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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니 Jan 17. 2023

나의 털복숭이 친구_1

첫 만남, 그 이후

또리는 2살에 우리 집에 왔다.

처음 그를 만난 건 외할머니가 없는 외할머니 댁에서였다.

알츠하이머로 고생하셨던 할머니가 천국에 가신 후 외삼촌과 그곳에서 함께 지내던 또리는 종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털복숭이 그 자체였다.

그때는 펫샵의 강아지가 어떤 경로로 우리를 만나게 되는지에 대하여 무지할 때라 집 앞의 펫샵에 가서 새끼 강아지들을 만나고 오는 게 유일한 낙이었기에 할머니댁에, 이제는 외삼촌 댁에 강아지가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간식을 잔뜩 사가지고 가서 강아지도 배가 부를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로 열심히 먹을 것을 주었고, 집에 갈 시간에는 그 작은 것이 매일 15시간 넘도록 혼자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도저히 발이 떼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당시 20대 중반이었던 나는 아빠에게 다소 유치한 제안을 했다.

'한 달만 우리 집에서 강아지를 기르고 딱 30일이 되는 날 내가 다시 얘를 수원집에 데려다 놓을게요'

콕 집에 아빠에게 허락을 받은 이유가 따로 있다.

당시에 아빠는 강아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아빠의 어린 시절에 강아지에게 쫓기고 물린 이후로 아무리 작은 강아지라도 조금 겁이 난다고 했다.

물론, 아빠의 입으로 들은 건 아니고 엄마가 대신해 준 이야기이다.

선 채로 30분 정도 아빠를 설득했고 '안 그래도 키우기가 힘들어서 누구에게 줄까 했다, 잠깐만 키워보고 안되면 데려오라'는 외삼촌의 조력에 힘입어 우리는 그날 또리와 함께 집에 올 수 있었다.

어찌나 좋았는지.

내 모든 것을 다 주고서라도 이 작은 아이를 지키고 싶었고, 뭐든 다 해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집에 온 며칠 동안 또리는 현관 중문 앞에서 요지부동 움직이지를 않았고,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않았다.

서로 말은 안 했지만 우리 네 식구는 모두 한 마음이어서 새벽 다섯 시 언저리가 되면 간밤에 거실에서 또리가 잘 있었는지, 혹시나 잘못되지는 않았는지 눈을 비비며 각자 조용히 확인하고 들어갔다.

강아지는 하루에 밥을 몇 번 먹는지, 똥을 몇 번 싸는지, 산책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혀 몰랐다.

그래서 밥은 사람처럼 하루 세 번, 똥은 또리 의지에 따라, 산책은 일주일에 한 번을 나갔다.

강아지를 키우게 되면 하고 싶은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그중에 하나가 바로 '강아지와 카페 가기'였다.

테라스에서 강아지와 한요롭게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는 사람을 보면 그게 그렇게 아늑해 보였기에 나도 언젠가 꼭 해봐야지 싶었던 거다.

하지만, 모든 강아지가 그럴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걸 또리를 보면서 깨달았다.

매일 나가야 하는 산책을 일주일에 한 번 나가게 된 것도 같은 이유였다.

또리는 사회성이 전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할머니의 알츠하이머를 완화시키기 위함으로 3개월 된 강아지를 지인에게 받아왔지만, 할머니는 또리와 한 달 정도 함께 지내다 넘어지시면서 병원에 장기입원을 하게 되었고 그렇게 또리는 아무도 없는 집에 남겨졌다.

그것도 장장 1년 반 동안을.

그동안 외삼촌이 3일에 한번 할머니 댁에 가서 또리의 똥과 밥, 물을 치워주고 갈아주는 게 전부였다고 한다.

사회성이 길러져야 할 시기동안 거의 독방에 갇힌 죄수처럼 지내야 했던 강아지는 자신이 믿고 따르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에게 적대적이었다.

그 사실까지 알지 못했던 초기에는 밖에만 나가면 야수로 변하는 또리를 통제하지 못해 스트레스를 받기 일쑤였고, 결국 일주일에 한 번 씻기기 전에 데리고 나가는 게 전부였다.

