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모나-6
긴 방황의 끝, 새로운 시작을 향하여
그 이후로 나는 계속 방황하고 있었다. 어딘가 텅 빈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일주일이 지나고, 이주일이 지났다. 내가 좋아했던 것들조차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졌고, 모든 것이 희미해 보였다. 그렇게 시간만 흘러갔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내가 이렇게 멈춰 있을 순 없어.' 그러면서도 불안했다.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과연 내가 다시 해낼 수 있을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아무것도 명확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한 고민에도 불구하고 나는 결심했다. 한 번 더 해보자. 그림을 그려보자. 내게는 그림이 전부였고, 그림을 통해 내가 누구인지 찾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에게 다짐했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다시 그리는 손길을 이어가겠다고.
하지만 막상 결정을 하고 나니, 시작이 막막했다. 아무런 기반도 없는 것 같았고, 무엇부터 해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그림을 다시 시작하겠다’는 다짐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금세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도움을 요청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날 저녁, 현진 씨와의 식사 자리에서 나는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저 다시 그림을 배워보기로 했어요,”라고 말했다. 내 말에 현진 씨는 잠시 놀란 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환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정말요? 요즘 안나 씨가 너무 힘들어하는 게 보여서 괜히 제가 그런 말을 해서 더 힘들게 한 건 아닌가 계속 미안했거든요. 근데 이렇게 결정을 해줘서 정말 기뻐요! 안나 씨 정말 잘 결정했어요. 제가 도움이 되는 건 진짜 최선을 다해 도와드릴게요.”
그녀의 말에 가슴이 따뜻해졌다. 나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큰 위로가 되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정말 고마워요, 현진 씨. 사실 저도 용기가 부족해서 쉽게 결정을 못 내렸는데, 현진 씨 덕분에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어요. 그런데 이제부터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고민이에요. 어디서 알아봐야 할지 막막해서요.”
현진 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곰곰이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건… 이제부터 알아보면 되죠! 일단은 안나 씨가 마음을 먹은 게 가장 잘한 일이고, 가장 중요한 거라고 생각해요. 오늘이 특별한 날이 되었네요. 제가 내일부터 같이 알아볼게요. 전에 악기 선생님과 시내에서 잠깐 봤던 준빈 씨가 기억나요? 그분은 여기서 꽤 오래 사셨으니 그림에 관한 정보를 알고 있을지도 몰라요. 만나서 한번 여쭤보는 게 어떨까요?”
나는 그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좋아요. 현진 씨 말대로 천천히 하나씩 알아가면서 시작해 보면 될 것 같아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날 밤, 오랜만에 설레는 기분을 느끼며 잠자리에 들었다. 긴 방황 끝에 마침내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된 것 같았다. 그림과 다시 손을 잡은 느낌이었다. 아직 막막하고 두려운 마음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지만, 내가 한 걸음 내디딘 것이 분명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방황하지 않고, 나 자신을 다시 찾아가기로 했다.
그 결심은 내가 긴 어둠 속에서 빠져나와 다시 빛을 향해 나아가기로 한 첫걸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