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차 반려인의 특징 혹은 습관
모두가 그렇다고 볼 수는 없지만, 반려인들은 대게가 비슷한 특징들을 공유하고 있다.
나 또한 8년째 또리와 공존하면서 전에 없던 일(대부분은 남들 앞에서는 할 수 없는)을 많이 하고는 한다.
처음엔 나만 그런다는 생각에 길거리에서 그런 짓(?)을 하면 누가 볼까 두려워 뒤를 살핀 일도 있었지만, 주위를 둘러보니 예상보다 동지가 많았다.
짐작건대 이건 반려동물이 인간에게 주는 유대감의 표식인 것 같기도 하다.
다음은 나만 가진 줄 알았는데 많이들 가지고 있는 반려인들의 특이점이다.
1. 끊임없이 말한다.
남편이 일을 나가면 집에 인간은 나 혼자다.
근데도 나는 또리에게 하루에도 수많은 말을 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잘 잤냐'는 말로 그의 아침 쭉쭉이를 돕고 '밥 먹어야지, 또리 배고파?' 하면서 끊임없이 말을 한다.
심지어 내가 밥을 먹을 때도 아래서 간절한 눈빛을 발사하는 그에게 '또리는 다 먹었지, 근데도 계속 배고파?' 하는 식의 일방적 대화를 한다.
티비를 보면서도 '저것 봐 신기하지?' 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한다던지 슬픈 영상을 보며 질질 짤 적에도 '너무 슬프다'며 조용히 무릎에 앉아있는 그를 소환한다.
산책을 할 적에도 날씨에 대한 얘기부터 '친구 쉬아는 킁캉대기만 하는 거지 핥으면 안 된다!' 등등 다양한 이야기들을 한다.(그래서 가끔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보고 갈 때도 있다)
정말 일어나서부터 잠들기 전까지 쉴 새 없이 말을 건다.
이걸 혼잣말이라고 해야 할지 일종의 대화라고 해야 할지 애매하긴 하지만, 우리 반려인들은 강아지에게도 표정이 있고 감정이 있고 그들이 우리가 자주 하는 말은 충분히 알아듣는다고 여겨, 이런 행위는 '소통'으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 그와 함께 있을 때면 시도 때도 없이 나불대는 내가 절대 입을 열지 않는 순간이 있으니, 바로 나갈 때다.
강아지들은 언제고 분리불안이 생길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반려인이 나간다는 인사는 굳이 하지 않는 게 좋다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들은 터라 외출을 할 때는 아무 말도 없이 조용히 간식만을 남긴 채 떠난다.
2. 목소리가 이상해진다.
말을 많이 하는 거야 뭐 그럴 수도 있다.
근데 이 부분은 정말 조금 부끄러워서 가족들끼리 있을 때나(그것도 가까운 가족만) 혼자 있을 때만 발현되는 특징이다.
일단 기본적으로 혀가 좀 짧아지고 가끔은 도를 넘을 만큼 귀여운 척을 가미한다.
또리의 이름은 또리지만 내가 그를 또리라고 정확하게 부를 때는 타인 앞에서 정상적인 척을 할 때뿐.
실제 나에게 그의 이름은 '또디'이다.
일단 '리'를 '디'로 부를 때부터 둔탁하고 짧게 발음되는 그 음이 귀여움을 더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여기서 멈추면 좋으련만, 남편과 10년의 연애기간에도 구사한 적 없는 온갖 시큼한 말들(또디는 왤케 기여운고야?, 또디또디찌 똥쨔쪄?)이 그의 앞에서는 아주 자연스레 구사된다.
가끔 생각해 보면 그가 인간의 언어를 할 수 없어서 내가 이러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성격이 그다지 좋은 강아지는 아니라서 아마도 또리가 말을 할 수 있었다면 정말 진지하게 '그만해라' 혹은 '작작해라' 혹은 '쫌!'등의 말을 퍼부었을 것이다.
3. 자꾸만 아래를 살핀다.
정또리는 2.6kg이다.
심지어 2.3kg 정도였다가 우리 집에 와서 조금 커졌다.
