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중에는 내 마음에 딱 맞는 친구도 있지만 같이 있으면 불편하고 딱히 코드가 맞지 않은데 친구들 사이에 끼어있어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감정 중에도 긍정적인 감정은 늘 내 안에서 거부감이 없고 편안한데 부정적인 감정은 나를 불편하게 하고 기분을 망치기도 한다. 젊은 시절엔 그 부정적인 감정을 밀어내기 바빴고,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연습이 되지 않았을 땐 억제하고 가위로 재단하듯 잘리지 않는 그 감정을 자르려고 애썼다. 그런데 뒤돌아보니 긍정적인 감정도, 부정적인 감정도 모두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고 좋고, 나쁨으로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생각과 더불어 꼬리표처럼 가지각색의 감정이 함께 따라 올라온다.
인생을 두 번, 세 번 살아본 적이 없는 나는 인생 앞에 늘 초보이다. 할 수만 있다면 시뮬레이션처럼 이쪽, 저쪽 길 다 가보고 나서 가장 안전하고 성공 확률이 높은 길을 가겠지만 인생은 단 한 번만 갈 수 있어서 그렇게 할 수가 없다. 물가에 처음 내놓은 어린아이처럼 내게 인생은 늘 신비이고, 두려움이고, 설렘이다. 인생은 실패일 수 있고, 성공일 수 있어서 가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이다.
내게 인생은 설렘보다 두려움이 더 컸었다. 두려움은 늘 불안을 데리고 왔다. 그렇게 나는 밤마다 두려움과 불안을 품은 꿈을 꾸면서 내가 감독이 되어 하나의 무시무시한 영화 한 편을 만들어낸다. 여러 직장을 이직하는 꿈, 갑질하는 상사 앞에서 한마디도 못하고 당하고 있는 꿈, 아이들을 등교시켜야 하는데 직장에 출근해야 하는 꿈... 꿈을 통해 나를 본다. 꿈은 나에게 말을 건넨다. ‘내가 지금 직장 복직을 두고 두려워하고 있구나. 꿈속에서 미리 직장에 복직해서 앞으로 벌어질 수 있는 두려운 상황을 시뮬레이션하고 있구나.’
꿈을 깨고 나면 참 마음이 무겁고 혼란스럽다. 오늘은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내 무의식은 앞으로 있을 직장 복직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살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예전엔 이런 두려움이 내게 말을 걸면 애써 ‘난 두렵지 않아.’라고 무시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래, 두렵구나. 미래에 대해 불안하구나. 그럴 수 있어. 처음 살아보는 인생인데 두려움을 느끼는 게 당연하지. 충분히 그런 감정 느낄 수 있어. 괜찮아. 네가 지금 느끼는 감정을 이해해. 그만큼 네가 힘들었구나.’라고 나 자신을 다독인다. 억지로 두려움을 감추거나 억제한다고 사라지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두려움은 나와 함께하는 친구이다. 불편하고 싫을 때도 있지만 인정하고 같이 가기로 했다. 두려움이 말을 걸면 그 감정을 이해하고 인정해주고 귀 기울여 들어주고 다독이면서 같이 인생길을 걸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