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삶을 살고 싶니?

우물 안 개구리야?

by 호모 비아토르

참 오랜만에 2박 3일 교육을 다녀왔다.

교육 시작 전부터 낯선 곳에서 헤매고 다녔다.

셔틀버스 장소를 엉뚱한 장소에서 기다렸고, 찾지 못해 낯선 사람에게 다가가 셔틀버스 장소를 묻기도 했으며 이상한 대답을 듣고 이건 아니다 싶어 담당자에게 연락을 했다. 결론은 엉뚱한 곳에서 기다려 버스를 놓칠 뻔했다. 출발시간 5분을 남겨두고 겨우 셔틀버스를 탔다. 차 안에서 나 말고 유일한 낯선 동승자와 통성명을 하고 어제 알고 지낸 것처럼 대화를 나눴다. 알고 보니 2015년 즈음 내가 일했던 기관에 실질적인 심리치료프로그램 진행을 보기 위해 일주일 동안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분은 기억을 잘 못하는 듯 보였지만 목소리와 말투에서 어딘지 낯설지 않고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익숙함이 있었다. 그렇게 1시간을 더 가서 교육 장소에 도착했다. 이른 새벽부터 기차를 탈 생각에 잠을 설쳐서인지 숙소에 짐을 던져놓고, 비몽사몽간에 교육에 들어갔다.


피곤했지만 긴장을 한 탓에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상담이론별로 돌아다니며 기존에 알고 있는 이론과 잘 모르는 이론들을 집단원들과 이야기 나눌 수 있어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낯설고 새로운 분위기와 사람을 만나면 긴장되면서도 설렌다. 오랜만에 만난 선생님도 반가웠고, 새로운 얼굴들과의 첫 대면도 좋았다.


‘우물 안 개구리’라는 말이 있다. 장자의 추수 편에 나오는 이야기로 경험이 적어서 보고 들은 게 별로 없거나 저만 잘난 줄 알고 주변에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자기가 마치 세상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1일 차.. 2일 차.. 3일 차를 지나며 나를 향해 떠오르는 문장이 있었다.

'우물 안 개구리야.'

짧은 교육일정 속에서 몇몇 사람들과의 소통을 통해 나는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지금까지 알고 있는 것이 세상의 전부 인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그래서 늘 우물 안에서 아등바등하며 정답을 내놓으라며 재촉했던 건 아닐까?


현실적인 한계 안에 나를 가두고 한계 안에서 나를 발견하는데 집착하고 욕심을 내려고 했던 건 아닐까? 현실적이고 안전한 한계에서 안주하려고 했던 건 아닐까?

미지의 세계 혹은 모험을 좋아한다고 하면서 정작 안전을 전제로 한 모험을 시도하려는 건 아니었을까? 안전이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기본전제가 안전이 되면 아주 제한된 모험만 허용하게 된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해결되지 못한 불안과 두려움이 내 발목을 잡고 있는 건 아닐까?


우물 밖으로 나갔으면 좋겠다. 더 이상 우물 안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살고 싶지 않다. 우물 밖으로 나간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된다며 불평하고 낙심하며 안 되는 방향으로 시선을 고정하지 않는 것이다. 안 되는 것이 있다면 반대로 가능한 것이 있다. 지금 이곳에서 안 된다면 가능한 곳을 찾으면 된다. 이곳에서 프로그램 진행이나 상담을 제대로 하는 게 힘든 환경이라면 지역사회에 있는 기관에 접속하면 된다. 상담 관련 공부를 더 하고 싶으면 대학원을 가면 된다. 상담자로서 자신을 성찰하고 돌아보고 싶다면 나 자신이 내담자가 되어 상담을 받으면 된다.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지만 책을 출간하고 싶으면 출판기획서를 만들어서 투고메일을 보내면 된다.


우물 안에서 답을 찾으려고 하지 말자. 이번 교육을 통해 우물 안이 아닌 우물 밖을 향해 시선을 돌리게 되었다. 시선을 우물 밖으로 돌렸으나 결과가 되고 안되고는 나중 문제이다. 해보기도 전에 판단하는 것도 이르다. 일단 우물 밖으로 나가보는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보고 느낀 경험이 전부가 아니다. 지금 내가 보는 시선은 과거와 현재까지의 축적된 경험의 결과이다. 나의 시선은 지금 이 지점보다 더욱더 확장되고 깊어지고 넓어져야 할 것이다. 그래야 인생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 테니까. 현재의 시선에 안주하고 싶지 않다.

낯선 세계의 초대장이 눈앞에 있다. 낯선 세계의 초대장을 무시하고 익숙한 삶에 그대로 살겠는가? 불안하고 두렵지만 낯선 세계의 초대장에 응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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