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사 온 날 옆집 할머니는 "새로 이사 왔어요?" 하고 무척 반갑게 말을 건넸다. 나는 이사 온 게 대단히 칭찬받을 일이라도 된 듯 자랑스럽게 "네" 하고 힘차게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어릴 적 부모님과 주택에 살았던 때 외에는 아파트에서만 줄곧 살다가 큰 용기를 내어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했다.
어느 봄날 우리는 적당한 시골집을 찾아 이리저리 차를 타고 이동하고 있었다. 그러다 지쳐 돌아가려던 참에 해 질 녘 우연히 아담한 전원마을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시간은 내가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었고 그 계절 또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었다.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 우리는 차를 멈추었고 동네를 둘러보았다.
마을은 저물녘 분홍과 황금빛이 섞인 비스듬히 기울어진 노을빛을 받으며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집집마다 딸린 아담한 정원에는 한참 흐드러지게 핀 벚꽃과 앵두꽃 홍도화 조팝나무들이 내뿜는 달콤한 향기가 가득했다.
교외로 뻗어 연결된 경전철. 거기서 내려 하나 둘 퇴근하는 사람들은 등 뒤로 붉은 저녁놀을 후광처럼 두르고 기운차게 동네 안쪽으로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시골이지만 도시로의 연결도 나쁘지 않고... 마을 주변을 크게 감싸고도는 나지막한 산자락도 아름다웠고 근처엔 다정해 보이는 천도 흐르고 있었다.
사람으로 따지면 팔방미인이 따로 없었다. 그렇게 나는 눈에 콩깍지가 씌워지게 되었고 그 마을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집도 분명 운명이 작용한다. 그렇게 첫눈에 반해 들어와 살게 된 지 벌써 4년. 시골에서의 시간은 느리다고 들었는데 왜 그런지 여기에서의 삶은 팽팽 돌아가는 기분이다.
때가 되면 깨어나고 움직이고 일을 하는 자연의 모든 것들의 부지런함은 놀랄 정도다. 한치의 어긋남도 없는 자연의 시간표에 따라 모종을 심고 거름을 주고 나무를 가꾸고 하는 연속된 일련의 활동들을 하며 기쁨과 보람을 느끼다 보면 한 해가 휙 지나가버린다. 그럴 때는 나도 이제 대자연의 일부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자연의 수레바퀴를 따라 돌고 도는... 자연에의 소속감, 안정감이 주는 편안함에 몸과 마음을 기대 본다.
낮은 울타리 너머로 보이는 옆집 할머니네 마당에는 이름 모를 나무와 꽃들이 가득하다. 처음 왔을 때부터 그 정원은 눈부신 미모를 자랑하는 내로라하는 정원이 가득 들어찬 마을 속에서도 눈에 띄게 아름다웠다. 무슨 마법이라도 부리는 건지 신화 속 미다스 왕처럼 만지는 것마다 꽃과 나무가 활활 불타오르는 것처럼 피어났다. 꿀벌처럼 부지런한 할머니의 역작이다.
텅 비고 허전했던 우리 집 마당도 이제는 제법 꽃도 많이 피고 벌과 나비도 날아든다. 다 옆집 할머니의 뒷모습을 보고 배운 것이다. 혼자 사시지만 기운차게 살아가는 모습이 나에게 많은 힘을 준다. 꼼꼼하고 계획성 있게 가꿔나가는 모습에서는 농부가 일 년 농사를 대하는 듯 진지함이 배어있다. 자식들이 다 커서 훌쩍 떠나버린 텅 빈집에서 정원은 할머니의 곁을 끝까지 지키는 효심 깊은 자식만 같다.
집의 정원이 집주인의 성격과 태도를 많이 드러낸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전원에 사니 꽃과 나무 가꾸는 일을 당연히 좋아하겠거니 하겠지만 흙마당이 요구하는 일들이 번거로워 작은 마당이라도 모조리 돌을 깔아 풀 한 포기 나지 않게 하는 사람도 있고 벌레 생긴다고 꽃을 한 포기도 심지 않고 무뚝뚝한 나무만 심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대부분은 자연이 좋아 온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집집마다 정원은 개성이 넘치는 예술품만 같다.
뚝딱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비와 바람과 햇빛이 빚은 자연의 시간이 충분히 흐르고 꽃과 나무가 스스로 준비가 되었을 때 정원은 말할 수 없는 절정의 순간을 보여준다. 몇 년의 숙성된 시간이 머무는 정원의 그윽하고 매혹적인 아름다움이 주는 기쁨을 어디에 비교할 수 있을까. 정원은 정원사의 의도와 의지 말고도 자연의 축복이 꼭 필요한 신성한 공간이기도 하다.
철마다 피고 지는 꽃과 열매, 숲을 흔드는 바람, 땅에 내린 서리와 눈, 생명력 넘치는 새소리가 나를 품어주고 달래준다. 이유 없는 괴로움과 우울이 나를 짓누를 때마다 질문하지 않고 조용히 다독이고 위로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