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알을 낳는 거위는 아니지만

by 범고래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하는 등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가 좋아서 하는 그 모든 예술적 행위들. 그리고 그 안의 생각과 감정을 나누고 공유하며 살아간다는 것. 그것은 진심으로 우리의 삶을 충만하게 하는 고귀한 행위이다.

살면서 이런저런 많은 일들을 경험하고 물질을 추구하기도 했지만 결국 나에게 남은 건 진실한 동반자, 글과 그림이다. 사람은 아니어도 내가 외롭고 슬플 때 위로를 주고 달래주는 어쩌면 사람보다 나은 그 무엇이었다.

하지만 그것 역시 사람처럼 잘 지내다가도 갈등을 하고 괴로움이 있기도 하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거나 나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가 가출이라도 하게 되면 모든 게 싫증 나기도 하고 심지어 지긋지긋한 감정이 들기도 해서 나도 뮤즈를 따라 가출이라도 하고 싶어진다.

그럴 때는 평소에 주변 사람들의 표정에서 언뜻언뜻 보였던 무언의 회의감이 나를 괴롭게 한다.

'그래봤자 돈이 되는 것도 아니잖아.' 하는...

애써 못 본 척 아닌척하려 해도 그런 회의감은 쉽게 전염되어 나를 점령한다. 아니 어쩌면 그 씨는 이미 내 안에 심어져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다양하고 많은 가치들이 있지만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돈의 위력은 다른 모든 가치 있는 것들을 누르고 시들하게 만들어버렸다.

그런 아름답고 진실한 것들에 물을 주고 가꾸며 다시 되살리려는 나의 모습은 소행성 B612에서 장미꽃에 물을 주고 가꾸는 어린 왕자와 같다.

화산 세 개와 장미꽃 한 송이가 살고 있는 작은 소행성에서 왕자는 장미꽃을 애지중지 키우며 장미꽃의 불평과 짜증을 다 참고받아준다. 어리지만 어른보다 넓고 성숙한 마음을 가진 어른 왕자다. 모든 회의감을 누르고 의심 없이 키워나가는 일은 해보면 알겠지만 무척 어려운 일이다. 키우고자 하는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의심과 불안의 싹이 자라 수시로 마음을 흔들어대기 때문이다.

비현실적인 것만 같지만 사실 소행성 B612는 실제로 존재하고 천문학자에게 한번 관찰된 적도 있다고 한다. 어린 왕자가 키운 장미꽃도 분명히 그곳에서 잘 자라고 있을 거라고 믿는다. 의심 없이 키워준 어린 왕자의 기대대로 훌륭하게 성장해서 왕자를 행복하게 해 줬을 것이다.

우리가 상상하는 모든 것들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어떻게 증명할 수 있겠는가. 어떨 땐 현실이 꿈같기도 하고 꿈이 진짜 현실은 아닌가 생각되기도 하는데 말이다. 우리의 감각도 우리 머릿속 대뇌피질의 장난인 건 아닌지 생각될 때도 있다.

오늘은 나에게 소중한 것들 위에 회의감이라는 두꺼운 겨울이불이 덮여있는 날이다. 바라보고 있으면 괴롭고 힘들지만 어쩌면 그것은 따뜻한 아랫목 이불속에서 발효되는 청국장처럼 더 좋은 글, 더 아름다운 그림을 위해 꼭 필요한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는 아니지만 생명을 품은 알이기를 희망하며 오늘도 기운을 내어 알을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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