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다고 느꼈던 일상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4월 중순을 지나 4월 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계절과 상관이 없는 듯 강한 바람에 옷매무새를 더 여미어 가며 경량패딩점퍼를 꺼내 꼭꼭 싸매고 있다. 2주 넘게 감기와의 사투로 걷기를 하지 못했다. 조금은 감기증상이 나아졌음을 가벼워진 몸상태로 느낄 수 있어 오늘은 도서관을 차가 아닌 그녀의 두 발로 걸어서 가보기로 결정했다. 반납할 책을 챙겨 가방에 넣고 도서관카드를 챙겨 길을 나선다.
사람들은 4월의 꽃시즌을 기억하지 못하는 듯 경량패딩 혹은 긴 옷을 입고 다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여기저기 각자의 목적지를 향하여 친구들 혹은 가족들과 같이 움직이는 모습이 보인다. 경량패딩을 입어서인지 조금 걷다 보니 더워지기 시작한다. 등에서 땀이 난다. 안 되겠다 싶어 지퍼를 내리고 바람이 조금은 몸속으로 들어오도록 허락해 주니 몸안이 시원해졌다. 집에서부터 도서관은 걸어서 약 20~30분 정도 걸린다. 왕복으로 따지면 넉넉하게 1시간 정도 소요된다.
혼자 걷기를 할 때 가장 좋은 점은 주변을 천천히 탐색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오늘도 그녀는 활짝 핀 영산홍들에 여러 번 발걸음을 멈추었다 떼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핸드폰 카메라 기능을 열어 찍고 또 찍으며 영산홍을 눈에 담고 거기에 더 욕심내어 사진 속에 영원히 남기려 노력한다.
어느새 도서관에 도착하여 책을 반납하고 신간코너에 가서 책을 구경하고 그 가운데 세 권의 책을 대출받는다. 매주 일요일 오후에 도서관에 와서 책을 반납하고 대출하는 일은 그녀의 주말 루틴 중 하나이다. 그녀는 도서관에 와서 새책이든 헌책이든 제목을 보고 목차를 훑어보며 책구경하는 것을 좋아한다. 마치 여성들이 옷 가게에 들어가서 어여쁜 옷을 천천히 구경하고 자신에게 맞는 옷을 찾는 것처럼 그녀는 책을 찾을 때 그런 모양새이다.
도서관에 나와 다시 왔던 길을 걷는다. 오늘은 이상하게도 왔던 길을 똑같이 가고 싶지 않았다. 어느 책에서 봤던 문장에서 일상에서 늘 가던 길을 벗어나 가보지 않은 길로 가보라던 작가의 말이 떠올랐다. 그럴 때 일상에서 새로운 발견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때마침 새로운 발견을 하고 싶어 진 걸까? 왔던 길이 아닌 새로운 길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내리막길로 내려가서 신호등을 건넜고 근처 공원을 걸쳐 걷는다. 사람들이 산책을 하고 운동장에서 축구하는 모습이 보인다. 길가에 텃밭이 보이고 이름 모를 꽃들이 손짓을 하기에 잠깐 멈춰 서서 구경한다. 나온 김에 일주일 동안 먹을 밑반찬을 만들기 위해 장을 봐야겠다 싶어 이전에 아는 지인이 소개해줬던 로컬푸드에 들린다. 이곳은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먹거리를 중간단계를 거치지 않고 판매하는 곳으로 가격이 저렴했다. 딸기 1kg 한 박스에 5,000원으로 적혀 있었는데 즉석에서 1,000원을 할인해 줘서 4,000원에 득템 했다. 거기에 국산 콩나물이 1,500원이었고, 표고버섯도 샀다. 쌈야채류도 일반 가게에서 사는 것보다 저렴해서 두 봉지를 샀다. 장바구니 한가득 채워 한 손에 들고 집으로 향했다.
오늘 평소 가지 않던 길로 가봐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로또에 비할 행복은 아니지만 일반가게보다 아주 저렴하게 사니까 즐겁고 행복했다. 솔직히 살면서 로또는 3번 정도 해봤는데 로또당첨을 믿지 않는 현실주의 스타일이라 지금의 행복이 더 마음에 와닿는다. 가보지 않은 길을 가본 결과 얻은 가장 큰 이점은 신선한 야채와 과일을 저렴하게 구입했다는 것이다.
본격적으로 밑반찬을 만든다. 멸치볶음, 새우볶음, 쥐포볶음은 우리 가족들이 좋아하는 건어물 3종 세트로 매주 밥상 위에 올려진다. 오늘도 장을 본 것으로 표고버섯볶음, 콩나물무침, 취나물무침을 완성했다.
6가지 밑반찬을 완성하고 나니 부엌에서 서서 일할 때 힘들었던 과정은 모두 까먹고 마냥 뿌듯하기만 했다.
아프기 전에는 당연한 일상의 삶이 아프고 나서 회복될 때 돌아보니 일상은 소중했고 그녀에게 행복을 선사해 주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왜 그녀는 아프기 전에는 그러한 사실을 잃어버리고 불평과 불만을 품고 살아갈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게 된다. 아마도 아프지 않은 일상이 당연한 거라 생각하니 감사도 없고 행복도 없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
회복되고 보니 그녀에게 주어진 일상은 당연한 게 아니었다. 거저 주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일상은 기적이었고 감사할 거리들이 많았다.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놓치고 사는 게 많다는 생각이 든다. 전력질주하며 살 것이 아니라 오늘처럼 일상을 여행하듯 걷기를 하며 활짝 핀 영산홍도 보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구경하고 가게에 들러서 장보기도 하면서 그렇게 유유자적 살아보는 건 어떨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