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라는 주문이 멈춘 순간
오늘도 평소와 다름없는 아침이었다. 알람이 울리기 전인데도 몸은 습관처럼 먼저 눈을 뜬다. 하지만 내 마음은 기계적인 몸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늘 뒤처져 있었다. 주방에서 들려오는 단조로운 냉장고 소음, 창틈으로 들어오는 희끄무레한 새벽빛, 그리고 식탁 위 식기들의 차가운 촉감까지 모든 것이 지나치게 익숙했다. 이런 일상의 풍경은 잠을 깨우는 신호인 동시에,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하루를 성실히 살아내야 한다는 무거운 압박감을 조용히 일깨운다.
세면대 앞에 서서 수도꼭지를 틀었다. 손등에 닿은 물에 밤새 열이 올랐던 피부가 식어갈 때쯤, 물기 어린 얼굴을 들어 거울을 본다. 거울 속에는 익숙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생소한 얼굴 하나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마와 코, 입술은 분명 내 것이 맞지만, 그 무표정한 얼굴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낯설기만 했다. 거울 속 인물이 나라는 사실을 인정하려 했으나, 어제와 다른 눈빛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그 시선은 초점을 잃은 듯 그저 텅 비어 있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입꼬리를 살짝 올려 보았다. 아무도 없는 새벽, 욕실에서 억지로 미소를 짓는 건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몸에 배어버린 슬픈 습관이다. 언제부턴가 빍은 표정을 지어야만 밖으로 나갈 준비가 되었다고 믿어버린 듯하다. 돌아보니 이 익숙한 미소는 누군가를 안심시키려는 행동인 동시에, 나 자신을 속이기 위한 비겁한 방식이기도 했다. 오늘도 여전히 거울 속 내 표정이 진짜인 양 믿어보기로 하며, 이 정도면 문제없이 오늘을 보낼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이하며 욕실을 나섰다.
그날이라고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밤새 서럽게 울지도 않았고, 갑작스러운 불행이 닥친 것도 아니었다. 아이는 평소처럼 사소한 투정을 부렸고 출근 시간은 어김없이 다가왔다. 머릿속은 당장 처리해야 할 업무로 가득했으며 다이어리 역시 일과들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그런데 거울 앞에 섰을 때 문득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거울 속 무표정한 얼굴이 마치 나에게 무언가 간절히 호소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한 채 그 자리에 멈춰 서서 한참 동안 자신을 바라보았다.
“괜찮아.”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했지만, 머릿속에선 “오늘도 괜찮을 거야. 아무 일도 없을 거야. 어제처럼만 하면 돼”라는 말이 계속 맴돌았다. 이 말은 나를 다독이는 다정한 응원이 아니었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위태로운 일상을 겨우 버티게 하는 필사적인 수단에 가까웠다. 옷을 입고 가방을 챙기는 동안에도 이 말은 쉴 새 없이 나를 밀어붙였다. 생각을 멈추는 순간 거대한 불안이 닥칠 것 같아, 그 공포를 피하려고 같은 말을 반복해서 되뇌었던 것이다. 그렇게 억지로 하루를 시작하려던 그때, 문득 가슴 한구석에서 낯설고도 묵직한 의문이 하나 들었다.
“나는 언제부터 내 마음을 살피지도 않은 채, 습관적으로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나 자신에게 던진 질문은 가슴을 찌르듯 아프게 다가왔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릴 적 내 감정은 지금보다 훨씬 솔직했다. 좋으면 마음껏 웃었고, 싫으면 온몸으로 저항했던 순수한 기억이 난다. 그때는 울고 싶을 때 어떤 이유나 명분 따위는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서 우리는 감정을 느끼기보다는 억누르는 법을 가장 먼저 배웠다. 울면 상황이 곤란해지고 화를 내면 소중한 관계가 어긋나며, 힘든 기색을 조금이라도 보이면 무능한 사람으로 낙인찍힐 수 있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학습했기 때문이다.
감정을 능숙하게 숨기는 기술 덕분에 사회에서는 교양 있고 성숙한 어른으로 보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겉으로 유능함을 인정받을수록 나는 정작 나 자신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감정을 느끼지 않는 척하거나 억지로 웃어넘기는 법은 분명 지금까지 거친 세상을 버티게 해준 유용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방식들이 오히려 내 목을 조르며 숨을 막히게 한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세운 엄격한 기준들이 어느새 나를 가두고 괴롭히는 날카로운 도구가 된 것이다.
