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유령들과 화해하는 법
어느 날, 화가 났다고 말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사소했고 슬프다고 하기에는 내세울 만한 이유가 분명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무렇지 않다고 하기엔 내 마음 어딘가가 분명히 소란스러웠다. 신발 속에 작은 모래알이 들어간 것처럼 마음 한구석이 계속 신경 쓰였지만, 멈춰 서서 확인하기엔 하루가 너무 바빠 그냥 참고 지나치곤 했다. 그 정도의 불편함은 누구나 겪는 일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이며 애써 외면했다.
사람들과 대화하다 보면 이런 정체 모를 감정들이 날카롭게 고개를 들 때가 있다. 누군가 별 뜻 없이 던진 가벼운 말 한마디가 유난히 가슴 깊게 박히곤 했다. 상대에게 악의가 없다는 것을 머리로는 분명히 알면서도, 그 말은 가시가 되어 내 마음을 사정없이 긁어댔다. 그냥 웃어넘기려 해도 가슴 깊은 곳에서는 뜨겁고 비릿한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 올라왔다. 나는 그 감정을 억누르려 애썼지만, 내 의지와 상관없이 마음은 이미 차갑게 얼어붙고 있었다.
그럴 때면 내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표정은 서늘하게 굳어졌다. 가벼운 대화 속에서 내 말수는 급격히 줄어들었고 이유 없이 숨이 가빠졌으며 어깨엔 힘이 잔뜩 들어갔다. 상황이 모두 끝난 뒤에야 비로소 내가 화가 났음을 알아차렸지만, 그때는 이미 감정이 한 차례 휘몰아치고 지나간 뒤였다. 내 몸은 늘 마음보다 한 박자 빠르게 반응하고 있었다. 뒤늦게 밀려오는 더부룩함과 가슴의 답답함은 내 마음이 보내는 무언의 신호였다.
이상하게도 그 화는 꼭 ‘지금 이 순간’의 일 때문만은 아닌 듯했다. 방금 들은 말이 그렇게까지 크게 화를 낼 일은 아니었음에도, 내 안의 감정은 실제 상황보다 훨씬 더 크게 부풀어 있었다. 마치 오래전에 억지로 잠가 두었던 문이 갑자기 열리며 꾹꾹 쌓아두었던 감정들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기분이었다. 이미 잊고 지냈다고 생각했던 과거의 상처와 서운함들이 준비할 틈도 없이 나를 덮쳐왔다. 통제할 수 없이 커진 감정의 파도는 나를 당혹스럽게 만들었고, 나는 그 압도적인 무게에 눌려 어찌할 바를 몰랐다.
감정이 폭발할 때마다 나는 나 자신을 매섭게 몰아붙였다. “너 왜 이렇게 예민하니?”, “왜 이 정도 일도 그냥 넘기지 못해?”라며 스스로를 매몰차게 비난했다. 마음속에서 시작된 분노는 금세 화살의 방향을 바꾸어 자책과 죄책감으로 흘러갔다. 나는 이유도 모른 채 이런 부정적인 감정들을 스스로 더 깊고 어두운 수렁으로 끌어내리며 나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히곤 했다.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보다 사회적 기준에 맞추지 못하는 나를 탓하는 것이 훨씬 익숙했기 때문이다.
이유 없는 눈물도 비슷한 모습으로 찾아왔다. 특별히 슬픈 일이 없는데도 청소를 하다가, 혹은 버스 정류장에 가만히 서 있을 때 눈물이 예고 없이 차올랐다. 드라마 속에서 흘러나오는 다정한 대사 한마디가 뜬금없이 내 마음을 건드리기도 했다. 어른이 되어 아무 이유 없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부끄러워 나는 서둘러 눈물을 삼켰다. 차가운 손등으로 눈가를 거칠게 닦아내고, 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아무 일 없다는 듯 나 자신을 가다듬었다.
마음이 문을 닫자 이번에는 몸이 신호를 보냈다. 이유 없는 편두통이 반복됐고 잠을 자도 몸은 늘 천근만근 무거웠다. 밤마다 가슴이 답답해 숨쉬기조차 버거울 때가 많았다. 병원에서는 늘 스트레스성이라고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묵직한 응어리가 가슴 속에 남아 있었다. 외면해온 감정들이 통증과 피로가 되어 더는 나를 모른 척하지 말라고 끈질기게 신호를 보낸 것이다. 그때는 미처 몰랐지만, 이 고통들은 나를 무너뜨리려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벼랑 끝에 선 나를 살리기 위해 몸이 필사적으로 보내는 마지막 구조 신호였다.
나는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데 참 서툰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 울면 그만 울라는 꾸지람을 들었고 화를 내면 예민하다는 핀잔이 돌아왔다. 그런 환경에서 나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끼는 법보다 서둘러 지우는 법을 먼저 배웠다. 아이였던 내게 감정은 마음껏 표현할 선물이 아니라 얼른 숨겨야 할 부끄러운 숙제였다. 그렇게 나의 진짜 마음을 외면하는 것이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생존 방식이 되었다. 그 대가로 나는 나 자신으로부터 점점 멀어졌고, 무엇을 느끼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수십 년 동안 무언가를 느낀다는 감각 자체가 무뎌졌고, 어떤 감정이 고개를 들기만 하면 무의식적인 브레이크가 거의 반사적으로 작동했다. ‘내가 조금만 참으면 모두가 편해질 거야’라는 계산이 끝날 때쯤이면, 진짜 감정은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연기처럼 흩어졌다. 하지만 이름조차 불리지 못한 감정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들은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차곡차곡 쌓여, 어느새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커다란 어둠의 덩어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문득 이 알 수 없는 분노와 공포가 ‘인정받지 못한 나’라는 하나의 뿌리에서 자라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해받지 못한다는 고립감과 늘 내가 먼저 물러서야 한다는 강박이 제때 흘러나가지 못한 채 마음속에 쌓여 있다가, 작은 균열을 타고 분출되는 것이었다. 내가 이토록 오래 아파했다는 사실을 깨닫자 두려움이 밀려왔지만, 동시에 설명할 수 없는 안도감이 함께 찾아왔다. 이름 없이 떠돌던 유령 같은 감정들이 비로소 내게 분명한 신호를 보내고 있음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감정이 밀려올 때 성급하게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기로 했다. 그저 내가 지금 이런 기분을 느끼고 있음을 인정하며 조용히 자리를 내어주었다. 마음속으로 감정의 이름을 하나씩 다정하게 불러보았다. “서운함아, 네가 왔구나.” 평생 닫고 살았던 마음의 입을 여는 일은 몹시 낯설었지만, 이름을 불러줄 때마다 가로막혀 있던 내면의 풍경이 조금씩 바뀌는 것을 느꼈다. 억누를수록 거칠게 요동치던 감정들은 이름을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놀랍도록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이름을 불러주는 순간, 감정은 더 이상 나를 무질서하게 헤집지 않고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이제 나는 감정에 속절없이 휘말리지 않고, 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차분하게 살필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을 얻게 되었다. 이 정직한 알아차림이야말로 나라는 세계를 다시 그려 나가기 위한 첫 번째 지도다. 이제 내 감정들은 나를 위협하는 적이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 알려주는 가장 솔직한 동반자가 되었다. 비록 신발 속 모래알처럼 작고 거슬리는 감정이 다시 찾아올지라도, 나는 이제 기꺼이 멈춰 서서 내 마음을 들여다볼 용기를 갖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