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인생법칙을 찾아라

9. 이익을 남기는 게 장사일까?

by 호모 비아토르


[유퀴즈온더블럭] ‘고통 받는 청년들을 위한 식당 사장이 된 신부님’

https://www.youtube.com/watch?v=OTRBrA2l-b4&t=2s


나만의 인생법칙은 내가 세상에 존재함으로 인해

타인에게 도움이 되고 유익이 되는 삶이다.


‘고통받는 청년들을 위한 식당 사장이 된 신부님’을 보며 자꾸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오늘 새벽에 성경을 읽으며 나란 사람이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텅 빈 사람은 아닌지에 대해 생각했었다. 그런 와중에 이 영상을 보며 내가 그리 선하지도 않고 생각과 글로만 선한 이미지를 만드는 건 같아 의구심이 들고 마음이 불편했다.

고시원에서 생활고와 지병에 시달리다 죽은 청년의 뉴스를 수녀님이 보고 이문수 신부에게 제안을 했다.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제안을 넘기지 않았다. 그것을 자기 삶 속에 끌어들여 힘든 청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구체적으로 실천한다는 것이 대단해 보인다. 말로는 누군가를 위하는 척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다.


신부님이라는 타이틀에 김치찌개를 파는 사장님은 잘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 처음 장사를 준비할 때 막막했고, 자본금도 부족해서 지인들에게 후원을 받아 시작했다. 초창기에는 매달 200만 원이 넘는 적자에 있었다. 그럼에도 문을 닫을 수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이 가게는 이윤을 남기기 위한 장사가 아니라 청년들의 배고픔과 고통을 헤아리고 위로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문수 신부님은 이익을 남기기 위한 장사라는 통념을 깼다. 누군가의 아픔과 고통을 헤아리고 위로를 주기 위한 장사로 개념을 바꾸어 주었다. 어떤 사실에 대한 통념을 깨고 개념을 바꾸어 새롭게 길을 만들었다. 그 길은 선한 영향력의 시작이었다. 처음 그 길을 낼 때 막막하고 쉽지 않은 길이었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그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은 청년의 아픔에 공감하고 함께하기 위한 사명이지 않았을까?


나의 청년의 때는 어떠했는지 돌아보게 된다. 불확실한 현실과 미래 속에서 두려움과 불안이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었다. 현실이라는 땅을 딛고 있었지만 그 땅이 언제든지 무너질 것 같았다. 그런 나에게 기성세대들은 자기들이 살아온 삶이 마치 정답처럼 일장 연설을 했다. 누구에게도 공감받거나 위로받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저 열심히 달리고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서 달려야 할 것 같았다. 숨 가쁘게 달려서 돌아보니 어느덧 40이 넘어 있었다.


나는 이제 청년이 아니라 중년으로 넘어갔다. 지금의 청년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 내가 경험한 세계를 잣대로 ‘해야 한다’라고 주입하기보다 그들의 세상 속에서 힘들고 어려운 부분이 무엇인지 듣고 공감해주는 어른이 되고 싶다. 그들의 아픔을 내치기보다 품어주는 사람이고 싶다.

그렇다면 청년을 만날 기회가 적은 이 시점에서 나는 누구의 아픔을 듣고 공감해주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다시 나에게 질문한다. 나의 인생법칙인 내가 존재함으로 인해 타인에게 도움이 되고 유익이 되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삶을 살고 있는가? 이 질문에 고개가 숙여지고 부끄럽다. 휴직 후 내가 한 것은 코로나가 터지기 전까지 지역 노인대학에서의 자원봉사였다. 그리고 지금은 지역 마을공동체인 마을학교에서 일정한 시간을 내어 봉사하는 수준이다. 나의 시간은 대부분 가정에 국한되어 있다.


그렇다면 다시 묻는다. 내가 존재함으로 인해 타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대부분의 시간이 가정에 있다 보니 지금 현재 내가 있는 자리에서부터 찾아야 할 것 같다. 가족들은 내 존재로 인해 도움이 되고 유익이 되는가? 아니면 해가 되는가? 대답하기 민망하다. 밥하고 청소하고 숙제 봐주고 집안의 보이지 않는 구석진 곳을 누빈다. 최소한의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정서적으로 아이들에게는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컨디션 난조가 되면 아이들에게 신경질적이고 짜증스러운 말들이 폭격기처럼 날아간다. 해야 하는 의무적인 일은 묵묵히 한다. 정작 정서적인 부분에서는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변덕이 심한 모습을 보인다. 관계적인 면과 소통에서는 해를 가한다.


이제 보인다. 그럴싸하게 꾸며진 내가 아니라 진짜 내 모습이다. 진짜 내 모습부터 시작해야 한다. 어설픈 내 모습을 파악하는 그 시점부터 실질적으로 누군가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알게 된다. 내가 누구인지 정체를 모른 채 그럴싸한 이미지만 쫓아다닐 것이 아니다.

나는 완벽할 수 없다. 이것 역시 안다. 그럼에도 완벽하지 않으니까 내 멋대로 살자는 것 역시 아니다. 완벽하지 않지만 내가 범하는 실수와 오류에 대해서 수정하고 고쳐나가려는 의지와 행동이 있어야 한다.

작은 것에서부터 마음을 헤아리고 나누는 삶을 살아보자. 나와 매일 소통하는 남편과 자녀들에게 그들의 말에 조금 더 귀를 기울이자.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공감의 언어를 사용하자. 내 컨디션 난조를 핑계 삼지 말자. 부정적인 감정표현이 솟구쳐 오를 때 나만의 시간 안에서 회복한 후 절제된 감정표현을 하도록 노력해야겠다.

그리고 이문수 신부님처럼 누군가에게 따뜻한 밥 한 끼로 마음을 위로하고 헤아려주는 삶을 살고 싶다. 거창하고 거대한 일을 통해 누군가를 도울 생각보다 일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따뜻함을 전달하자. 자칫 일을 크게 만들다 보면 자기가 돋보이고 싶고 타인의 인정에 의해서 본연의 목적은 상실할 수 있음을 유념하자.

오늘 저녁은 김치찌개를 먹고 싶다. 그런데 어떻게 하지? 이미 아침에 청국장을 끓였다. 어쩔 수 없지. 청국장 다음 메뉴는 김치찌개를 먹자. 그리고 자녀들과 김치찌개를 먹으며 김치찌개 사장님 이야기로 꽃을 피워야겠다. 김치찌개에 담긴 위로와 헤아림을 자녀들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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