나는 직장과 가정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평형을 유지하려 애쓰며 살아온 평범한 사람이었다. 든든한 보호자이자 유능한 동료, 그리고 언제나 이해심 깊은 친구로 남기 위해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 내게 맡겨진 역할들은 분명 소중했고 나를 지탱해 주는 힘이 되었지만, 타인을 향한 책임에만 집중하느라 정작 나 자신을 돌볼 기회는 갈수록 줄어들었다. 이제는 어디까지가 나의 진짜 마음이고 어디부터가 주어진 역할에 충실한 행동인지 도무지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모든 것이 모호해져 버렸다.
거울 속에는 여러 역할에 치여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내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불행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딱히 행복하지도 않은 묘한 무표정이었다. 그동안 남들의 기대에 맞춰 억지로 버텨온 시간만큼이나 얼굴은 지쳐 보였고, 당장이라도 한계에 다다를 듯 아슬아슬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거울 속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순간, 나는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다는 생각에 자리에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나는 생전 처음 하는 낯선 일인 것처럼 나 자신에게 조용히 질문을 던졌다.
“나는 지금, 진짜 어떤 기분이지?”
내 질문에 답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지금 느끼는 기분이 슬픔인지 분노인지, 아니면 지독한 피로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적절한 단어를 찾으려 할수록 머릿속은 오히려 멍해졌다. 가슴 어딘가에 분명 무언가 존재하는데 정확히 손에 잡히지 않아 정체 모를 답답함이 뜨겁게 차올랐다. 그러다 문득 억울한 마음이 스쳤다. 왜 나만 이 모든 무게를 견디고 매번 먼저 이해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자 참기 힘든 울컥함이 밀려왔다. 이름 붙이기 어려운 무거운 감정이 마음속에 가득해졌다.
그 순간 나를 붙들고 있던 변명들이 사라졌다. 나는 그동안 감정을 느끼지 못했던 게 아니라, 바쁘다는 핑계로 매번 무시하며 지나쳤을 뿐이다. 사소한 일이라며 스스로를 속였고, 어른답게 행동해야 한다는 규칙 앞에 감정을 억누르며 입을 닫았다. 마음이 힘들어질 때마다 나중에 생각하자며 뒤로 미루곤 했다. 그러는 사이 내 안의 감정들은 표현하는 법을 잊었고, 끝내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게 되었다. 결국 내 마음을 닫고 소통을 막아버린 사람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던 것이다.
그날 아침 거울 앞에서 잠깐 멈춰 선 일은 타인이 보기엔 아주 사소한 일상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짧은 멈춤은 내 삶에서 그 어떤 일보다 가장 큰 사건이었다. 하루를 평소 습관대로 흘려보내지 않고, 아주 잠깐이었지만 처음으로 나 자신을 진지하게 바라본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세면대에 손을 얹고 잠시 숨을 가다듬으며 내 안의 기분을 살피는 동안, 나는 그동안 애써 외면했던 내 마음을 향해 조심스럽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지금 이 가면 아래에는, 얼마나 많은 눈물과 이야기가 숨어 있을까.”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당장 찾지는 못했지만, 이전과는 달리 마음이 조급해지지 않았다. 정답을 반드시 찾아내려 애쓰기보다는, 처음으로 나에게 진실한 질문을 던졌다는 사실 자체가 훨씬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늘 타인의 시선에 맞춰 기계적으로 살던 일상에서 잠시 멈춰 나 자신을 똑바로 마주한 이 경험이 내 삶을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안내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제 나는 결과에 집착하기보다 내 마음이 보내는 신호에 귀를 기울이며 천천히 걸어가 보려 한다.
나는 칫솔질과 세수를 마치고 수건으로 얼굴의 물기를 닦으며 다시 거울을 보았다. 거울 속에 비친 얼굴은 어제와 크게 달라진 게 없었지만, 그 얼굴을 바라보는 내 눈빛만큼은 이전보다 훨씬 부드러워져 있었다. 오늘 하루를 예전처럼 무조건 ‘괜찮은 척’이라는 가면을 쓰고 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아주 작지만 분명한 변화의 가능성이 내 마음속에 소중하게 자리 잡은 것이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한 결심이 차갑던 내 시선을 온화하게 바꾸어 놓았다.
변화는 거창한 결심이나 삶을 통째로 뒤바꾸겠다는 요란한 선언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어느 날 거울 앞에 잠깐 멈춰 서서 나를 마주하고, 처음으로 ‘너는 지금 어떠니?’라고 묻는 사소한 질문에서 비롯되었다. 그 순간이야말로 내 마음의 상태를 처음으로 아주 조심스럽게 살피고 대면한 시간이었다. 나는 오늘부터, 그리고 앞으로도 나 자신을 더는 외면하지 않기로 했다. 대단한 성취보다 중요한 것은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용기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작은 질문 하나가 나를 가두었던 벽에 작은 틈을 내어주었고, 그 틈으로 새로운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