하루 세끼를, 그것도 맛있는 습식 사료만 먹었던 또리의 몸은 점차 눈에 띄게 불어났다.

산책도 안 나가니 그럴 수밖에.

결국 병원에서 한 달 새 1킬로나 넘게 불어난 또리의 몸무게를 지적받았고, 그제야 예쁘다고 무조건 원하는 것을 주기만 하는 방식은 진정한 공존의 방법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강아지는 이틀 삼일도 꼬박 굶을 수 있어요. 그러니 일반 사료를 안 먹는다고 습식으로, 그것도 하루 세 번이나 주지 마시고 안 먹으면 없다고 치워버리셔야 강아지가 먹습니다. 그러면 무조건 먹게 되어있어요'

그렇게 또리는 자율배식에서 하루 두 번의 시간배식 제도에 익숙해져야 했다.

그렇다면 산책은?

산책도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게 현명하겠다 싶었다.

우리가 아무리 유튜브나 책을 보고 그대로 따라 해봤자 그저 흉내만 낼뿐, 근본적인 해결이 될까 싶은 회의감에 반려동물 행동 전문가를 모시고 도움을 받았다.

결과는, 절반의 성공.

9살인 현재의 또리는 매일 산책을 한다.

그리고 산책 때마다 사람들과 강아지에게 달려든다.

그래서 법이 개정되기 전부터 일찍이 1m 간격의 리드줄을, 그것도 대형견에게 필요한 리드줄을 2.6kg인 또리에게 매어 다니고 7년째 하는 산책에서 나는 절대 한눈을 팔 수 없다.

더불어 훈련사님의 조언 한마디가 나의 오랜 로망을 깔끔히 포기시켜 주었는데

'또리는 지금도 앞으로도 친구를 만들기가 힘들어요. 사람으로 치면 유년기를 넘어 스무 살 무렵까지 히키코모리로 지냈는데 이제와 누가 세상에 나가 사람들을 사귀라고 하는 꼴인 거죠. 그럼 누가 잘할 수 있겠어요? 그냥 보호자님을 믿고 따르고 잘 지내는 것에 만족하면서 지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억지로 다른 강아지들과 접촉하게 하지 마시고요'

나는 특히나 여기서 그의 비유가 적절했다고 생각했다.

사람으로 치면 히키코모리에 가깝다는.

맞다 또리는 2살까지 낮에만 볕이 들어오는 그 아파트에서 혼자 지냈다.

오직 3일에 한번 자신을 찾아오는 누군가만 기다리면서.

그날 이후로 우리는 또리가 가능한 선에서 산책의 범위를 조금씩 늘려갔고, 또리가 위협적으로 인식할 만한 상황은 최대한 블로킹하는 방식으로 산책에 나섰다.

물론 설루션을 받는다고 처음부터 잘 되지는 않았다.

정확히는 매일이 엉망진창이고 힘들었다.

그래서 훈련사에게 '매일 조금씩이라도 산책하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결국 3일에 한번 정도로 절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한 달여 동안 가게 된 미국 여행을 계기로 그와 나의 산책은 매일의 일과로 바뀌었다.

어렸을 적부터 '사람은 새로운 세상을 가면 뭔가를 깨달아 온다'던데 미국에서 내가 얻은 깨달음은 바로 반려동물을 대하는 반려인의 자세였던 것 같다.

그들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산책했다.

반려인의 주도가 아니면 밖에 나갈 일이 없는 반려견의 처지를 아주 잘 헤아리고 있는 듯했다.

그렇게 아주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그들은 같이 밖으로 향했고 매일의 계절을 함께 호흡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내가 힘들다고, 통제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집 안에만 가둬둔 강아지에 대한 반성이 물 밀듯이 밀려왔고 너무 부끄러웠다.

그 이후 우리는 엄청나게 먼지가 많거나 비바람이 치지 않은 이상에는 매일 산책을 나간다.

"나갈까?"그 세 글자에 뛸 듯이 기뻐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는 앞으로도 도저히 그렇게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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