일부러 작게 만들었다거나 안 먹여서 작은 것은 아니다.(가끔 산책을 나가면 또리가 참 작고 귀엽다며 성견이냐고 묻고는 품종개량 종이냐던지, 이렇게 작게 키우려면 뭘 안 먹이면 되냐는 등의 조금은 불쾌한 질문을 들을 때가 있는데 또리는 엄마아빠의 품에서 태어난 토종이고 하루에 간식 포함 6끼는 먹는 아이다)
안 그래도 처음 데려올 적에 또리가 다른 몰티즈보다 조금 작다고 생각돼서 외삼촌께 이유를 여쭈었더니, 전에 집(또리 엄마의 집)에서 새끼 강아지의 탄생을 그리 반기지 않았다고 한다.
또리에게는 형이 있었는데 그와 어미에 비해 또리의 먹는 속도가 좀 느렸다고 한다.
가뜩이나 강아지가 늘어서 반기지 않던 전 주인에게 밥을 줘도 잘 못 먹는 또리는 그저 답답한 강아지였는지 다른 강아지들이 식사를 마치면 미처 다 먹지 못한 또리의 밥도 가져가버렸다고 한다.
그렇게 생후 5개월까지 제대로 된 식사를 못하다 할머니 댁으로 넘어와서 또 1년 반의 시간을 굳어진 밥으로 때워야 했으니 작을 수밖에.
사족이 길었지만 무튼 그렇게 작은 존재감의 아이다 보니 이불 속이나 주방, 베란다, 심지어는 자기 집에 들어가 있으면 잘 안 보인다.
어떤 때는 바로 아래 있어서 생각 없이 발을 구르다 소스라치게 놀란 적도 여러 번이다.
그리하여 책상이나 소파에서 아빠다리를 하고 앉아있다가 일어날 적에는 꼭 아래에 하얀 물체가 없는지 살피곤 한다.
4. 변을 살핀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정또리는 하루에 거의 두 번의 변을 본다.
'직장'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밥을 먹으면 거의 30분 내로 꼭 응아를 한다.
그것도 꼭 우리 부부가 밥을 먹고 있을 때 응아를 하고는 얼른 치우라고 아우성이다.
그런데 그렇게 규칙적인 또리가 가끔 하루에 한 번 변을 보거나 혹은 변이 너무 무르거나 딱딱하면 어디가 안 좋은가 살피게 되는 경향이 있다.
남편도 처음에는 또리의 똥을 보지도 않고 집어서 얼른 변기로 뛰어가더니 이제는 '또리의 똥이 너무 까맣다'던지 '왜 오늘은 토끼 똥을 싸지... 어제까지만 해도 사람 똥을 싸던 애가...' 하면서 응아의 상태를 확인한다.
아마 누가 나나 남편의 변을 그렇게 살피라고 하면 할 수 있을까 싶지만(그리고 아마도 못하겠지만) 내 새끼의 변은 임금님의 건강을 살폈던 신하의 마음으로 기꺼이 한 번씩 확인하게 된다.
5. 비나 눈, 강력한 미세먼지가 있는 날은 심란하다.
세상 까탈스러운 정또리는 비나 눈 맞는 것을 싫어한다.
일단 나갔을 때 질퍽한 땅을 만나면 한 발을 들고 절대 움직이지 않는다.
괜찮다고, 가자고 아무리 말해도 뒤를 돌아 집으로 돌아가기 바쁘다.
'눈 오는 날은 동네 강아지나 좋아한다'는 말도 있던데 우리 또리는 그에 해당 사항이 없는 듯하다.
여기에 더불어서 미세먼지도 산책을 막는 주범이다.
가뜩이나 심장병이 있는 또리에게 미세먼지는 쥐약일거란 생각에 날씨 어플에 빨간불이 들어오는 날에는 집에서 노즈워크를 진행한다.
그런데 이렇게 산책을 쉬는 날에는 얼마나 마음이 심란한 지.
분명 나갔는데 그가 산책을 거부한 거고 건강을 생각해서 집에 있자고 결정한 거지만 그래도 인간의 일주일과 같다는 또리의 하루에 한 번도 야외 시간을 제공하지 못하면 괜스레 마음 한편이 무거워지는 게 사실이다.
뭐, 당장 생각나는 게 이 정도지 아마도 또리가 나에게 8년 동안 가져다준 습관은 모두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을 것이다.
그리고 이건 강아지를 사랑하는 우리 모든 인간이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 사랑스러운 습관들이겠지.
어디 내놔도 조금은 부끄러운 것들이지만, 앞으로도 매일매일 이런 나의 습관은 짙어져만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