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삶을 살고 싶니?

내 통제권 밖에 있는 '운전'

by 호모 비아토르

20대 초에 1종 보통으로 운전면허증을 땄다. 운전면허증을 취득하게 된 사연도 웃기다. 어느 날 친구가 "우리 할 게 없으면 배추장사라도 해야 되지 않겠나? 우리 1종 운전면허 따자." 그녀의 말에 웃기면서도 진짜 할 게 없으면 장사라도 해야지 싶은 생각에 필기시험을 쳐서 합격하고 바로 친구와 같이 새벽반 사설 운전학원에 등록했다. 그 당시 무슨 생각이었을까? 아침잠도 많았던 내가 아직 해가 뜨기 전 어스름한 새벽에 운전대를 잡았다.


1톤 트럭은 내게 예측하기 힘들고 가까이하기에 먼 당신처럼 느껴졌다.

선생님은 늘 클러치, 반클러치를 외쳤고 나는 수동기어 작동과 발바닥 위치를 어디에 놓을지 얼마의 세기로 누를지 허둥지둥하다 볼빨개진 상태로 수업을 마쳤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렇게 어렵게 그리고 간신히 62점으로 운전면허 실기에 합격했고 시험을 본 선생님은 연습을 많이 하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장롱 속 어딘가에 박혀있던 운전면허가 어쩔 수 없이 세상밖으로 나와야 하는 시기가 되었다.

2010년 정신보건센터에서 정신장애가 있는 분들과 정기적인 재활캠프를 가는 업무를 맡았다. 미리 사전답사를 다녀오고 재활캠프에도 운전대를 잡아야 했다. 여러 지역을 다녀야 하는 불가피한 상황 속에서 운전대 앞에서 아기가 되어 버렸다. 봉고차를 몰기 전부터 오는 긴장과 불안은 말로 표현 못할 정도로 최고조였다. 술도 마시지 않은 맨 정신임에도 내 정신으로 하는 건지 정신 나간 상태로 하는 건지 혼돈이었다.

다행히 운전 중 사고는 없었으나 가만히 있는 벽과 스킨십을 해서 봉고차에 흠집을 냈다.

운전 잘하는 동료가 있을 때면 운전대를 부탁했고, 할 수만 있다면 운전대로부터 도망가고 싶었다.

그래도 그때는 재활캠프 혹은 사전답사라는 일정한 주기에 한번 정도라 운전대와 매일 만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2013년 7월 말.

집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취업을 했다. 이때부터 문제는 시작되었다. 매일 직접 운전대를 잡고 운전을 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드디어 매일 악몽을 현실에서 경험해야 했다. 직장은 지하철이 없고 버스도 자주 없는 외진 곳이라 자차 없이는 출퇴근이 불가능했다.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운전대를 잡았다. 출퇴근을 할 때마다 정말 땅에 주저앉아 울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자동차를 등에 지고 달려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현실은 그럴 수 없었다. 내 손으로 시동을 켜고 운전대를 잡고 직장까지 가야 했다. 아주 느린 거북이속도로 가다가 갓길에 비상 깜빡이를 켜고 다른 차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몇 개월이 지났을까? 늘 가던 길은 차선변경 없이 일정한 선을 따라가듯 익숙하게 가고 있었다. 언제부턴가는 등에 차를 업고 가고 싶다는 생각은 마음속에서 잊혀 가고 있었다.


지금도 지하철로 출퇴근을 하지만 가까운 도서관, 교회, 마트는 자동차를 운전해서 다닌다. 늘 가던 길은 익숙하기에 별 어려움 없이 운전대를 잡는다.

문제는 지금부터이다.

늘 익숙하던 길은 운전이 가능한데 처음 가는 길은 절대로 가지 못하는 것이다.

2025년 2월 11일 나는 충북 진천에 교육을 가야 했다. 집에서부터 운전대를 잡고 가면 3시간 30분이 걸린다고 한다. 한 번도 직접 운전을 해서 가보지 않은 길이었다. ktx를 타면 집에서 출발역까지 남편이 운전을 해서 데려다줘야 했고, 도착역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1시간 정도 시간이 소요됐다. 교육을 마치고 나서도 대기시간이 길었다. 이 모든 것을 감안한다면 당연히 직접 운전을 해서 가는 것이 맞았다.

그런데 나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며칠의 고민 끝에 나는 익숙하고 불편한 방법을 선택했다. ktx를 타고 교육을 갔다.


