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엔 세상이 헤아릴 수 없이 넓고 신비한 것들로 가득한 줄 알았다.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앞산을 보면서도 그 너머 보이지 않는 세계를 상상하고 동경을 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갇혀있는 듯한 상황에서 유일하게 날개 달린 상상만이 나에게 자유를 주었다.
어른이 된 나는 그동안 보고 듣고 가보고 했던 많은 경험들로 닳고 닳아 이제 더 이상 그것들을 바라봐도 예전처럼 마음이 설레지 않았다. 아름다운 여인은 그대로인데 내 마음이 변했다고나 할까.
어른의 현실적인 두뇌는 꿈과 몽상을 해부하고 그 쓸모와 효율성을 찾는다. 그 결과 그러한 몽상적 DNA가 원시세포만큼이나 단순하고 현실에 맞지 않다는 걸 간파한다. 쓸모와 경제적 가치가 증명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흔히 그러듯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무시되고 버려진다는 뜻이다. 그저 과거 벗어던진 허물을 유치하고 혐오스럽게 바라볼 뿐이다.
우리의 눈 역시 두뇌와 마찬가지로 점점 변해 고도근시가 되어 버렸다. 눈앞에 보이는 물질 자체에만 탐닉하게 되고 그 너머의 신비롭고 신성한 영역은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어버렸다. 보지 않다 보니 보는 능력이 퇴화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것은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영혼이 존재하는 걸 스스로 알듯 확실히 거기에 있다.
그렇게 팔베개를 하고 누워 상상하던 꿈과 동경은 이제 대부분 사라져 버렸다. 마음만 먹으면 세상 곳곳을 다 가볼 수 있는 지금 그곳에 뭐가 있는지 누가 사는지 다 봐 버린 지금 우리에게 더 이상 무슨 환상이 있을 수 있을까.
그래도 냉정한 현실 속에서 살아가느라 지치고 힘들 때면 가끔 그것들을 꺼내 냄새를 맡고 몸에 두르고 덮어본다. 그것은 익숙하고 안정감을 주는 어릴 적 애착이불처럼 나를 위로하고 먼 꿈의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잠시라도 한눈팔면 코가 베이는 세상에서 긴장을 늦추지 않고 살다 보면 감정은 나도 모르게 점점 굳어지고 딱딱해진다. 그리고 그 감정에 짓눌린 마음에선 피가 스며 나오고 아파진다. 돌멩이 사이에 끼인 딸기처럼 짓눌려 뭉개지는 기분. 나처럼 빨갛고 즙 많은 심장을 가진 사람이라면 조금쯤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쓸모없어 보일 수도 있는 너절한 감정과 기억들을 다 갖다 버릴 수 없는 이유는 그것들이 품고 있는 삶에 대한 무한한 희망 때문이다.
'뭔가 더 있을 거야. 보이는 게 다는 아닐 거야. 세상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많은 비밀을 숨기고 있어. 인간도 마찬가지야. 정말 실망스러울 때가 많지만 우리는 인간에 대해서도 모르는 게 많잖아. 생각보다 아름다운 존재일 수도 있어.'
자잘하고 사소한 것들에 긍정적인 시각과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는 나는 큰 틀의 세상과 인생에 대해서는 관대하지 못하고 부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다. 작게는 쉽게 감사하고 용서하지만 큰 틀을 삐딱하게 보는 건 뭘까.
사소하게 잘 웃고 행복해하는 사람이, 쉽게 감동하고 많은 아름다운 것들을 알아보는 사람이 그런 모순을 가지고 살아가는 건 참 힘들다.
덤덤하고 씁쓸한 음식도 소금치고 양념하며 삶에 섞고 매일의 시간 속에 섞다 보면 먹을 만하고 삼킬 만해진다.
토할 것 같은 순간에도 황당한 생각과 꿈일망정 삶의 길에 장착하고 살아가는 한 견딜 만해지고 세상도 어린 시절처럼 다시 신비로운 것들로 가득해질 것 같다.
사막 속 신기루는 열망하는 사람 눈에만 보이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