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과 아버지

by 범고래



이틀 전 오전 10시 나는 홈통에서 뚝뚝 떨어지는 뭉툭한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침대에 누워있었다. 바깥은 비가 오고 흐릿한 안개 같은 게 끼어 마당의 나무도 주변 건물도 꿈처럼 몽롱하게 보였고 나조차도 사물과 섞여 흐릿하게 느껴졌다. '물아일체'라는 게 이런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난 철학적일 때가 있어 '나'라는 존재에 대해 가끔씩 뒤적이며 들여다볼 때가 있다. 오래되고 누렇게 바랜 옛날 잡지를 팔랑팔랑 넘기며 그 시절 촌스럽고 민망한 패션과 가십을 읽을 때 느끼는 감정처럼 내 삶의 기억을 되짚어 나가는 일은 몸이 조금 꼬이고 마음이 복잡해진다.

9살쯤 되었을까 아니면 10살. 살기 팍팍한 집안에서 으레 그렇듯 아침부터 엄마는 아버지에게 소리를 지르며 역정을 내고 있었다. 작고 허름한 방문을 넘어 들려오는 엄마의 잔소리는 쥐꼬리만 한 돈을 벌어다 주는 가장의 취약한 자존심을 흔드는 닳고 닳은 것들이어서 듣는 당사자가 아닌 나에게도 고막에서 경기가 일어날 지경이었다.

왜 그랬을까. 그날따라 아버지가 무척 불쌍하게 느껴졌다. 약간의 용돈을 구걸하다 된통 당하고 저벅저벅 일터로 향해가는 아버지의 발걸음 소리가 얇은 벽 너머 골목길에 울려 퍼졌다. 난 얼른 일어나 골목 쪽으로 난 조그만 들창을 드르륵 열고 아버지를 작은 소리로 부른 후 창문 사이로 500원짜리 지폐 한 장을 접어 넘겨주었다. 아버지는 내가 준 꼬깃한 지폐를 건네받고는 잠시 망설이다가 기쁜 표정으로 골목길을 돌아서 갔다.

어릴 때 어려운 부모의 사정은 나에게 빨리 어른이 되어서 돈을 벌고 싶다는 조급함을 주었다. 어린 마음에 집안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무력감이 나를 좌절하게 하였고 그런 까닭에 나의 유년기는 오랜 기다림의 허망한 대기시간처럼 느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에게 무슨 그런 돈이 있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아마 오랫동안 안 쓰고 모아 둔 비자금이 아니었을까.

'가난은 부끄러운 게 아니고 불편한 것이다.'라고 누군가 말했다지만 내가 겪어본 가난은 부끄럽고 슬픈 것이었다.

고등학교가 없는 시골에 살던 나는 통학을 위해 매일 버스를 타야 했다. 불안정한 직업을 전전하던 아버지는 그 당시 내가 다니던 학교가 위치한 도시로 일용직을 다니고 있었고 어느 날 나는 우연히 버스 안에서 아버지를 보게 되었다.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머리 위 매달린 손잡이를 꼭 잡고 차창 밖 넓은 들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몇 사람 건너 추레하고 군데군데 흙이 묻은 아버지 역시 창밖을 바라보며 서있는 걸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 순간 나는 얼른 시선을 돌리고 못 본 척 조용히 서 있었다. 버스가 종점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는 서로를 못 본 척 그렇게 끝까지 갔다.

시골 버스 안 모르는 사람이 가득한 속에서 무엇이 그리 부끄러워 아버지를 살갑게 아는 척하지 못했을까. 한창 예민한 사춘기 시기라 해도 그때를 떠올리면 내 마음은 슬퍼지고 후회가 밀려온다. 하지만 그때 같은 또래 학생들을 의식하며 창피함을 피하려던 나의 마음이 조금 이해되기도 한다.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을 때도 있는 거니까. 그때 아버지는 버스 안 나의 존재를 눈치채고 있었을까 아니면 정말 몰랐을까.

나에게 아버지의 존재는 목마름 같은 것이었다. 아버지는 무심했고 다른 자식과 구별되게 특별한 마음을 따로 챙겨 받아본 기억도 없었다. 나에게 아버지는 하나였지만 아버지에게 자식은 여럿이었기에 끝까지 돌아올 몫은 없었던 게 아닐까. 그 시절 아버지들은 감정 표현에 서툴렀고 그런 것은 여자들이나 하는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거칠고 가시 많은 어린 시절의 숲을 여기저기 긁히며 헤쳐 나온 나는 나를 항상 뒤에 두고 양보하는 어른으로 자라났다. 하지만 그런 버릇은 나를 때로 밀치기도 학대하기도 하는 나쁜 채찍 같은 것이 되었고 그것은 내가 아무리 몸부림쳐도 내 몸에 찰싹 붙어 하나의 팔처럼 되어버렸다.

오랜 시간 한 겹 한 겹 벗어온 나의 껍질들이 초라하고 너절하다. 활활 타오르는 화롯불에 넣어서 다 태워버리면 마음속 회한과 후회도 다 사라질까. 아름다운 불길 속에서 타오르며 나비처럼 나의 허물들이 허공을 날아오른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다 지워버리고 좋은 기억만을 남길 수 있다면 더 행복해지겠지. 영화'이터널 선샤인'에는 그런 여자가 나온다. 한때 사랑했던 사람과의 기억이 너무 고통스러워 지워버린 여자와 그 여자를 따라다니는 사랑했던 남자.

슬픈 점은 순수한 고통은 없다는 것이다. 99.9프로의 24K 황금같이 순도 높은 고통의 결정이 있다면 무척 수월하게 지워버리겠지만 고통은 그 안에 기쁨도 추억도 사랑도 껴안고 있는 경우가 많다. 분리되지 않는 추억의 떨림과 설렘도 있을 수 있다.

복잡한 인간의 감정을 따로따로 추출해 내는 연금술사가 있다면 우리도 미래 언젠가는 추하고 고통스러운 것들만을 걸러내어 미련 없이 지워버릴 수 있을는지.

비가 온다. 나는 오늘도 침대에 누워 툭툭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듣고 마당의 나무와 때 이른 꽃들의 추운 얼굴을 바라본다. 날이 흐리고 밤처럼 어둑어둑한 날이면 무거운 추라도 매달린 듯 몸이 한없이 무겁고 머릿속이 흐릿하다. 덩어리 져 흘러가는 날들이 목구멍에 걸려 넘어가질 않는다. 이런 날은 이불을 덮어도 춥다. 슬프게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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