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이 대신 지르는 비명
어느 날 아침, 눈을 뜨는 순간부터 몸이 너무 무거웠다. 특별히 어디가 아픈 것은 아니었지만, 몸 전체가 침대 속으로 깊이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한참을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가 겨우 일어나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에는 짙은 다크서클과 생기 없는 표정을 한 내가 서 있었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되짚어 보았지만, 딱히 떠오르는 사건은 없었다. 마음은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않았고, 오직 무거운 피로감만이 온몸을 휘감고 있었다.
나는 세면대 앞에 서서 한참 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수도꼭지를 틀었다가 멈추기를 반복하며 멍한 시간을 보냈다. 겉보기에는 단순히 잠이 덜 깬 모습이었겠지만, 내 안에서는 오랫동안 쌓여온 피로가 조금씩 밖으로 드러나고 있었다. 그날은 피로의 이유를 억지로 찾아내려 애쓰지 않기로 했다. 피로라는 것은 말로 설명하기 참 어렵지만, 분명히 지금 내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몸이 직접 알려주고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일이 아주 많았던 것도 아니고 누군가와 크게 싸운 것도 아닌데, 하루 종일 숨이 차고 의욕이 바닥을 치는 날이 있다. 주변 사람들이 걱정하며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어올 때면, 나는 늘 “잠을 좀 못 자서 그래”라는 뻔한 대답만 했다. 그 짧은 대답 뒤에는 복잡한 사연과 감정들이 엉켜 있었지만, 그것들을 하나하나 설명할 기운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기에, 차라리 입을 닫는 것이 훨씬 편하게 느껴졌다.
출근길에 혼자 있을 때는 어깨가 축 늘어졌지만, 사람들을 마주하면 다시 힘을 주어 몸을 세웠다. 마음은 유리 벽 안에 갇힌 것처럼 고립되어 있었지만, 누군가 말을 걸면 곧바로 밝게 웃으며 대답할 준비를 했다. 별로 재미없는 농담에도 크게 맞장구를 치며 평소와 다름없는 척 행동했다. 하지만 이렇게 감정을 숨기며 하루를 연기하는 일은 에너지를 너무 많이 소모했다. 겉은 멀쩡해 보여도 속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쳐서 조금씩 무너져 가고 있었다.
불안한 마음에 병원을 찾아 여러 검사를 해보았지만, 결과는 늘 같았다. 신체적으로는 아주 건강하니 스트레스를 줄이고 푹 쉬라는 말뿐이었다. 그 말을 들으면 안심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답답하고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수치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내가 느끼는 일상은 분명히 무겁고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기계적인 이상이 없다면, 이 가라앉는 기분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알 수 없어 답답함만 커져 갔다.
점심시간에 북적이는 식당에 앉았지만 입맛이 전혀 없었다. 살기 위해 억지로 음식을 씹어 삼키는 기계가 된 것 같았다. 배는 불러왔지만 가슴 한가운데에는 설명할 수 없는 빈 공간이 크게 느껴졌다. 마치 오랫동안 청소하지 않고 비워 둔 방처럼 마음 한구석이 텅 비어 있는 기분이었다. 그 빈자리에서 나를 부르는 희미한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너무 오래 방치해서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 공허함이 나를 계속 붙잡고 있었다.
나는 오랫동안 마음의 문제를 외면하며 살았다. 바쁘다는 핑계로 내 감정을 돌볼 여유를 갖지 않았다. 늘 해야 할 일을 끝내는 것이 먼저였고, 남들에게 성실하게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었다. 그러는 사이 내 마음은 입을 다물어 버렸고, 결국 ‘피로’라는 직접적인 신호를 통해 나에게 경고를 보내기 시작했다. 피로는 묵직한 무게로 온몸을 누르며 내 하루를 방해했다. 그것은 제발 나 자신을 좀 돌아봐 달라는 몸의 간절한 부탁이었다.
퇴근길 버스 창밖을 보며 오늘 하루 몇 번이나 “괜찮다”고 말했는지 세어 보았다. 그 말은 상황을 좋게 만들고 상대방을 안심시키는 데 참 편리했다. 하지만 그 말을 내뱉을 때마다 내 안의 생명력은 조금씩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괜찮다는 거짓말을 반복할수록 나는 진짜 내 모습과 점점 더 멀어졌다. 스스로를 속이며 일상을 억지로 유지하는 대가는 너무 가혹했다. 내 마음은 그렇게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천천히 메말라가고 있었다.
이 압도적인 피로는 단 하루 만에 생긴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내 안에 차곡차곡 쌓여온 시간의 결과물이었다. 울고 싶을 때 눈물을 꾹 참았고, 화가 날 때도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실망스러운 순간에도 아무렇지 않은 척 행동하며 감정을 억눌렀다. 그렇게 무시하고 치워 두었던 수많은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내 몸 어딘가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것들이 끈적하게 달라붙어 지금의 나를 이토록 무겁고 힘들게 만들고 있었다.
현관문을 닫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불 꺼진 집안에서 한참 동안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눈물을 흘리고 싶었지만, 눈물조차 나오지 않을 정도로 몸과 마음이 텅 비어 있었다. 소파에 몸을 기대고 앉아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지쳤는지 가만히 떠올려 보았다. 내가 참는 것이 모두를 위한 길이라 믿으며 내 마음을 무시했던 수많은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착한 사람으로 살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들이 서글픈 피로로 돌아온 것 같았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아주 작고 낮은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나 사실 너무 힘들어. 이제 더는 못 하겠어.”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이상하게도 몸의 긴장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 나는 피로를 없애야 할 적으로 보지 않기로 했다. 그저 나를 지키느라 고생이 많았다고 스스로에게 따뜻한 위로를 전했다. 피로는 내 감정들이 직접 말할 수 없을 때, 몸을 통해 나에게 보내는 가장 절박하고 정직한 편지였음을 깨달았다.
이제 나는 피로를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 않는다. 오늘 하루는 조금 느리게 가도 괜찮고,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하지 않아도 내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준다. 피로는 나를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호하기 위해 몸과 마음이 보내는 신호였다. 내가 오랫동안 나 자신을 방치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부터 치유는 이미 시작되었다. 이제 나는 내 마음의 상태를 세심하게 살피며, 나 자신을 소중히 기다려줄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