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불며 떼쓰면 해결될까?
주도권 아래 통제된 삶을 원했던 적이 있다.
실제로 젊을 때는 그게 가능할 거라는 착각 아니 망상을 가진 적도 있었다.
세상에 넘어지고 쭈그리고 아파보니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고 그녀의 주도권과 먼 수동적인 삶을 살고 있었으며 통제는 얼어 죽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잠깐 좌절했었던 것 같다.
아니 세상이 이렇단 말이야? 뜻대로 되는 게 없다고?
마음에 맞지 않는 상사나 동료, 가족이라도 다른 가치관의 충돌로 매일 그녀를 깎는 과정이었다.
마치 원재료의 돌을 도공이 쇠망치를 들고 불필요한 부분을 깎아내며 고통을 감내하는 느낌이었다.
아프다. 도망가고 싶다. 화가 난다.
뒤돌아보면 아프고 화가 나도 도망간다고 해결되는 건 없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그 자리를 지켜야 했고 버텨야 할 때가 많았다. 때로는 이쯤 하면 됐어? 더 이상 뭘 더 어떻게 하겠어?라는 심정이 들 때는 포기한 적도 있다.
그 순간에는 인생이 고달프고 피곤했다. 숨고 싶었다. 그 상황 속에 있을 때는 분명 위기이고 큰일이었다. 지나고 보니 전체 인생 중에 아주 작은 에피소드였고 언제나 누구든지 겪을 법한 힘든 상황이었다.
다만 '그게 왜 나한테 일어난 거지?'라는 질문을 던지는 순간 모든 문제의 중심에 그녀가 있었고 헤쳐나가야 할 폭풍 우을 마주한 느낌이었다.
그 폭풍우를 헤치고 나니 또 다른 폭풍우가 기다리고 있었다.
인생은 이렇듯 산 넘어 산이었고 예기치 않은 짓궂은 비바람을 만나듯 늘 그래왔다.
이러한 전제를 깨달고나서도 그녀는 여전히 문제 앞에 좌절하고 짜증 내고 속상해한다.
다만, 문제상황에서 조금 벗어나면 이 역시 지나갈 것이며 도망치지 말고 버티는 것도 용기임을 알게 된다. 어차피 이 문제를 직면하지 않으면 그 문제가 다른 가면을 쓰고 나타나서 삶을 흔들 수 있음을 알아버렸다.
이로써 사람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겪는가 보다.
어른이란 무엇일까?
그저 신체적으로 성인의 몸을 갖추고 나이가 차면 되는 것일까?
성인이란 자기 삶의 문제를 직면하고 책임지는 게 진정한 어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들어도 문제가 생기면 남 탓, 상황 탓만 하며 도망갈 준비만 한다면 안타깝지만 건강한 어른도, 건강한 성장도 없는 퇴보되는 삶이 될 것이다.
사람은 힘들 때 본능적으로 피하고 싶고 도망가고 싶은 심리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그러한 마음을 부여잡고 문제를 직면하는 것이 진짜 어른다운 면모이지 않을까?
요즘처럼 어른다운 어른이 잘 보이지 않는 그때.
평생 기저귀 차고 뜻대로 안 되면 울고불고 소리치기보다 때가 됐으면 기저귀도 떼고 걸음마도 하고 점점 성장하는 어른이 되고 싶다.
오늘도 삶의 현장 속으로 들어간다. 매일 반복되는 듯 보여도 그 속엔 뜻밖에 상황과 관계의 갈등이 기다리고 있다. 그녀를 성장시켜 주는 퇴비역할을 톡톡히 하는 일상에 감사하며 오늘도 집을 나선다.
퇴근후 걷기운동하며 눈앞에 펼쳐진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