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근 습관적 방어
도대체 언제부터였을까? 누군가 내 안부를 묻기도 전에 “괜찮아”라고 대답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전화기 너머 다정한 목소리가 들리면 상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똑같은 대답을 미리 준비해 두곤 했다. 특별히 무언가를 숨기려던 의도는 아니었지만 그저 그 말이 가장 익숙했고, 어색한 상황을 가장 편하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 없이 내뱉은 그 한마디는 조금씩 쌓여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마음을 굳게 닫아버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익숙함 뒤에 숨어 진짜 내 마음을 돌볼 기회를 스스로 밀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숨 고를 틈 없이 내뱉는 “괜찮아”라는 말은 나를 지키려는 방어막과 같았다. 하지만 그 뒤에 숨은 마음은 늘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안심한 척 미소를 짓는 순간에도 속으로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공포를 느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문제 없는 평온한 모습이었지만, 내면에서는 스스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긴장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이러한 긴장감은 일상적인 대화 중에도 불쑥 나타나 나를 압박했고, 누군가 내 마음을 눈치챌까 봐 더 완벽하게 괜찮은 척을 해야만 했다. 그렇게 평온을 가장한 순간에도 내 마음은 쉼 없이 떨리고 있었다.
사실 전혀 괜찮지 않은 날이 훨씬 많았지만, 그럴 때마다 내 몸은 머리보다 빠르게 위험 신호를 보내곤 했다. 출근길 가슴 한복판에 무거운 돌덩이가 얹힌 듯 숨이 조여왔고, 누군가의 무심한 말 한마디에도 가슴이 바닥으로 툭 떨어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나는 ‘이 정도는 누구나 견디는 것’이라며 스스로를 매섭게 다그쳤다. 내 감정을 억지로 억누르는 이 말이 언젠가는 진짜가 되어 정말 괜찮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매일을 버텼다. 하지만 그럴수록 마음의 병은 깊어졌고, 나는 나 자신을 더 큰 고립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내가 진심으로 두려워했던 것은 따로 있었다. “괜찮지 않다”고 솔직하게 말했을 때 마주하게 될 타인의 어색한 표정과 불편한 시선이었다. 나의 나약함이나 한계가 세상에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 견디기 힘들 만큼 무서웠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마음이 힘들수록 오히려 더 완벽한 사람처럼 보이려고 부단히 애를 썼다. 일이 산더미처럼 쌓이고 실수가 반복될수록 내 표정은 점점 더 딱딱하게 굳어만 갔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내면의 긴장은 가슴 언저리에 차갑게 내려앉아 숨을 가쁘게 만들 만큼 나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었다.
어느 날 동료가 “정말 힘들지 않아요?”라고 다정하게 물어도 나는 기계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괜찮아요. 제가 할게요. 별거 아니에요.” 이 말은 내가 유능해 보이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타인에게 실망을 주거나 ‘부족한 사람’으로 낙인찍히지 않으려는 필사적인 노력이었다. 남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순간, 오랫동안 공들여 쌓아온 신뢰가 모래성처럼 한꺼번에 무너질 것 같다는 막연한 공포가 내 발목을 단단히 붙잡았다. 남들에게 민폐를 끼치느니 차라리 혼자 숨을 참는 쪽이 마음 편하다고 믿으며 나 자신을 한계까지 몰아넣었던 것이다.
가장 편안해야 할 집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가족 앞에서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 든든한 보호자여야만 했고, 특히 나를 온 세상인 양 믿고 바라보는 아이 앞에서는 더욱 그랬다. ‘삶이 버겁다’는 진심 어린 고백은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채 늘 목구멍 밑바닥으로 눌러 담아야 했다. 내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일이 혹시나 가족에게 상처를 주거나, 나를 예민하고 유약한 사람으로 만들까 봐 매 순간 스스로를 검열하며 살았다. 그렇게 갈 곳을 잃고 표현하지 못한 감정들은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차곡차곡 쌓여 무거운 짐이 되어갔다.
