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를 갈아 사회생활을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1년에 한 번 있는 직원건강 프로그램이 4일 동안 진행되었다. 나는 그것의 주담당자이고 프로그램 전부터 업체와 계속 연락을 하며 프로그램을 준비했고 4일 동안 그 자리를 지켰다.
프로그램 당일 심리상담에 오기로 예약했던 직원이 오지 않아 자리가 비웠다. 상담자가 아닌 내담자의 위치에서 상담받는 기회를 놓칠 수 없어 그 자리를 내가 채웠다.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누며 지금 내 마음을 살펴볼 수 있었다. 나라는 사람은 기질적으로 외향적이지 않는데 사회적으로 외향적인 모습으로 살아가다 보니 내면의 힘을 있는 힘껏 끌어올려 지치고 피곤할 수 있다고 한다.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하다.
신앙을 가지기 전 나는 말 수가 적고 조용했다. 남 앞에 나서는 것도 잘하지 못했다. 20대에 신앙을 가지면서 나는 완전히 바뀌었다. 어느 자리에 가도 분위기 메이커였고 시끄러웠고 텐션이 높았다. 아마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그러한 외향적인 모습이 발달되고 강화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요즘 들어 건강에도 이상신호가 오고, 혼자 있을 때 걷기, 달리기, 글쓰기, 도서관 가기 등의 활동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상담자는 외향성보다는 내향성에 가까운 것 같다고 했다. 그렇다고 사람 만나는 걸 싫어하거나 기피하지는 않는다. 다만 사람을 만날 때 의미 있고 친밀한 사람과의 만남을 선별해서 만나고 사회적인 만남을 되도록이면 안 만나려고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기 빨린다."
직장 내에서도 학습된 외향성은 그대로 표출된다. 에너지가 넘치고 텐션이 높고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며 적극적인 태도를 취한다. 때론 우울하고 몸이 아프고 힘이 듫에도 불구하고 나의 컨디션을 무시한다. 마치 쇠코를 뚫고 코뚜레를 꿰어 풀어지지 않도록 엇걸어 매고 고정시켜 일만 하는 소 같은 기분이라고 할까?
사람들은 진짜 나의 모습을 알지 못한 채, 페르소나의 내 모습을 보고 한결같이 힘차고 명랑한 존재로 인식한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음에도 누군가의 인정을 갈구하며, 완벽할 수 없음에도 완벽하려고 하는 저 태도는 씁쓸하고 마음이 아프다.
상담선생님은 나에게 뼈를 갈아 사회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퇴근하면 거의 시체상태였다. 회사에서 거의 불을 사르고 재만 남긴 채 퇴근하는 기분이 들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결정한 게 걷기와 슬로우러닝이었다. 무엇이 정답인지는 모르지만 상담선생님은 퇴근 후 활동에 칭찬을 해주었다.
100이 내가 가진 총 에너지라면 100%을 회사에서 다 쓰지 말고 70%만 쓰고 퇴근해서 자기 돌봄의 시간을 가지라고 했다. 깊이 동감하는 부분이다.
무엇이 그토록 나를 소처럼 고삐에 묶인 채 일만 추구하도록 만든걸까?
일이든 자기 돌봄이든 너무 열심히 하려 들지 않고 깊은 호흡을 하며 이완하며 때로는 힘을 빼며 살고 싶다.
원래 그렇게 살아왔으니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고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 나를 제일 잘 안다고도 말하고 싶지 않다. 다만 지금 현재 나의 모습을 자각했다면 나를 위한 삶에 조금 더 집중하고 싶다.
근본적으로 내가 어떤 이유로 타인의 시선을 강하게 의식하고 거절을 하지 못하고 일복이 많다는 소리를 듣고 있는 건 나의 선택이었음을 기억하자. 누구의 강요가 아닌 나의 선택이었다. 그 선택은 일차적이든, 이차적이든 나에게 어떠한 이득을 선사해 주었을 것이고 나는 그 이득을 얻기 위해 나의 패턴을 더 강화했을 것이다.
사람이 삶의 균형을 이루며 적당하게 타인의 인정을 갈구하고 성취감과 자신감을 얻고 사는 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저울추가 너무 타인의 인정으로 기울이면 나 자신은 없어진다. 결국 타인만 돌보고 나 자신은 돌보지 못한다. 사회적인 가면만 쓰고 있는 껍데기만 남는 인생은 살고 싶지 않다.
벌거벗은 존재로 홀로 섰을 때 그저 나 자체로써 존재론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그대로 수용받을 수 있는 그러한 삶을 살고 싶다. 외부의 소리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내부의 소리에 집중해서 그 길을 걸어가고 싶다.
자기 돌봄은 나 자신을 알아가고 나 자신을 찾아가고 나 자신을 발견해서 진짜 나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아직 갈길이 멀다. 그러나 늦지 않았다. 자기 돌봄이 제대로 작동될 때 진정한 사랑으로 타인을 돌볼 수 있는 힘이 생기리라 믿는다.
자기 돌봄의 시작은... 내 삶의 작은 움직임에서 시작하기로 했다.
걷기와 슬로우러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