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삶을 살고 싶니?

아무것도 하기 싫어

by 호모 비아토르

그런 날이 지속됐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나날들의 연속...

의무적으로 해야 할 일들은 하지만 그 이외의 것들은 손 하나 까딱하기 싫은 날들 말이다.


새벽 5시에 기상해서 아직 정신과 육체가 제대로 깨지 않은 몽롱한 상태로 하루가 시작된다. 죽었다 깨어나도 새벽형 인간은 아닌데 직장을 다니면서 강제적으로 꼭두새벽인간으로의 삶을 산다는 건 신기할 따름이고 기적과도 같은 일상이다.


먹고살기 위해서라면 부엉이형이 하루아침에 새벽형도 될 수 있는 법이다.

그게 버겁고 지칠 때가 있는데 그때 몸에서 신호를 보낼지도 모른다.

주 5일 새벽 5시 기상, 퇴근 후 저녁식사 준비

주말에는 푹 자고 7시 기상, 일주일 동안 밀린 집안일과 앞으로 한 주 동안 먹을 밑반찬과 국 만들기...

그 틈사이에 혼자 동네산도 걷고 싶고 도서관 가서 책도 빌려야 되고 또 그 틈틈사이에 책 읽고 글도 쓰고 싶다고 하니 지칠 법도 하다.


남편은 이런 나에게 피곤하게 산다 하지만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다 해야 하기에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해야 할 일로만 가득한 일상은 숨 쉴 구멍 없는 공간에 갇힌 느낌이 든다.

피곤하고 지쳐도 하고 싶은 일을 한다. 그러면 내가 살아있다는 존재의미를 찾는다.


유연근무로 오후 4시 퇴근하면 가족들 저녁을 챙긴다. 요즘따라 저녁밥을 많이 먹는다. 진짜 배가 고픈 허기인지 심리적 허기인지 알 수는 없지만 간단하게 차려진 밥, 밑반찬, 쌈야채만으로도 이미 밥 두 공기를 거뜬히 먹어 치웠다. 고지혈증 약을 먹고 있어 탄수화물을 조심히 하란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일단 배의 포만감을 느낄 때까지 먹는다. 이렇게 배가 부르고 나면 남편에게 나머지 설거지 뒷정리를 인계하고 마냥 침대로 고속질주해서 눕는다.


2월 말까지는 그나마 저녁식사 후 책도 읽고 글도 썼는데 3월부터 갑자기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다. 지친 걸까? 마음은 하고 싶은데 몸이 안 따라와 준다는 느낌일까? 핑계인지 회피인지 진짜 몸이 보내는 신호인지 알쏭달쏭하다. 확실한 건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음은 질주하고 싶은데 몸이 멈추고 싶다면 일단 마음을 몸의 속도에 맞춘다. 경험에서 나온 선택이다. 이전에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고 마음의 속도대로 가다가 병을 방치한 적이 있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지 않기로 한다.

모든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단지 지금 당장 그 이유를 모를 뿐이다. 주말에도 계속된다.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을 하고 또 눕는다. 안 자던 낮잠까지 잔다. 먹으면 또 눕는다.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닌데 왜 이러지? 싶다가도 몸이 시키는 대로 눕는다. 솔직히 계속 누워있는다고 이전의 피로감이나 무기력감이 해소되는 것도 아니다.


일요일 예배를 마치고 또 누우려는 찰나에 첫째 아이가 동네산을 같이 가기로 한다. 평소 홀로 등산하는 동네산도 귀찮아진 상태였다. 첫째 아이의 동행으로 그나마 강제로 몸을 이끌고 산을 향한다. 가기 전에는 그렇게 나가기 싫고 눕고만 싶더니 막상 등산을 하고 내려오니 몸과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 순간 머릿속에서 번뜩하며 스치는 문장이 있었다.

하기 싫고 귀찮고 눕고 싶을 때 '그냥 하자'이다.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그냥 하는 거다. 막상 하니 하기 전에 몸과 마음이 달라져 있음을 발견했다. 뭐 거창할 필요도 없다. 많은 걸 하지 않아도 된다. 일단 작은 것이라도 하자! 더 자세히 표현하자면 '일단 움직이자! 행동하자!'


남편은 이런 나를 며칠 동안 지켜보며 걱정했다. 하고 싶은 걸 하려면 건강부터 챙기라는 조언을 한다. 나의 성향을 잘 알고 있기에 해주는 따끔한 충고라 받아들인다. 어떤 한 가지에 집중하면 마음과 행동이 앞서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집중할 때가 있었다. 오히려 침대에 누워있는 나에게 왜 계속 누워있냐는 말보다 어디 아픈가 싶어 걱정의 눈초리를 보낸다.

한때 "에너자이저"로 일컬었던 사람인데 부쩍 침대에 눕는 횟수가 늘어나니 걱정할만하긴 하다.

남편의 말에 동감한다. 건강해야 뭐든 할 수 있다.

마음의 울림이 찾아왔다. 이제 퇴근 후 밥양을 줄이고 일단 나가서 30분은 걷든 느리게 달리든 해보기로 했다. 몸에 무리를 주지 않는 선에서 해보는 것이다.

누적된 피로감과 무기력감이 올 때 계획을 세우는 것조차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충분히 쉬었다고 생각 드는데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하는 게 답이다. 그게 무엇이 됐든 지금의 피로감과 무기력감에서 벗어나 활력을 줄 수도 있다.


나는 움직이기로 했다. 걷기든, 달리기든, 등산이든, 실내에서의 막춤이든...


중력의 법칙이 강력하게 작용하는 어느 날, 온몸이 지구 중심으로 쏠려 들어갈 거 같고 잔뜩 물 먹인 스펀지처럼 힘달구지가 하나도 없을 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그것이 뭐가 됐든 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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