20대 초부터 시작된 운전대와의 관계는 나에게 숙제이다. 비록 지금은 익숙한 길에서는 운전대와 친밀한 스킨십을 하지만, 새로운 길 앞에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주 멀고도 먼 관계가 되어버린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예측할 수 없는 통제 상황 밖의 불안함을 견디지 못하고 있었다. 드러난 문제가 새로운 길을 운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알았고 인정하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숙제이다. 나도 언젠가 바다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운전대를 잡고 훌쩍 떠나보고 싶다. 혼자 떠나는 드라이브가 쾌 괜찮을 것 같은데...


새로운 길을 가기도 전에 떠오르는 불안한 생각은 나의 발목을 잡고 있다. '혹시 내비게이션을 켜고 가는데 길을 잘못 들어서면 어떻게 하지? 겨울 빙판길에 차사고가 나면 어떻게 하지?' 거기에 더해 휴대폰 예비 배터리를 챙기면서도 '운전 도중 핸드폰 배터리가 다 소진되어 내비게이션 작동이 안 되면 어떻게 하지?'

정말 별별 생각이 다 떠오른다. 실제로 일어나지 않을 일들 말이다. 실제로 일어나지 않을 걸 알면서도 그 생각과 감정에 사로잡혀 옴짝달싹을 못한다.

이런 글을 쓰면서도 새로운 길을 운전하라는 미션이 주어지면 나는 여전히 무섭고 두렵고 공포스럽다. 새로운 길을 운전하는 것에 대한 예기불안이 상당히 높다.


지난주 가족들과 함께한 운문산 등산에서 첫째 아들이 너무 힘들다며 도중에 등산을 포기했다. 그렇게 집에 그냥 오나 했는데 첫째 아들이 영남알프스 7개의 산 중 몇 개의 산만 가면 완등인데 아깝다며 다시 운문산에 도전하고 싶다고 한다. 남편은 격주 근무라 나보고 첫째 아들을 데리고 운문산에 가라고 제의를 했다. 아뿔싸, 보조석에 타서 운문산 근처까지 갔는데 나보고 직접 운전을 해서 가라는 말인가? 갑자기 머리가 아찔해졌다. 나는 언제쯤이면 새로운 길에 대한 아기딱지를 뗄 수 있을까?


"그러기를 몇 달, 다음 날 어딘가로 차를 몰고 갈 일이 있으면 걱정이 돼서 전날 밤을 꼬박 새우곤 했던 나는 어느새 차가 없으면 불편해서 일상생활을 못 할 정도로 운전을 즐기게 돼버렸다. 차를 막 샀을 때 주변 사람들은 내게 "앞으로 다른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고들 말했지만 온전히 너무나 무서웠던 나는 내게도 그런 날이 오게 될 것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날'은 의외로 너무나도 빨리 찾아왔다. "

그림이 그녀에게, 아트북스, p40


나도 운전대의 무서움을 극복하고 싶다. '그날'이 의외로 빨리 찾아왔으면 좋겠다. 진심이다.

인생은 예측할 수 없으나 그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글은 쓰면서 정작 현실에서는 운전대를 잡았을 때의 불확실성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생각과 감정에 압도되어 운전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운전에 대한 고백을 쓰면서 나도 새로운 길을 운전하고 싶다는 의지를 다지게 된다.


누군가에게는 별일 아닌 문제가 그 누군가에는 아주 큰 고민일 수 있음을 발견한다. 오늘 운전대의 에피소드를 통해 나에게는 별일 아닌 일이 누군가에게는 큰 문제일 수 있고, 나에게는 큰 문제가 그 누군가에게 별 일 아닌 일일 수 있다. 그렇기에 누군가의 문제를 내 기준으로 터부시 하지 말아야 하고, 그 어려움을 귀 담아 듣고 공감해 주는 마음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살아간다. 그 문제는 사람에 따라서 드러나기도 하고, 감춰져 있기도 하다. 단지 대다수의 사람들은 아무 문제없는 듯 어느 정도의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그러나 안전한 상담 장면으로 들어오면 그들이 감추고 숨겨왔던 어려움이 얼마나 그들 삶에 치명적이고 불편했는지를 토해내듯 이야기할 때가 있다.


나 역시 아직 새로운 길 앞에서 운전대와의 스킨십을 극복하지 못했다. 나는 부분적으로 취약하고 불안이 높으며 비합리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 문제 앞에 도망치기보다 언젠가 '그날'이 빨리 찾아와 새로운 길을 능숙하게 운전하는 나 자신을 상상하며 '통제권 밖의 운전'의 해피엔딩을 기대해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어떤 삶을 살고 싶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