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전 나는 사회에서 이름 지어진 명함들이 있었다. 거기에 덧붙여 엄마, 아내, 며느리, 딸이었다. 나의 정체성에 대해서 엄마와 아내의 역할이 우선이라고 하면서도 하루 중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회 속의 나는 직장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 했고 인정받으려고 했었다. 사회생활에서 느끼는 좌절과 스트레스를 가정 속에 가져와 아이들에게 신경질과 짜증을 내기도 했다.
사회 속에 이름 붙여진 내 명함을 놓기 싫었고, 이것을 놓아버리면 영원한 나락에 빠져 다시는 그 자리에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아 불안했다. 왜 내가 엄마가 되고 아내가 되어 내 삶의 반쪽이라고 할 수 있는 일을 내려놓아야 하나? 갈등했다.
그래서 아이들을 위해 휴직을 하는 건 솔직히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하고 싶었고, 휴직 없이 계속 직장 생활을 해서 진급도 하고 싶었다. 그런데도 왜 나는 휴직을 했을까? 그건 내 안에서 이드가 아닌 초자아가 더 강하게 자리 잡지 않았나 싶다.
엄마로서 내가 해야 할 일, 아이들의 생애주기 가운데 이 시기에 휴직을 하지 않았을 때 후회할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지? 내가 해야 할 도리를 다하고 나서 문제가 생기는 것과 해야 할 도리를 하지 않고 문제가 생기는 건 큰 차이가 있었다. 나 스스로 나를 용서하느냐? 용서할 수 없느냐? 의 문제이기도 했다. 휴직은 오로지 자녀와 가족을 위한 희생이라고 정의하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다시 이 부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정말 자녀와 가족을 위한 희생으로서 휴직이었을까? 걷고 또 걸으면서 생각했다. 그러면서 생각이 달리 들었다. 명목은 자녀와 가족을 위한 휴직이라고 했지만 나를 위한 휴직이었다. 나는 당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며 자녀와 가족을 위해 희생한다고 여겼었다. 정말 피해자였을까? 아니다. 피해자가 되어야 사람과 상황 탓을 할 수 있었다. 내가 가장 힘들다고 하소연하며 내가 마치 큰 희생을 해서 가족을 부양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었을 것이다. 누구도 나에게 그렇게 살라고 강요하지 않았고 더 쉬운 길도 있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부산에 있는 시댁에 두 아이를 맡기고 나 혼자 지내며 주말마다 부산에 가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난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내가 하고 싶은 직장 일을 하고 싶었고, 다른 사람들 눈에 “직장 생활하면서 혼자서 두 아이도 키우네.”라는 소리를 듣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이기적이고 자기밖에 몰랐고 나의 정체성을 사회생활에 두었다.
이제 나의 정체성은 이름 한자인 전미영이다. 오늘도 누군가를 만나면 난 사회생활 속의 명함을 완전히 빼버리고 전미영 이름 한자만 남는다. 처음엔 어색하고 내가 없어진 것처럼 느꼈는데 이제는 오히려 전미영 이름 한자로 뭐든 도전하고 시도하고 실수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어 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