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소 영화를 잘 보지 못한다. 복선이 있고 위기가 있는 장면이 나오면 눈과 귀를 막고 그 상황을 보지 못하고 피한다. 비록 영상 속 허구이지만 내가 마치 주인공이 된 것처럼 감정이입이 되어 차마 볼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다큐멘터리나 인간극장 같은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그런 내가 일할 때 영상치료로 ‘흐르는 강물처럼’을 보게 되었다. 그 영화는 1910~20년대 보수적인 기독교 가정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두 남자의 각기 다른 인생을 그렸다. 영화의 한 장면에 강물에서 물고기 낚시를 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그 장면이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하고 기억에 오래 남는다. 나는 영화 대사 중 ‘인생이 흐르는 강물과 같다.’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똑같은 부모 밑에서 보수적인 신앙교육을 받고 자란 두 아들은 서로 다른 성향과 기질로 너무나 다른 상반된 인생을 살고 둘째인 브래드 피트는 결국 비운의 죽음을 맞는다.
영화 속 대사처럼 인생은 흐르는 강물과 같다. 때론 멈추고 싶은데 멈출 수 없고, 계속 흘러가고 싶은데 강 중간에 자리 잡은 여러 돌로 인해 방해를 받기도 하지만 결국은 또 흐른다. 그 흐르는 강물은 흐르고 흘러서 어디에 도착할까? 를 생각해보게 된다. 나 역시 시간의 개념으로 보면 흐르고 흘러서 여기까지 왔다. 이 시간이 흐르고 인생이 흘러서 어디로 갈까? 기대되고 두렵기도 하다. 겉으론 명랑하고 씩씩하게 잘 걸어가고 있다고 힘을 내 보지만 나는 두렵다.
흐르는 매 순간 나는 선택하고 결정한다. 영화에서처럼 똑같은 부모와 환경 속에 자란다 해도 타고난 기질에 따라서 혹은 상황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차이가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게 된다. 더 나아가 기질도 중요하지만 내가 그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고 반응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상이하게 다를 수 있다. 내 앞에 주어진 삶은 사실 자체 혹은 옳고 그름으로 보기보다는 사실을 재정의하고, 재 각색해서 나에게 유리한 것으로 활용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나쁜 상사를 만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뭐 저런 사이코가 다 있어?”라고 하기보다 “내가 상사가 되면 저 사람 같은 상사는 되지 말아야지. 저 사람 덕분에 내가 인성훈련을 하고 있네.”로 보는 것이다.
보는 것을 다르게 보고,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느끼는 것이다. 그 선택과 결정이 모여 방향이 정해지고 그 방향은 목적지로 간다. 방향을 수정하고 목적지를 수정해가며 최선의 선택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된다. 그러나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과거의 상처가 걸림돌이 되어 오늘을 살아가는 나를 자꾸 물고 늘어지고, 지금을 살아야 하는데 안개 같은 미래의 두려움이 나를 주저앉게 한다.
멀게 만 느껴졌던 휴직기간은 이미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고, 어느덧 나도 복직을 준비할 시간이 다가왔다. 죽을 것 같이 힘들었던 지난 시간은 추억이 되어 심심할 때 꺼내 볼 수 있는 옛 사진첩이 되어 있고, 현재의 이 시간은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의 영화 제목처럼 나에게는 참 평안하고 행복한 시간이다. 로또 맞은 것처럼 늘 행복하진 않지만 하루의 삶은 ‘이 정도면 행복하다. 이 정도도 충분하다.’는 마음이 든다. 아이들도 어느덧 많이 컸고, 나도 아이들이 성장한 만큼 나이 들었다. 다시 직장을 가야 하는 시간이 다가올수록 나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잘할 수 있을까? 사람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를 건강하게 이겨낼 수 있을까? 직장과 가정의 양립을 잘 지켜낼 수 있을까?”
“~있을까?” 의 질문에 나는 늘 “모른다.”로 답한다. 닥쳐봐야 알 일이고, 내가 어떤 반응을 하고 해석을 할지 그때 가 봐야 알게 될 것이다. 하루를 살아도 오전에 내가 다르고 오후에 내가 다른데 미래의 나를 지금 어떻게 안단 말인가? 그 생각 뒤로 ‘그래, 앞일 예측해봤자, 지금은 모르는 일이니.. 그냥 오늘을 살자.’라고 마무리한다.
오늘도 시간은 흐르고 인생도 흘러간다. 예전엔 나이 한 살 먹는 게 두려웠는데, 지금은 나이 먹는 게 그렇게 싫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시간은 나를 다른 삶 속으로 이끌고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복직 후 나는 가족과 살기 위해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기존에 했던 상담과 프로그램 진행 업무를 내려놓고, 새로운 만남과 업무가 나를 기다리고 있고 기대보다는 두려움이 크다. 그러나 내가 5년 전 휴직을 고민할 때 그랬던 것처럼 나는 이 새로운 세계로 발을 디딜 때 두려움을 등에 짊어지고 기대와 설렘으로 삶을 맞이하고 축복해주고 싶다.
미래의 나는 상처받을 수 있고 사람 때문에 속상할 수 있고, 가족들과 함께 있어 행복할 수도 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수하고 실패하고 좌절해도 나는 나로서 존재함을 알기에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늘 내려놓는 순간은 아프고 힘들고 눈물이 앞을 가린다. 그리고 세상의 법칙은 하나를 내려놓으면 하나를 얻는 줄 알았다. 그러나 때론 하나를 포기하면 두 개, 세 개 다른 것으로 채워질 수도 있음을 휴직을 통해 알게 되었다. 눈에 보이는 승진, 돈, 인정, 업무에서 느끼는 만족은 내려놓았지만 휴직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눈에 볼 수 없는 것들을 볼 수 있었고 그것은 내가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야 찾을 수 있었던 인생의 값진 보물이었다.
그것은 세상에서 존재하고 있는 가족과 나이다. 잊고 있었다. 직장생활을 할 때는 가족과 나를 잊고 살았었다. 다른 것으로 채우려고 했던 욕망 덩어리를 내려놓고 보니 이제야 보인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족과의 시간, 혼자만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