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고 계시죠?
음악선율 같은 새소리가 내 귓가에 들린다. 고요하다. 때때로 까마귀소리조차 거슬리지 않고 산속에 조화를 이루며 들린다.
집 근처 둘레길을 걷는다.
걷고 있는데 잠깐 내 눈이 멈추는 곳이 있다.
2023년 1월이었다. 모야모야병을 앓고 있던 교회 집사님이 세상을 떠났다. 2022년에도 그 병으로 중환자실에 계시다 다시 회복한 적이 있기에 이번에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거야.'라는 마음으로 기도하며 기다렸다.
그러나 삶과 죽음은 우리의 손에 있지 않았다.
한참 젊은 40대의 나이이고 나보다 한 살 어린 집사님을 더 이상 못 본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2025년 2월 말 어느 날 홀로 둘레길을 걷는데 그녀가 떠올랐다.
한참 휴직 중에 오전 오후 가릴 것 없이 동네산을 제집 드나들듯 올랐던 때가 있었다.
2020년? 2021년? 정확히 기억은 안 난다. 내 얘기를 듣던 집사님이 자기도 같이 등산을 하고 싶다고 했다. 평소 관절이 좋지 않았음에도 100M의 낮은 산이라 괜찮을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그녀와 산을 오르고 둘레길을 걷고 바로 저 벤치에 앉아 점심밥과 커피를 마셨다.
당시 무급휴직이었고 외벌이에 돈이 늘 부족했던 나는 집에서 유부초밥과 간단한 과일, 믹스커피를 준비했다. 그녀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마음이 여리고 순수했고 다른 사람에게 싫은 소리 한번 할 줄 몰랐으며 그저 인생의 무거운 짐을 품고 또 품으며 가슴앓이 하듯 사는 것처럼 보였다.
시간이 지났고 그녀는 이 땅에 없지만 그 장소는 여전히 내 일상 모퉁이에 자리 잡고 있었고 지날 때마다 그녀를 추억하게 된다.
집사님... 잘 지내고 계시죠? 저도 잘 지내요.
천국에서 편히 쉬고 계세요. 저도 언젠가 갈게요.
눈물이 흐른다.
누가 볼세라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다시 가던 길을 걷는다.
그녀가 지금 내 곁에 없지만 그녀의 추억은 내 마음속에 깊이 남겨졌다.
2022년 8월 복직을 코앞에 두고 차 한잔을 마시며 다가올 변화의 두려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2022년 11월 복직 후 집 근처로 직장이동을 했을 때 자기 일처럼 기뻐해주며 어려운 형편인 줄 뻔히 아는데도 자신이 꼭 맛있는 차를 사주겠다며 도서관 근처 카페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이후 오며 가며 간단한 인사는 했지만 "다음에 시간 될 때 차 한잔 해요." 하며 지나쳤다. 그때는 정말로 다음이라는 시간이 올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얼마나 큰 착각이었고 한 치 앞도 모르는 인생의 한 부분일 줄을...
그 이후 그녀와 나의 '다음에'라는 단어는 사용될 수 없는 단어임을 뒤늦게 깨달았다.
우리 인생에 '다음에'라는 말을 확신할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할 수 없다. 다음을 기약한다는 건 어쩌면 지킬 수 없는 약속 같은 거다. '오늘 지금 이 순간' 외에는 확실한 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가 오늘따라 보고 싶다.
그녀를 통해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그녀는 나에게 그리운 사람이고 보고 싶은 사람으로 기억된다.
나는 그 누군가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
오늘의 관계가 영원하지 않음을 기억하자.
내가 떠나든 내 곁에 누군가가 떠나든 언젠가는 다 떠나가는 존재다.
우리가 붙잡을 수 있는 존재가 있을까?
그저 오늘 이하루 내 곁에 머무는 사람들과 함께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것이 최선일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내가 이 땅을 떠난 후 누군가 나와 함께한 흔적을 보고 '잘 지내고 계시죠. 보고 싶어요.'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그 소리를 들을 정도면 내가 유명인이 아니고 부자가 아니어도 나름 스스로 이 세상 잘 살았다라고 말할 자신은 있지 않을까?
"잘 지내고 계시죠? 보고 싶어요. 우리 다시 만나요." 남은 사람이 떠난 사람에게 해주는 최고의 말다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