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빛바랜 추억

소년과 소녀의 안타까운 사랑이야기

by 규린




누구나 어린 시절의 기억은 가지고 있다. 자세히 기억하지는 않지만 어렴풋이 기억나는 어렸을 적, 흑백 사진처럼 파노라마가 그려질 것이다.

과거 한 편의 추억이 시렸던 한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십 년도 더 된 일이다. 무더운 여름날, 더위에 지쳐서 잠시 쉴 겸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서 쉬고 있는 한 8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 소년. 그 소년 옆에 동갑내기처럼 보이는 한 소녀가 옆에 앉는다. 부드러운 갈색 머리칼에 동글동글한 얼굴을 가진 귀엽게 생긴 소녀. 그 소녀는 소년에게 말을 걸었다.

"혼자서 뭐 하고 있었어?"

"누구..?"

"나는 김수정이라고 해."

"아아.. 나는 이지훈."

지훈의 이름을 들은 수정이 밝게 웃으며 물을 건넸다. 그리고 이내 말을 이었다.

"우리 항상 이 벤치에서 만나는 거다?"

"좋아."

그렇게 둘만의 약속이 생겨버렸다. 이름도 성격도 처음 알게 된 친구.

벤치 앞의 인연이었다. 어쩌면 더운 날씨가 둘이 친구가 되도록 도와준 걸지도 모르겠다.

하루하루 그 둘은 벤치에서 만나서 서로 아이스크림도 먹고 놀이터도 갔다가 신나게 놀았다. 그렇게 둘은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정은 지훈에게 전학이라는 소식을 전해온다.

이사를 가야 해서 더 이상 지훈과 만날 수 없다고.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흘리는 지훈에게 수정이 그런 그를 끌어안아서 다독였다. 그리고 말했다.

"고등학생 때 인연이 된다면 보고 만날 기회가 있을 테니 그때 만나면 그때도 처음 봤을 때처럼 환하게 웃어줘 그것만 약속해 줘, 지훈아."

"응!"

그렇게 바쁘던 나날 열아홉 무렵, 수정과 지훈은 다시 만났다.

수정이 지훈네 반으로 전학 온 것이었다. 그때보다 키도 커지고 훨씬 예뻐져서 지훈은 다른 사람인 줄 알았으나 자신을 향한 진심 어린 눈빛이 그때 그 꼬마아이 수정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다시 인연을 시작한 둘, 서로에게 감정이 싹트고 바라만 보아도 가슴이 두근거림을 느꼈다. 그렇게 둘은 사랑이란 감정을 깨달았다.

하지만 서로 눈치만 봤을 것이다. 동성끼리 좋아한다는 인식이 보편화되지 않았던 것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훈은 결심했다.

3월의 진달래 꽃이 가득 근처에 피어있는 벤치에서 수정에게 고백을 청하기로.

"수정아, 좋아한다."

"... 나도 사랑해."

둘은 연인의 결실을 맺었다. 서로 원했던 관계였기에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둘은 아름답게 연인의 관계를 이어나갔다.

그렇게 7년간의 사랑을 꽃피웠다. 7년간의 사랑은 변함없었다. 여전히 수정과 지훈은 달달했다. 하지만 7년 동안 한 번도 갈라질 거라 생각도 하지 않았던 수정의 믿음은 와장창 깨져버렸다.

수정은 사실 지훈과 결혼까지 가도 괜찮을 것이라 생각할 만큼 그를 신뢰하고 있었다. 하지만 누가 그랬던가, 믿음이 깨지면 사랑도 이어나가기 힘들다고.

지훈은 회사 일로 점점 늦어지자 수정에게 소홀히 대했고 거짓말만 늘어갔다. 지훈의 거짓말인 걸 알아도 힘들겠지 하고 넘어가준 게 다반사였다. 그래도 지켜야 할 선이 있는 법.

수정은 지훈을 보러 회사 앞에 찾아갔다가 다시는 눈뜨고 보기 힘든 광경을 목격했다.

바로 지훈이 다른 여자와 애정행각을 나누고 있었던 것. 이 행동은 아마 오해일지 사실일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야 이지훈!! 너 집에서 보자!"

덤덤하게 말했지만 속으로는 울고 있었다. 수정은 집에 주저앉아 울었고 결별하기 위해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때 인터폰 소리와 함께 지훈이 들어왔다.

"수정아."

"... 내가 널 믿은 내가 바보인 거지? 그렇지? 7년 사귄 애인한테서 바람을 피워?"

"그게 아니라 오해야."

"오해? 눈앞에서 똑똑히 봤는데 뭔 오해야, 헤어지고 싶으면 말하지 꺼져줄 텐데 그래줄 수 있는데 그걸 이딴 식으로 표현해?"

"...."

지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눈물을 또르르 흘렸다.

울고 싶은 건 수정 자신인데 되려 지훈이 울자 너무 화가 난 수정은 집을 나가버렸다.

"쾅"

사실 지훈은 바람을 핀 게 아니었다. 비밀스러운 업무를 맡게 되어서 그거에 대해서 상사와 토론하고 있었고 그 업무가 수정에게 영향을 미치면 자신이 사랑하는 수정이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에 말하지 않은 것이었다.

수정은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말할 상황도 없었고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다. 그렇게 수정은 지훈을 잊기 위해 노력했지만 마음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지훈은 중요한 업무로 인해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 일은 그의 생명을 위협하는 일이었고, 수정에게는 아무것도 말하지 못한 채로 그 상황을 맞이했다.

결국 지훈은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수정은 그 소식을 듣고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지훈과의 추억이 담긴 사진들을 바라보며 그리움을 느꼈다.

"내가 널 믿지 못해서 미안해, 지훈아."

수정은 지훈과의 약속을 되새기며, 그를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녀는 지훈이 남긴 편지와 반지를 품에 안고 그를 추억하며 눈물로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하늘에서 지훈도 수정의 슬픔을 함께 느끼고 있을까. 비가 내리던 날, 수정은 그를 다시 만날 날을 꿈꾸며 기도를 했다.

소년과 소녀. 이뤄지지 않았던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 그들만의 빛바랜 추억이자 이제는 한 사람만 그리워하는 연인 이야기.

이지훈과 김수정의 빛바랜 추억이자 사랑의 인연 이야기를 끝맺을까 한다. 다음 생엔 초월하더라도 꼭 이뤄지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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