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만큼 알게 되는 것
임신을 했다.
동사무소에서 지급하는 일명 '핑크배지'를 받고 외출시마다 그것이 나를 지켜주는 수호신이라도 되는 양 가방에 달고 나간다.
임신초기 퇴근길 지옥철과 철도파업이 겹치는 시간에 지하철을 탔다가 배가 잔뜩 눌리고 숨이 쉬어지지 않는 체험을 한 뒤로, 혹시 모를 상황에서 사람들에게 나의 상태를 조금이나마 알려보자는 마음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임산부 배지가 없는 상태로 임산부 좌석에 앉기가 왠지 모르게 껄끄러웠다.
그건 아마도 임신 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 때문인데, 핑크좌석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보면서(특히나 다리 벌리고 앉아있는 아저씨나 아주머니들)
'저 사람이 임산부인가'하는 생각을 자주 하곤 했다.
그리하여 나 스스로 '저는 이 좌석을 위한 사람입니다'를 알리기 위해 그 좌석에 앉을 때면 가방 한편에 달려있는 배지를 조금 앞으로 내보이곤 한다.
하지만 대중교통 이용 10회 기준으로 임산부석에 앉을 수 있는 경우는 5회가 채 되지 않는다.(나는 대부분의 경우 지하철을 이용한다)
출퇴근 시간의 지옥철이 아님에도 임산부 좌석에는 항상 (임산부로는 보이지 않는) 누군가나 누군가의 짐이 존재한다.
조심스레 그 앞으로 다가가 서 있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최근에는 짐을 들고 임산부 좌석 앞에 서 있는데 그 자리에 앉아계시던 아주머니께서 가만히 내 배지를 보시더니 지그시 눈을 감고 절대 뜨지 않으시는 광경도 목격했다.
나 역시 꼭 좌석을 양보받아야겠다는 생각이거나 그 자리에 임산부만 앉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그 좌석은 '임산부 배려석' 혹은 '임산부 우선석'이니까.
하지만, 그래도....
"나도 다리가 아파 앉았는데, 앉으실래요?"정도의 물음이라도 건네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건 사실이다.
당사자는 아니었지만, 임산부 좌석을 떠올리면 아직까지도 기억에 선연히 남는 일화가 있다.
어김없이 3호선 지하철을 타고 위로 올라가는 길, 불룩이 나온 배를 안고 지하철에 오른 산모가 있었다.
역시나 그날도 어떤 아주머니가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계셨고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임산부에게 웃으며 뭐라 말을 하시길래 이내 비켜주시겠지 생각하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시끄러운 전동차 안에서 오갔던 그들의 짧은 대화.
"아유~배가 많이 나왔네"
"아 네^^"
"몇 주예요?"
"**주요"(그 물음에 대한 답은 정확히 듣지 못했지만 배의 크기로 봐서는 정말 출산이 얼마 남지 않아 보였다.)
"아들이에요 딸이에요?"
"아들이요"
"아이고~그렇구나^^"
그러고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여전히 그 아주머니는 웃으며 자리에 앉아계셨고 허리를 잡은 그 좌석의 주인은 머쓱해하며 한편으로 비켜섰다.
결국 그 곁에 있던 누군가가 그녀에게 자리를 양보하였고, 그렇게 상황은 마무리되었다.
그때 처음으로 임산부 좌석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던 것 같다.
서있기도 빼곡한 출퇴근 시간에는 공간의 효율성을 위해서라도 주변에 있는 누군가가 앉아간다지만, 그 외의 시간에는 가능하면 비워두는 게 그 자리의 취지이고 미덕이 아닐까.
노약자석에 임산부를 포함한 젊은 사람이 앉으면, 제 아무리 '약자'인 상황에서도 눈치가 보이는 마당에 왜 임산부들을 배려하기 위한 좌석에서도 어색하고 껄끄러운 상황이 벌어져야 하는가.
보이는 만큼 알게 되는 것.
세계에서 가장 출산을 안 한다는 대한민국에서, 그럼에도 출산을 결심한 임산부들이 가지는 작은 특권이 조금 더 존중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