억눌린 감정들이 한계까지 차오르자 결국 내 몸에서 고장 신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무런 이유 없이 손이 떨리고, 평범한 대화 중에도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통제 불능의 상태가 반복되었다. 더 이상 감정을 숨길 곳이 없다는 공포가 밀려왔을 때야 비로소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마음을 억지로 닫고 외면할수록 그 안에서 지독하게 고통받고 있던 사람은 타인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다는 점이다. 나는 주변 상황을 조용히 해결하고 나를 보호한다는 핑계로, 정작 소중한 내 마음을 스스로 만든 감옥 안에 가두고 방치하고 있었다.
그렇게 꾹꾹 눌러 참은 감정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태연한 척 하루를 보내다가도 홀로 남겨진 밤이면 가슴 깊은 곳에서 서러운 억울함이 울컥 치솟았다. ‘왜 바보처럼 아무 말도 못 했을까’, ‘왜 매번 나만 양보해야 했을까’ 하는 생각에 괴로워하며 스스로를 비난하곤 했다. 결국 분노의 방향은 내가 너무 예민한 탓이라며 나 자신을 향했다. 지금까지 참아낸 시간만큼 커진 자책은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내 마음을 사정없이 찔러댔다. 남들에게는 관대하면서도 정작 나에게는 가장 엄격했던 태도가 나를 더욱 외롭고 비참하게 만들고 있었다.
가끔 예기치 못하게 터져 나오는 날카로운 반응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랫동안 쌓여온 감정들이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결과였다. 솔직하게 말하고 싶었지만 억지로 참으며 삼켰던 기억들, 타인에게는 쉽게 양보하면서 정작 자신은 돌보지 못했던 시간들이 결국 임계점에 다다른 것이다. 분노라는 거친 모습으로 나타난 그 감정들은 사실 나쁜 의도가 아니었다. 오히려 제발 나를 좀 봐달라고, 더 이상은 견디기 힘들다고 스스로에게 보내는 절박한 외침이었다.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늘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 편안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었다. 그 과정에서 “괜찮아”라는 말은 내 속마음을 숨기면서 상황을 부드럽게 넘길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었다. 그 한마디면 껄끄러운 상황이 금방 정리되었고, 겉보기에는 평화로운 일상이 이어졌다. 하지만 내면의 답답함은 점점 더 커져만 갔고, 나의 본모습을 감추고 타인에게만 맞추는 삶은 시간은 갈수록 나를 숨 막히게 했다. 거짓으로 평온을 유지하는 방식이 결국 나를 고립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이제는 “괜찮아”라는 말을 예전처럼 가볍게 내뱉지 않기로 했다.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기 전, 잠시 멈춰 서서 스스로에게 묻는 연습을 시작했다. 지금 하려는 이 말이 정말 내 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실인지, 아니면 단순히 어색한 상황을 피하고 싶어 튀어나온 습관인지를 가만히 살피는 것이다. 아주 잠깐이라도 내 마음의 상태를 확인하며 그 자리에 머물러 보기로 했다. 나를 마주하는 그 짧은 시간은 작지만 내 삶을 바꾸는 소중한 시작이었다.
여전히 나는 습관적으로 괜찮다는 말을 먼저 꺼내곤 한다. 하지만 이제는 그 짧은 대답이 내 마음의 전부가 아님을 스스로 인정할 용기가 생겼다. 매일 아침 거울 속의 나를 정면으로 마주하며 “너, 정말 괜찮니?”라고 다정하게 묻는다. 만약 괜찮지 않다는 대답이 들려온다면, 그 여린 마음을 어떻게 따뜻하게 안아주고 다독여줄지 진지하게 고민하려 한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 그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간, 나는 비로소 억눌렸던 감정에서 벗어나 진짜 숨을 쉬며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