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인생법칙을 찾아라
10. 개인의 변화는 관계의 힘에서 온다
오늘 영상은 통해 신영복 교수를 처음 접한다. 다들 알 법한 지성인을 처음 접한다고 하니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이 순간 부끄러워진다. 그래도 주제가 내게 친숙한 주제이다 보니 조금 더 가까이에서 신영복 교수의 인터뷰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통해 어떤 말을 전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는 제한된 공간에서 제한된 상황과 기록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교도소는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밖에 없다. 신영복 교수가 반복해서 말하는 ‘제한된’이라는 단어는 교도소에서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는 불편한 친숙함이었을 것이다.
감옥에서의 20년이란 짧은 세월이 아니다. 매일 좁은 공간에서 정확한 직업과 이름이 아닌 번호로만 불리는 다양한 사람들을 수없이 거치고 부대끼며 사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거기서 그는 자신을 하나하나 깨트려 알아가는 시간이었다고 한다. 자신을 깨트린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무기징역이라는 것이 부당하다 생각하고 감옥이라는 상황이 힘들었다.
많은 무기수들은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비극의 주인공으로 생각하지 않고 그냥 자기 운명처럼 살아간다.
다른 사람들을 보며 내가 특별하게 저 사람들보다 더 괴로워해야 할 권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사람마다 형량을 받아들이는 무게는 다르다. 그 사이에서 사건에 비해 형이 작다 많다를 논할 자리는 아닌 것 같다. 내 문제와 상황을 볼록렌즈를 끼고 크게 보면 볼수록 문제는 부각되고 내가 세상에서 제일 비참한 사람이 된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은 그것에 별다른 관심이 없다. 나에 대한 관심은 오로지 나만 가진다. 현실에서 어떻게 그 상황을 해석하고 이해해서 자기 성찰의 길로 들어서느냐가 관건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감옥에서의 시간을 통해 인간에 관한 생각이 변했다고 한다. 그는 자기 성분의 개조를 했다. 굉장한 변화를 이루었다는 뜻일까? 성분은 물체를 이루는 바탕이 되는 원천이다. 그리고 개조란 오래된 것을 새로운 것으로 바꾸거나 교체하는 것을 말한다. 두 단어를 조합해서 보면 자기를 이루는 바탕이 되는 원천을 새롭게 바꾸거나 교체했다는 뜻이다. 자신을 본질적으로 뜯어고쳤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어떤 과정을 거쳐서 자기 성분 개조를 이룬 것일까? 상황, 관계, 사색 등을 통한 통합적인 변화일까?
그러나 20~30년 만에 만난 친구들이 그를 보고 “하나도 안 변했다.”라고 말했다. 이때 그는 자신의 성분을 개조했다고 하는 것은 착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을 개인적인 단위로 변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 사회복지 수업에서 매번 반복해서 들었던 ‘환경 속의 인간’이란 문구가 떠올랐다. 사회복지현장에서 대상자에게 개입을 할 때 개인의 치료로 처음 접근한다. 그러나 개인의 치료는 한계가 있다.
대상자와 함께 살고 있는 가족, 주거 공간, 사회적 환경들이 다면적으로 개선되고 바뀌어야 대상자의 치료와 재활효과가 커진다. 그런 의미에서는 그가 말하는 개인단위에서 변화가 불가능하다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한 개인이 아무리 좋은 치료를 받고 퇴원을 해도 다시 어그러지고 찌그러진 가족관계와 열악한 상황에 들어가면 재발이 되거나 증상이 악화된다. 회전문 현상처럼 다시 병원에 오는 모습을 비일비재하게 보았다.
또한 교도소에서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는 마음을 먹고 출소를 해도 그를 받아줄 가족과 사회적 시스템이 되어있지 않으면 다시 이전에 범죄를 가까이하게 된다. 그것이 정당하다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니다. 그럴 수 있는 확률이 높아져 교정의 길과는 멀어진다는 것이다.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선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말이 아프리카 나이지리아 속담에 있다. 이 속담으로 내가 하고자 하는 문장으로 다시 바꾸어 표현하고 싶다. 지역사회정신보건 현장과 교도소에서 일을 하면서 느낀 중요한 한 가지는 ‘건강한 한 사람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국가, 지역,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개인의 의지와 다짐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여기서 나는 재정적인 지원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따뜻한 눈빛과 관심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편견과 선입견들로 인해 그들은 제한된 공간이 아닌 사회에 나와서도 제한된 공간에 갇혀 산다.
그는 마지막으로 인간의 근원적인 기쁨이나 아픔이 개인적 존재로부터 오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징역이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춥고 배고픈 게 아니다. 정말 힘든 고통은 자기 때문에 마음 아파하는 가족들과 가까운 지인들의 아픔이 다시 자기에게 돌아온다. 개인에게 정서적 영향을 끼치는 관계를 지지체계라고 부르고 싶다. 인간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 우리는 서로 독립된 개체이면서 필요에 의해서 서로 의지할 수 있는 관계이기도 하다. 감옥이든, 정신병원이든, 지역사회이든 우리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관계 속에서 서로 얽히고 설기며 살아간다. 그 관계가 조금 더 건강한 관계로 나아간다면 한 사람의 개인도 더 건강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한다.
그의 인터뷰를 통해 그가 20년의 수감생활을 대학이라 비유했던 것처럼 나에게 교도소는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나에게 교도소는 가지각색의 다양한 대상자들을 만나는 확장된 공간이었다. 개인적으로 깊은 갈등과 고민의 시간이 있었다. 한 사람을 이해하는 게 이렇게 힘들고 어려울 수 있고, 한 사람의 변화가 나 혼자의 힘만으로는 안 되는구나를 절실히 느꼈다. 나는 신이 아니다. 신은 신의 대행자로 여러 사람을 통해 누군가에게 지금도 손길을 뻗고 있으리라 믿는다. 나도 그 누군가에게 내가 생각하는 도움이 아니라 그들이 원하고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