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이냐? 아이냐? 못나도 정말 못났다
일요일 오후, 교회 예배를 마치고 집에 오면 친구와 통화 후 야구가방과 물을 챙겨 들고 바로 밖으로 나가는 둘째 아들이 어찌 된 일인지 소파에서 뭉그적거리며 오늘은 쉬겠다는 선포를 한다.
어쩐 일로 그러지? 물음표를 던지다가 한 번쯤 쉬고 싶은 날도 있겠다 싶어 물음표를 회수하고 집안일에 몰두한다.
오늘은 또 웬일인지 늦은 오후부터 저녁까지 안 자던 낮잠을 3시간 넘게 잔다. 그때 알아차려야 했다. 어떤 전조증상임을 말이다. 미련한 건지 모자란 건지 내일 출근할 걸 생각해서 청소하고 장보고 음식 만드느라 놓쳐버렸다.
해가 다 떨어진 저녁에 일어나 잔기침을 보이고 저녁밥은 평소보다 절반의 양을 먹긴 했으나 그럭저럭 먹어서 또 넘어갔다.
그런데 밤 8시에 둘째 아이가 말한다.
"엄마, 나 열이 나는 것 같아." 이마를 가리키며 말한다. 체온계를 들고 재자 아뿔싸 38도였다. 일교차가 심해 감기에 걸렸겠거니 했다.
이전에 먹던 비상약인 감기약과 해열재를 먹인다.
그다음 날 새벽 5시 출근 준비로 기상해서 아이의 열체크를 하니 38도이다. 또다시 해열제를 먹이고 출근준비를 한다. 이때부터 마음에 불안이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내가 먼저 새벽 출근을 하는 터라 남편에게는 출근 전 열체크 및 신용카드를 둘째 아이에게 주라고 했고 둘째에게는 학교 갈 가방을 챙겨 병원에 도착하면 간호사와 통화하도록 전화를 해달라고 했다.
평소와 동일한 출근이지만 내 마음은 회색빛이고 둘째 아이에 대한 편치 않은 출근길이었다. 최근 담임선생님이 바뀌었는데 비상연락처를 게시하지 않아 교무실로 전화를 해서 담임선생님께 전달을 요청했다. 출근해서 아침부터 아이, 남편, 학교와 통화한다고 정신이 없었다.
아이는 병원에 도착해 간호사와 통화시켜 줬는데 독감검사를 할 수도 있고 이후 비용이 더 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소식이 없어 아이에게 전화를 하자 독감진단을 받았고 수액주사를 맞고 있다고 했다. 이때부터 내 마음이 내 마음이 아닌 듯 붕 떠 있고 몸은 회사인데 정신은 둘째 아이옆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이 모든 상황 속에서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오전일과를 평소처럼 진행했다. 아이는 혼자 진료를 보고 수액을 맞고 약국에서 약을 받아 집에 갔다. 나는 퇴근시간까지 이 불안과 걱정을 안고 버티기로 했다.
점심을 먹다가 직장동료와 대화 중 오전에 이런저런 일이 있었다 하니 지금 여기서 뭐하는거냐며 왜 일을 하냐며 나에게 물었다. 아이가 필요할 때 부모가 있어줘야 한다는 말에 "내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면서까지 아이를 챙길 수는 없잖아요."라고 말했다. 이 말에 한숨을 쉬며 내가 없으면 다른 사람이 그 일을 하면 되는 거고, 보지 않아도 될 눈치를 본다고 나무라듯 말했다. 직장동료는 진짜 나를 생각해서 해주는 말이라 아픈 말이 오히려 약처럼 느껴졌다. 다른 사람의 눈치 보다 내 아이가 우선이었다.
그때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지금 여기에 있을게 아니라 아픈 아이 곁에 있어야 하구나.'
직장이냐? 아이냐? 는 선택할 비교대상이 아닌 게 엄마라는 정체성이라는 걸 잠시 깜박했다.
아이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이 밀물처럼 몰려와서 내 마음을 덮었다. 내가 미워지기 시작했고 자책감마저 들었다.
그 순간 나에게 "못나도 정말 못났다. 아이가 아픈데 직장과 아이 사이에 두고 자로 재듯 어느 것이 중한지 재고 있냐? 네가 엄마냐?
평소 아이가 필요할 때 아이 곁에 있는다고 해놓고서 지금 넌 뭘 하고 있니?"
그랬다.
나는 워킹맘이자, 못난 엄마이다.
직장과 자녀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죄책감만 많은 엄마이다.
다행히도 오늘은 나에게 뼈 때리는 충고를 해주는 좋은 직장동료 덕분에 아이 곁을 달려간다.
아이는 아이대로 홀로 독감과의 싸움을 했던 긴 하루였고, 나는 나대로 워킹맘으로서 아이에게 죄책감과 자책감으로 물든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