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이 시간이 눈물 날 정도로 소중한 순간이었음을 그때는 몰랐다.
예상치 못하게 어제 야근을 하고 오늘 아침에 퇴근을 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와서 비몽사몽 한 상태로 씻고 암막커튼을 치고 잠이 들었다. 꼬박 다섯 시간을 자고 나서야 일어났다. 일요일 오후 3시이다.
두 아이들은 교회예배를 다녀왔고 첫째 녀석은 거실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고, 둘째 녀석은 이미 야구가방을 짊어지고 집을 나간 상태이다.
안방에서 나오자마자 첫째 녀석은 나에게 묻는다. "엄마, 머리는 괜찮아? 머리 안 아파?" 늘 야근을 하면 두통을 호소하는 나의 컨디션을 살피는 첫째 녀석의 헤아림에 고맙다.
한 번씩 들어가는 야근지원의 후유증은 편두통이다. 일어나자마자 통증을 느끼기도 전에 편두통약을 먹는다. 지난 저녁 내가 없는 사이 남편과 두 아들은 치킨과 통닭을 시켜 먹었고, 나를 위해 치킨 몇 조각과 피자 한 조각을 남겨놓았다. 그것으로 늦은 점심을 때운다.
어제도 저녁을 시켜 먹었는데 오늘도 시켜줄 순 없다. 내 몸이 피곤하다는 핑계를 댈 수는 없다. 내 몸도 소중하지만 가족들과 함께하는 저녁식사도 소중하다. 나는 또 선택을 한다. 그냥 다시 누워 잘 것인가? 아니면 일어나서 장보기를 하고 음식을 할 것인가? 선택은 컨디션에 따라 다르기도 하지만 대부분 후자의 선택을 한다.
어차피 30분 운동을 할 겸 시장바구니를 챙겨 들고 걷는다. 계절은 어느새 가을에서 겨울로 바뀌고 있었다. 지난밤 내린 비로 인해 바닥에는 낙엽들이 떨어져 있었다. 이곳저곳 마트를 들리고 가을도 느끼고 다시 집에 온다. 오늘 하루 잠만 자고 하루가 다 간다고 생각하니 허무하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야근을 한 다음날은 늘 이래왔던 거 같다.
오늘의 메뉴는 분식이다. 김밥재료를 사서 직접 김밥을 만들고 떡볶이도 만들었다. 순대는 전남친순대에서 샀고, 김말이는 에어프라이에 돌렸다. 보기 좋고 맛도 좋은 저녁식사 한상이 마련되었다. 손이 많이 가는 김밥이지만 가족들이 잘 먹어주면 감사할 뿐이다. 못생긴 김밥이지만 맛은 좋았다.
사람들은 말한다. 맞벌이를 하면서 굳이 손이 많이 가고 시간도 많이 소요되는 음식을 왜 그렇게 집착하며 만드냐고 말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는 왜 이럴까? 답이 나왔다.
음식을 만드는 과정과 그 음식을 함께 나누는 것은 단순히 그냥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었다. 음식을 만드는 과정과 그 음식을 가족들과 함께 나누는 것은 가족들과 정서적으로 친밀히 나누고 연결되는 순간이었고, 훗날 눈물이 날 정도로 그리운 순간이 될 것임을 알기에 소중한 것이었다.
비록 내 몸이 조금 피곤하고 지칠지라도 가족을 위해 음식을 만들고 함께 먹는 그 시간이 더 행복하다.
지난주 남편이 구글에서 갑자기 14년 전 사진이 떴다며 내게 보여주었다. 지금은 16살이 된 아들이 아직 아기일 때 생일밥상을 차린 모습이었다. 그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던 그때 그 시절의 행복한 모습이 전율이 되어 내게 느껴졌고 눈물이 났다. 지금 이 순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아이들과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삶을 나누는 소소한 순간들이 어느 시간에는 사라질 것이다.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겠지. 10년이 지나 지금 이 순간을 떠올릴 때면 내가 야근을 하고 김밥을 만드는 과정의 수고로움보다 가족들과 함께 분식파티를 하던 그 감정이 고스란히 남아 있을 것이다.
두 아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자라고 있다. 단지 늘 익숙해서 느끼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어느 순간 두 아들을 보면 '언제 이렇게 컸지?' 놀랄 때가 있다. 함께 있는 시간이 언제까지일지 몰라도 함께 있는 동안 지지고 볶고 싸우고 화해하며 잘 지내보자.
저는 수줍은 아이였는데, 부모님은 제게 무한신뢰를 보여주셨어요. 부모의 사랑과 신뢰는 부와 무관해요. 만약 부유한 부모가 제게 신뢰를 주지 않았다면 저는 허들을 넘어서는 힘을 키우지 못했을 겁니다. 저에 대한 의심이 들 때마다 저는 부모님의 희망을 투사했어요. 나보다 나를 더 흔들림 없이 믿어주는 존재를요.
<의젓한_사람들> 배우 박정민
내가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뭘까? 자기의 삶을 충실히 살고 일상에서 행복을 느끼며 문제와 곤경을 만날 때 이겨내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지 않을까? 싶다. 두 아이들에게 무조건적인 사랑과 신뢰로 믿어주고 그들이 어떤 상황 속에서도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정서적 안식처로 있어주고 싶다. 훗날 어른이 되어 인생의 거친 풍파에 기진맥진하여 주저앉아 있을 때 따뜻한 엄마표 밥 한 끼를 차려주며 그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힘을 줄 수 있는 존재로 각인되길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