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삶을 살고 싶니?

엄마, 어디야?

by 호모 비아토르

그녀는 오늘 유연근무를 하지 않고 정시퇴근이다.

오후 5시가 넘어선 시각

핸드폰에서 울귀요미라는 단어가 뜬다. 둘째 아들이다.

핸드폰 너머 아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엄마, 어디야?"

"오늘 엄마 좀 늦어. 7시 넘어서 도착할 거 같아.

나 배고픈데... 집에 먹을 거 없어?

제육볶음하고 순두부찌개 있고 밥솥에 밥 있을 거야.

제육볶음은 안 당기고 순두부찌개하고 밥 먹을래.

알았어. 이따 보자! 귀요미

응, 엄마. 사랑해. 고마워. 축복해."


어느덧 초등학교 5학년이 된 아들은 스스로 밥을 챙겨 먹는 나이가 되었다. 엄마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던 아이였고 그녀 눈에는 여전히 아기인데 이제는 엄마가 없어도 밥을 차려먹는다. 혼자 집에 있으면 무섭다고 집에 있지 못하던 아이는 이제 집에서 혼자 tv를 보거나 게임을 한다.


울귀요미는 그녀가 지어준 둘째 아이 별칭이다.

둘째라 애교도 많고 마냥 귀엽고 애정표현에도 적극적이다. 반대로 싫은 감정표현도 정확하다. 퇴근해서 집에 들어서면 그녀는 울귀요미를 외친다. 그러면 귀요미는 두 팔을 벌리고 그녀를 안아준다. 그녀는 귀요미 앞에서 코맹맹이소리를 내며 한껏 애교를 부린다.


"우리 귀요미 어느 별에서 왔어요?

귀요미는 말한다. "감자별요."(감자는 그녀의 별명이다.)

세뇌교육의 결과로 자동적으로 나오는 단어이다.

연이어 그녀는 말한다.

"엄마가 하루 종일 귀요미를 얼마나 보고 싶은 줄 알아요?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


게임을 하고 있는 아이에게 다가가 두 팔을 벌리면 꼭 안아준다. 조건 없이 아낌없이 안아줄 수 있는 모자관계가 아닌가. 어릴 때 더 열심히 안아주고 사랑한다 표현해져야겠다 다짐했다. 아이를 품에 안고 있으면 그녀를 바라봐주고 사랑해 주는 아이가 있다는 게 신기하고 감사하고 기적과도 같은 일 같다. 여유가 없던 아기시절에는 몰랐던 감정들이 아이들이 좀 크고 나니 더 애틋하고 사랑스러울 뿐이다.

언젠가 때가 되면 이별해야 하는 관계인걸 알기에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하다. 지금은 그녀 품에서 그녀의 보호를 받고 자라지만 때가 되면 독립해서 그들만의 인생을 살아가겠지.


아이들이 잠잘 때, 등교할 때마다 암호처럼

"사랑해. 고마워. 축복해. 엄마아들로 태어나줘서 고마워."라고 말한다.

이제는 이 문장이 그녀만의 언어가 아닌 우리 가족의 언어가 되어 늘 자주 쓰는 문장이 되었다. 두 아들이 부모에게, 부모가 두 아들에게 자주 표현하는 문장이다. 마르고 닿도록 사랑의 표현을 해주고 싶다. 사랑을 받아본 아이들이 사랑을 할 줄 아는 아이로 큰다. 그녀는 어린 시절 사랑의 표현을 많이 받고 자라진 못했지만 늦게나마 경험과 성찰을 통해 용기 내어 친정부모님께, 남편에게, 아이들에게 표현한다.


그녀는 덩벙거리고 일상에서 자주 뭔가를 놓치는 완벽하지 못한 엄마이다.

맞벌이를 하면서 아이들 준비물은 빠트리고 학교종이 알림장을 읽지 못해 숙제를 놓칠 때면 그녀 자신에게 화가 나고 속상했다.

지금도 때때로 그 상황은 연출된다.

'어쩌겠어? 이미 놓친 것을 다음부터는 잘 챙겨야지.'

스스로의 마음을 다독이고 자책하지 않기로 했다.


이전처럼 아이들이 그녀를 자주 찾거나 껌딱지처럼 붙어 다니지 않지만 여전히 엄마로서 아이들이 필요할 때 그녀에게 손을 내밀어주는 아이들이 고맙다.

"엄마, 어디야?" 이 말은 엄마가 필요한데 눈앞에 보이지 않을 때 위치 확인을 하는 신호이기도 하다.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신기하다. 하루하루 아이들의 모습이 다르다. 그 모습이 신기해서 쳐다보고 있으면 왜 쳐다보냐고 하지만 그녀는 말한다. "그냥. 좋아서. 언제 이렇게 컸는지 신기하다. 너는 안 신기하니?"


오늘도 아이들은 자라고 있다. 동시에 그녀는 늙어가고 있다. 슬프지 않다. 자연의 섭리고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니까.

주말마다 시끄럽고 부모 곁에 붙어있던 두 아들은 집에 온데간데없고 그녀와 남편만이 덩그러니 남아있다.

큰아이는 시험기간이라 영어학원에 보강수업을 들으러 갔고 둘째 아이는 친구들과 실내동물원에 갔다. 영상통화를 하며 동물원 모습을 보여주고 자기 할 일이 끝난 듯 바로 전화를 끊는다.


서서히 멀어져 가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그녀의 시간이 생겨 좋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허전하고 적적하기도 하다.

그런데 한마디로 표현하면 좋다.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성장하고 어른이 되어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는 게 감사할 뿐이다.


네가 내가 아니고, 내가 네가 아니기에

언젠가는 너는 너로서 나는 나로서 각자의 정체성을 가지고 각자의 몫을 살아내야겠지.


그녀는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기대하고 지지하고 응원한다.

설사 아이들이 살면서 넘어지고 힘든 순간이 온다 해도 그들이 필요할 때 "엄마, 어디야?"를 외치면 슈퍼맨처럼 날아와 그들의 안전기지가 되어줄 수 있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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