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지금 42살의 내가 2017년 봄 38세 휴직을 준비하는 너에게 말을 걸어본다. 이 문장을 다 쓰기도 전에 내 마음에서 봇물처럼 쏟아지는 눈물을 참을 수 없다. 그래도 용기를 내어 말을 건다.
고단한 인생을 살면서 누구에게조차 그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늘 명랑한 척 살았던 미영아, 듣고 있니? 나야 나. 42살의 너야.
봄 햇살은 너무나 눈부신데 네 마음은 늘 지치고 힘들어하고 있구나. 네가 하고 싶은 업무를 하지 못하고, 이번에 휴직을 하면 5년 승진이 미뤄지고, 맞벌이에서 외벌이면 돈도 반 토막 나고... 휴직으로 인해 안 좋은 점만 자꾸 생각하고 있구나. 그래서 우울하니? 휴직은 단지 자녀를 위해 네가 희생한다고 느끼지? 그래 지금 그 상황에서 충분히 그렇게 느낄 수 있어. 자꾸 억울한 마음이 들어 속상하지?
그런데 미영아 내가 너에게 할 말이 있어. 5년 뒤의 내가 너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
휴직... 힘들고 어려운 결정이었지. 그런데 참 잘했어. 자녀만을 위한 휴직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어. 그 힘든 결정을 할 때... 너 혼자 결정한 거 아닌 거 기억하지? 30대 초 직장 생활하면서 2년 동안 매일 새벽마다 정신분석 상담실에 문을 두드리며 상담을 받았던 의사 선생님께 몇 번이나 조언을 구했었지. “전 선생님이 하고 싶은 건 시간이 흐르고 나서도 할 수 있지만, 자녀는 필요한 시기가 지나면 후회해도 되돌릴 수 없어요. 지금은 자녀에게 엄마가 필요해요.” 그 말이 자꾸 네 머릿속을 맴돌았지. 그래서 넌 결정을 했어. 5년, 10년 후에 내가 하고 싶은 건 할 수 있다고 믿고 말이야.
지금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지도 내 뜻대로 되지 않지만, 아이들은 육체적으로, 정서적으로 건강하고 잘 자라주었단다. 그리고 너는 아이들에 대한 욕심과 기대도 내려놓는 방법도 배워가고 있어. 네가 항상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세월이 지나도 늘 옳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배웠어. 역시 사람은 늘 학생처럼 배우고 버리고 또 배우면서 그렇게 성장하는가 봐. 남편과도 멀게 만 느껴졌는데 요즘 남편과 일주일에 세 번은 새벽 산책을 하고 많은 대화를 나눠. 이제는 결혼 11년 차에 정말 세상에 둘도 없는 베스트 프랜드를 만난 것 같아. 오늘은 새벽 걷기를 마치고 오는데 두 아이의 아빠로, 나의 남편으로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온 남편 생각에 잠깐 눈에 눈물이 맺히기도 했지 뭐니. 그리고 뒤이은 생각이 ‘이 정도면 됐다. 이 정도면 충분하고도 넘친다. 세상에 태어나 사랑하는 남자 만나 연애도 하고 아이 낳고 길러보고 자라는 과정도 지켜보고 건강과 평안한 가정이 있으니 됐다. 지금 죽어도 후회는 없겠다.’ 싶은 거야. 웃기지? 죽긴 왜 죽어? 그렇지? 말이 그렇다는 거야.
지금 나는 행복해. 외벌이라 돈은 늘 부족한데, 너 나 알잖아? 없으면 없는 대로 살고 있어. 최근에는 아이들 학원비가 늘어 조금 걱정인데 1년 후면 복직이라 그것도 조금만 버티면 될 것 같아. 둘째가 시샘이 많고 하고 싶은 게 많아서 복직 후에 열심히 돈 벌어야겠어. 첫째가 조금 느리고, 하고 싶은 게 없어서 걱정했잖아. 그런데 둘째가 뭔가를 하려고 하다 보니 첫째도 자극받아서 자꾸 같이 하려고 하네. 잘 됐지?
나는 매일 걷고, 책 읽고, 글 쓰면서 지내. 예전 같았으면 집에서 내가 이렇게 살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거야. 그런데 말이야. 너무 좋아. 외부에서 뭔가를 채우지 않아도 이것만으로도 내 안에 가득 채워지는 방법을 배웠어. 누군가 알아주고 인정해줘야 움직였던 내적 동기가 이제는 누군가의 인정이 없이도 나 혼자 그냥 막 설레 여서 움직이고 있어. 그걸 옆에서 지켜보는 남편이 한 마디 하네. “여보, 참 재미있게 산다.”라고 말이야. 해야 해서 하는 게 아니라 하고 싶어서 하는 것들을 내 삶에 채워 넣으니까 오늘 하루가 너무 소중하고 좋아. 굳이 의미 부여하지 않아도 의미가 저절로 생기네. 해야 하는 것들은 아이들 집에서 기본적인 숙제, 신앙 훈련하고 매끼 밥과 간식, 집안 청소, 남편 식사 준비야. 그것은 직장에서처럼 해야 할 일이라고 고정해서 생각하니 하는 게 어렵지 않아.
이제 1년 후에 다시 복직이야. 네가 휴직하면서 걱정하고 두려워했던 일들은 하나도 생기지 않았어. 그리고 네가 휴직하면서 아쉬워하고 속상했던 문제들은 문제가 아니었어. 진짜 생각하기 나름인가 봐. 승진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늦어졌지만 그냥 직장생활 열심히 하면 되고, 내가 하고 싶은 업무도 이제 내려놓고 가족과 함께 살 수 있는 곳으로 올 수 있는 용기가 생겼어. 마음속에는 늘 내가 하고 싶은 건 내가 적극적으로 찾고 발견하면 언젠가는 꼭 이뤄질 거라는 확신이 생겼어. 어떻게 이 확신이 생겼는지는 모르는데 그냥 믿음이 생겼다고나 해야 하나. 나 사실 휴직 동안 질병이 찾아와서 당황하고 아프기도 했어. 그런데 그것 역시 전화위복이 되어서 건강관리를 엄청 잘하고 있어. 칭찬해줄래?
38살의 미영아. 잘 살아왔어. 앞으로도 잘 살 거야. 42살의 미영이가 장담하는데 다 괜찮아. 실패든 성공이든 네 존재만으로 삶은 특별하고 가치 있어. 살아있기에 겪을 수 있는 모든 희로애락을 두 팔 벌려 맞이하고 마음껏 느끼고 사는 거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아. 못나고 서툴러도 그게 초보 인생인데 뭐가 어때서?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난 널 응원해. 그리고 믿어.
편지를 쓰고 나서 내 마음속에 편안함이 밀려온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 편안함 말이다. 나의 든든한 친구가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었던 걸 깨닫는다. 앞으로도 내 든든한 친구는 내 안에 늘 존재할 것이다. 시간을 거꾸로 가서 과거의 나를 만나니 과거보다 조금 더 내적으로 성장한 지금의 나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준 나에게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