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

2+2=4

by 그냥 직장인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


상반된 두 단어들로 이루어진 슬로건, 이 슬로건은 1984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세뇌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등장한다. 이 슬로건은 '이중사고' 그 자체를 의미한다. 서로 상반된 무언가를 의심 없이, 곧이곧대로 믿게 만드는 '이중사고'는 빅브라더가 우리에게서 삶에 대한 주체를 강탈하기 위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수단이 된다.


그렇게 이중사고에 잠식된 세계 속 시민들은 그저 당이 시키는 대로 종이 울리면 스크린 속 골드스타인에게 증오를 내뿜고 2분 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원래대로 돌아가며, 전쟁 중이던 대상과 동맹국 하루 만에 바뀌어도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이런 이중사고의 세계 속 윈스턴은 일기를 쓰며 의심을 하고, 줄리아와 함께 당이 금지하던 쾌락을 위한 성관계를 맺는다. 그런 행복도 잠시였다. 당의 함정에 의해 발각되어 수년간 고문을 받고 결국 자신도 모르게 세뇌당하는 그런 이야기이다.


1984에서 언어는 지금의 언어와 다르다. 지금의 언어에서 여러 과정을 거쳐 삭제와 축소를 거쳐 최소한의 단어만을 남겨두었다. 그렇게 탄생한 신어는 시민들의 사고의 폭을 좁히는 데 사용되었고, 이중사고와 함께 시민들을 제어하는 도구가 되었다. 언어의 힘은 강하다. 이동진 평론가님이 쓴 한줄평 중 "명징하게 직조해 낸"이라는 부분이 생각났다. 기생충의 한줄평이었는데, 이 한줄평이 나왔을 당시 몇몇 사람들에게 비난받았던 기억이 어렴풋이 있다. 이유는 단순했다. 어려운 단어였으며, 일상에서 잘 쓰이지 않았던 단어였기 때문에, 그게 전부다.


명징과 직조, 엄연히 존재하는 단어임에도 유사한 단어가 있기에 우리는 자주 쓰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러나 모든 단어는 모든 상황에서 그 의미를 조금이라도 더 세밀하게 전달할 필요가 있기에 유사한 단어들이 생겨났다. 그러기 위해 태어난 유사한 단어들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1984에서 신어만을 사용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세상이 되지 않겠는가.


1984에서 전쟁은 타국을 지배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시민들을 지배하기 위한 수단이다. 시민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시민들의 분노를 외부로 돌리기 위한 수단이다. 그런 당의 지배 속에서 시민들이 자유라 느끼던 것은 빅브라더와 텔레스크린으로 인해 예속되어 왔고, 그런 상황에 무지함으로써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런 세계 속 생각을 통해 마지막 인간으로 존재했던 윈스턴은 101호실에서 끝내 생각을 잃었다. 빅브라더를 사랑하지 않던 윈스턴은 실존하는지도 모를 빅브라더를 보며 자신과의 투쟁에서 승리했다 생각했다. 그러나 결국 그의 과거는 빅브라더를 사랑했던,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1984는 현재도 진행되고 있다 말한다. 주변의 CCTV들과 스마트폰, 그런 텔레스크린이 우리를 감시하는 게 1984와 다를 게 없다고 말한다. 며칠 전 대선이 끝났다. 대선 기간 동안 내 인스타와 유튜브는 대선후보들의 과거와 논란을 내게 끊임없이 주입시켰다. 내가 원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윈스턴은 101호실에서 가장 큰 공포를 느끼며 결국 자신의 생각을 잃었다. 우리는 각종 알고리즘에서 공포를 느끼진 않지만 생각을 잃어가고 있다.


2+2를 결국 5라고 적은 윈스턴과 달리 우리는 마지막까지 4라고 적을 수 있을까, 마지막까지 인간으로 남을 수 있을까. 2025년의 세계는 1984처럼 여러 불합리를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느낄 수 있는 세계가 아니다. 우리에게 조용히 영향을 끼친다. 1984와 다른 점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