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지프 신화

시지프스

by 그냥 직장인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이방인을 읽고 사실 카뮈가 말하는 부조리에 대해 이렇다 할 깨달음 보단 애매모호한 감정이 우선이었다. 사형을 앞둔 뫼르소의 폭발적인 외침과 해설, 여러 서평을 접한 뒤에야 "아, 카뮈가 말하는 부조리는 우리가 선택할 수 없고, 원하던 원하지 않았던 변화시킬 수 없는, 우리가 우리의 잣대로만 의미를 부여한 그 무엇인가?"라는 짐작만 할 수 있었다.


그랬기에 카뮈가 자신의 부조리에 대한 사상을 에세이로 옮겨낸 '시지프 신화'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카뮈는 어째서 자살을 철학적 문제라고 결론지었을까. 카뮈에게 있어 자살은 부조리에 있어 반항이 아닌 '도피'하는 수단이라고 하였다. 어려서부터 죽음이란 부조리와 가까운 위치에서 치열한 반항을 해왔던 카뮈였기에 이런 생각을 가질 수 있었나 싶다.


처음 책을 구매할 때 왜 하필 '시지프 신화'라는 제목일까 잠깐 고민했었다. 이 책은 3장의 에세이를 통해 부조리를 설명 한 뒤 시시포스 신화를 얘기한다. 시시포스는 천벌을 받고 영원히 언덕 위로 돌을 굴려야 하는 형벌에 처해진다. 돌덩이에 눌린 뺨, 그것을 떠받치는 어깨, 흙투성이가 된 몸, 그렇게 정상까지 힘겹게 굴려 올라간 돌덩이는 다시 반대편 아래로 떨어져 버린다. 이런 무의미한 상황은 시시포스에게 있어 부조리이지만 시시포스는 정상에 오르며 신들을 부정하고 저항하며 운명이라는 돌보다 우월해진다.라고 카뮈는 말한다.


오늘날 인간들은 죽음이란 부조리 앞에 무의미한 출근과 일주일 내내 똑같은 일상을 반복한다. 카뮈가 살던 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랬기에 카뮈에게는 우리가 또 다른 시시포스처럼 보이지 않았을까. 그래서 책의 이름을 '시지프 신화'로 바꾸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는 현대의 시시포스가 되어 언제나 같은 일상이라는 돌덩이를 올리고 떨어지는 것을 본다. 그런 과정 속에서 ""왜?"라는 의문이 솟아오르고 놀라움이 동반된 권태의 느낌 속에서 모든 일이 시작된다."라고 카뮈는 말한다. 부조리이다. 카뮈는 그런 부조리를 통해 이끌어 낼 수 있는 귀결이 중요하다 말한다.


그런 부조리에 대한 카뮈가 바라는 우리의 모습은 일생을 거쳐 부조리를 의식하고 그에 반항하며 스스로의 운명에 어떤 형태를 부여할 수 있는 창조하는 우리를 원하지 않았을까 싶다. 돌덩이를 옮기는 시시포스가 형벌이란 부조리 속에서 자신의 삶에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고, 신에게 반항한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산꼭대기를 향한 투쟁만으로도 인간의 마음을 채우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시지프가 행복하다고 상상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