이 나서 신나게 걷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그렇게 하루, 이틀... 연속 4일을 걸었다. 어떤 날은 걷고 또 어떤 날은 느리게 달리기도 했다. 매일 나가기 직전까지는 마음속으로 갈지 말지 갈팡질팡하며 전쟁을 한다.
'새벽부터 나가 지금까지 고생했으니 유튜브 보면서 쉬자'며 스스로를 유혹하지만 그 쉼이 가짜임을 이미 알아버렸기에 속아 넘어갈 수가 없다. 현관문까지 가는 과정은 한 발자국이 천근만근처럼 느껴진다. 그만큼 움직이기 싫은 이유들을 마음속에 되뇌며 한 발자국씩 떼어 힘들게 현관문 앞까지 도착한다. 일단 나가면 그날은 그녀와의 힘겨루기에서 이기게 된다.
30-40분 동안 움직이고 나서 집에 돌아오면 이전보다 몸도 가볍고 기분이 좋다. 바로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침대에 가서 책을 읽으면 최고의 휴식이 된다.
오늘도 그냥 움직이기로 했다. 그냥 움직이는 것이 말로는 참 쉬울 것 같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가장 큰 용기가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또 어떤 사람은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게 가장 쉬울 것 같지만 이 역시 엄청난 도전이고 용기를 요구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녀에게는 그냥 움직이는 게 현재로선 매일 저녁마다 숙제이면서 나를 지키기 위한 한걸음의 전진이라고 생각한다.
이전에 김창옥교수의 유튜브강의에서 자기 자신을 지켜주는 일상 루틴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매일 반복되는 아주 사소한 루틴이 인생의 큰 위기와 어려움을 만날 때 자기 자신을 지켜주는 힘이 된다고 한다. 물론 매일의 삶에서 균형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는 힘이 된다고 생각한다. 매일 새벽 기상과 출퇴근, 가족들 저녁식사 챙기기가 때로는 버겁고 힘들어도 그녀를 지켜주는 루틴이 될 수 있다. 한 가지를 더하면 매일 그냥 움직이기를 통해 체력이 확보되어 독서, 글쓰기를 조금이라도 가능케 한다면 그녀를 더욱더 단단하게 지켜줄 힘을 만드는 셈이 된다.
오늘도 나갈 때마다 마음에 유혹하는 소리가 들리긴 하나 그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기로 했다. 마음에서 울리는 소리에는 진짜와 가짜가 섞여있다. 가짜는 무시하고 진짜 자기 자신을 위한 소리에 귀 기울여보자. 잡음 같은 소리에 굳이 에너지를 뺄 이유는 없지 않은가. 오늘도 자기 자신을 지켜줄 힘을 기르기 위해 힘들게 현관문을 나서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