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묵칼레로 가는 길은 이스탄불에서 비행기를 타고 (음 얼마쯤 걸렸더라 2시간 정도?) 이즈마르에 도착해 버스로 2시간 반 이동했다.
가까이 다가가자 지대가 높은 곳인지 주변이 탁 트여 광활한 하늘이 200도 각도로 감싸고 있는 듯 보였다. 높은 구조물이 없는 자연환경 안에 담겨 있으니 거대한 땅만큼 내 마음도 거대해졌다. 어떤 못된 놈이라도 다 용서할 것 같아 두려웠다고나 할까.
가는 중에는 운 좋게 알록달록한 열기구 대여섯 개가 둥실 떠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 사람들은 일시에 "와아" 하는 함성을 지르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실컷 하늘을 날다 내려오는 중인지 거대한 풍선 하나가 우리 쪽으로 바람에 실려 다가왔다. 믿어지지 않는 크기는 UFO를 떠올리게 했고 나도 그 멋진 풍경에 나를 찰칵 붙여 넣었다. 쉽게 볼 수 없는 광경이었기에 사람들은 한동안 얼빠진 표정으로 거기에 붙들려 있었다.
잠시 후 도착한 파묵칼레.
파묵칼레는 뜨거운 온천수가 석회암 지표면 위로 흘러나오며 하얀 단차가 계단식으로 만들어진 자연적인 지형으로 유네스코 세계복합유산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하얗기가 목화솜 같아 이름이 파묵칼레(목화성)라는데 일몰 시 내려앉는 석양이 고인 물에 비추어질 때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한낮이었지만 날이 흐려서 하얀 표면에 반사하는 눈부신 햇빛도 없었고 아름다운 노을도 당연히 도착할 시간이 아니었다. 그뿐이랴. 미리 찾아본 사진과 달리 온천수가 메말라 고여있는 물도 호수 같기보다는 비 온 뒤의 웅덩이처럼 복숭아뼈 아래로 간신히 찰박거릴 뿐이라 감동하기엔 조금 싱거웠다. 지금은 일부러 인공적으로 매일 물을 뿌려가며 색의 갈변을 방지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나. 기후변화 탓이라고 한다.
바닥은 석회성분이 깔려있어 이끼 낀 냇가의 돌바닥처럼 무척 미끄러웠다. 신발과 양말을 벗고(단구를 보호하기 위해 반드시) 아기처럼 아장아장 걸어갔다. 사람들은 조심조심 끈기 있게 저 아래쪽까지 걸어갔지만 우리는 자신이 없어(미끄러져 다치거나 심지어 죽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중간에 가장자리 물 막음 턱에 엉덩이를 소심하게 걸치고 흐르는 물에 발을 담갔다. 가장자리로 흐르는 물은 미지근했고 아래쪽으로 골을 이루어 흘러내리는 힘이 꽤나 세서 우리 모두는 본의 아니게 남녀 불문 두발을 한쪽으로 단정하게 모으는 정숙한 자세가 되었다.
과거 리즈시절 사진을 걸어놓고 어떻게든 젊은 시절로 돌아가려 하는 가련한 여인처럼 내가 본 파묵칼레는 애처로웠다. 여행 사진 속에서만 과거의 아름다움과 영광을 추측해 볼 수 있다니.
( 작은 가판대 옆, 길고양이가 과자 먹는 나에게 친한 척 다가왔다.)
그래도 아래쪽으로 내려다보이는 작은 시골 동네는 옹기종기 호빗 마을 같아 정겹고 아름다웠다. 크게 보면 굵직굵직하고 광대함 땅이 시원하게 펼쳐진 가운데 백설기 떡 같은 흰 덩어리가 엉뚱하게 자리 잡은 지형이 파묵칼레였다. 날이 맑고 해가 좋은 날에 파란 하늘이 물에 비치면 사파이어처럼 빛날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연이어 카트를 타고 뒤쪽 등성이를 열심히 올라갔다. 여기는 '히에라폴리스'라고 했다.
다가서니 아래로 거대한 원형경기장이 갑자기 나타났다.
마치 마술처럼 눈앞에 펼쳐진 경기장의 웅장함에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저 한참 아래에는 내가 발을 담갔던 파묵칼레가 내려다보였고 작은 마을도 까마득하게 내려다보였다. 어디를 파도 고대 로마 유적지가 드러난다는 튀르키예. 여기 역시 기원전 2세기 유적이라고 한다.
근처에는 네크로폴리스라는 죽은 자들의 도시가 있었다. 도시라기보다는 석관묘들이 여기저기 돌출된 넓은 지역이었다. 점점 어두워지는 가운데 우리는 이곳에서 2천 년 동안 고인 육중한 고요와 평안을 느낄 수 있었다. 귀족이나 왕족들의 무덤이라 했고 가난한 서민들은 그냥 구덩이에 한꺼번에 묻혔다고 한다. 쯧쯧.
여기 서 있는 몇몇의 우리들은 수적으로 너무 열세이기도 했고 기분도 으스스해서 이들의 심기를 거스를까 조용하고 겸손하게 죽은 자들의 도시를 거닐었다.
세상 모든 영화로운 것들이 종국에는 먼지로 돌아간다는 절대의 진리를 긴 설명 없이도 우리는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이 많은 증인들이 여기 이렇게 누워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