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냉면을 처음 먹은 순간을 잊지 못한다. 주방에서 무슨 실수가 있었을까. 아무래도 꽤나 큰 실수 같은데. 혹시 내 미각이 잘못됐나? (시간이 흘러) 아 원래 이런 맛이구나. 이딴 게 만팔천 원이구나. (시간이 더 흘러) 먹을 만 한데. (시간이 꽤나 흘러) 맛있는 거 같기도.
평양냉면이 맛있는 음식이라고 인정하고 인지하기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직 평냉 예찬론자들의 무자비한 사랑에 동조하긴 어렵지만, 평냉에는 낭만이 있다는 말에는 어느 정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널 좋아하기까지 이렇게 오래 걸려 미안해) 이런 낭만은 불현듯 찾아온 걸까. 내가 부단히 따라간 걸까.
출근시간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는 몇 안 되는 때가 있다. 한강다리를 지날 때다. 대부분은 햇살에 톡톡 터지는 윤슬에 시선이 끌린다. 낭만파들은 이 순간을 눈에 최대한 오래 담으려 한다. 짧은 낭만의 순간을.
하지만 사람들이 한강다리에 시선이 사로 잡히는 이유는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단순히 멀어 보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역설적으로 대개 사랑이나 행복과 같은 아름다운 것들은 멀리 있다 여기니까. 평냉과 한강 사이에는 어떤 낭만적 공통점이 있을까.
생각 끝에 낭만은 ‘굳이’와 ’기꺼이’ 사이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라고 결론 내린다. 굳이 비가 오는 날 귀찮게 파전을 먹으러 가나 싶다가도 어느 날은 기꺼이 발걸음을 옮기는 것처럼. 입맛에도 안 맞는 평냉을 굳이 더 먹어보기도 하고, 졸린 출근길에 굳이 목을 꺾어 뒤를 보는 이유는 그 순간 ‘낭만’이 찾아왔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