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따니 Mar 21. 2023

성적과 행복의 상관관계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지만

사교육계에 몸을 담고 있는 나에게 직업적인 단 하나의 소명을 말하라고 하면 그건은 단연코 '아이들의 성적상승'일 것이다.

학교에서의 교육은 우리들의 그것과 조금은 결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교육'이라는 범주에 조금 더 큰 함의를 품고있는 느낌이랄까(학교는 아이들에게 작은 사회와도 같은 존재이니까)

나름대로 강남 8학군 출신에 성인이 된 이후에도 독립없이 부모님과 같이 살았던 터라 주로 가르치고 만나는 아이들도 같은 동네 아이들이 다수였다.

속칭 대학 간판만으로도 장사가 가능한 사람은 아니었기에 거의 대부분의 첫만남에서 무료 시범수업을 진행하며 실력으로 나를 증명해나갔다.

대한민국 사교육의 중심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학부모님들은 한번의 수업에도 아이의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직간접적으로 전해주셨다.

그리하여 습관처럼 매 수업이 끝날 때마다 구두로, 문자로 수업에 관한 피드백을 전달하곤 한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수많은 학부모들의 스케줄은 타이트해진다.

대한민국의 학생이라면 대부분이 피해갈 수 없는 '입시'에서 우리 아이 홀로 뒤쳐지는 일이 없으려면 부모들 또한 함께 공부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아이들은, 엄빠의 이런 열정과 열성에 적절히 화답을 할까?


무엇이든 '적절한 결과'를 내기란 쉽지 않을 일이다.(사람마다 기대치가 다르고 결과에대한 평가가 다르니 말이다)

더불어 엄마와 아빠가 대학 입시에 열성이라고해서 아이들이 무조건적으로 그에 상응하는 점수를 내놓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유치원 때부터 사교육 환경에 노출되는 아이들이 부모의 전폭적 지원을 무시하고 마이웨이를 시전하기란 쉬운일이 아니다.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부터 함께 공부를 시작한 D는 굉장히 착하고 예의바른 친구였다.

예체능계열임에도 불구하고 운동을 마치고 집에와서 국,영,수 과외를 소화하는 학생이었다.

그의 생활은 그야말로 잘 짜여진 대본처럼 규칙적이었다.

학교-연습-집-씻고 밥먹고 잠시 휴식-과외

주말을 제외하고는 모든 날이 이렇게 돌아갔다.

아이의 이러한 생활의 바탕에는 어머님이 계셨다.

입시생으로서의 아들이 불편함 없는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영양가 있는 식사부터 입시 설명회, 아이 선생님들과의 상담까지 무엇 하나 게을리하지 않으시면서도 부족함이 없는지 항상 고민하는 분이셨다.

고3이 된 D의 생활은 더욱 빡빡했다.

이제는 예체능 계열을 준비하더라도 성적이 뒷받침되어야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시대인지라 국영수를 넘어 사탐까지 모든 과목의 과외를 받아야했고, 그렇게 새벽까지 수업을 받고 나서야 그의 하루는 마무리 되었다.

학교아이들 기준에서는 중하위권이었지만 전국 등수로 치면 그리 나쁜 성적은 아니었다.

그래도 미미하게나마 꾸준한 성장 곡선을 그리고 있는 상황이라 6월 모의고사를 마친 후에는 목표점수가 가시권 안으로 들어오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나름 순항하고 있다고 믿었던 우리의 항해는 9월 모고를 기점으로 암초에 부딪히게 된다.


그 전부터 이상한 느낌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수업이 파이널을 향해가면서 실전 감을 기르고자 주에 1회씩은 75분 모의고사를 진행했는데 그때마다 아이의 점수가 너무 큰 폭으로 변했다.

어떤 날은 60점대 어떤 날은 80점대 어떤 날은 90점대.

컨디션의 여파라고 보기에는 너무도 심한 등락이 있어 걱정이 되었다.

어머님께는 대략적으로만 설명을 드렸다.

가뜩이나 예민하고 힘든 시기에 필요 이상의 불안요소를 안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전에서 잘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매 수업마다 아이와 마음을 다잡았다.

9월 모의고사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등급은 아쉽게 오르지 못했지만 1점차로 등급이 미치지 못한 상황이라 수능에서는 충분히 안정적인 등급 향상을 꾀해볼 수 있을 고무적인 분위기였다.

성적표가 나오고 일주일 정도가 지난 어느날, 어머님께 전화가 걸려왔다.


"네 어머니^^"

"네, 선생님. 제가 지금 학교에 아이 상담을 다녀오고 집에 왔는데 혹시 통화 괜찮으신가요~?"

"그럼요!"

"저....저도 지금 이 상황이 잘 이해가 안가고 아무리 생각해도 어이가 없어서 어떤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 지 모르겠는데요....우리 아이가 지금까지 성적을 조작해오고 있었다고 합니다"


나 또한 한번에 이해가 가지 않는 워딩이었다.

성적조작이라니, 대체 언제부터?!


"담임 선생님 말씀으로는 아이 성적이 3월을 제외하고 계속 떨어져서 안그래도 걱정이었는데 중요한 9월 모고에서까지 계속 하락추세라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궁금하셨다고해요. 아이와 상담하면 대답만 하지 본인 얘기를 좀처럼 안해서 답답하셨다구요....하....아니 그래서 제가 지금까지 아이가 가져온 성적표에 적힌 이야기를 했더니 오히려 금시 초문이라는 얼굴로 엄청 당황하시더라구요....이걸...이제와서 어떻게 해야할지..."


그랬다.

D는 3월 이후 4월,6월 모고에서 성적이 오르지 않자 교육청 성적표에 앞서 학교에서 주는 모의고사 성적표를 위조했던 것이다.

거짓으로 얻은 결과는 연이은 시험에서도 바로 잡을 수 없었고, 그렇게 수능을 목전에 앞둔 9월까지 아이는 멈출 수 없었던 것이다.


상황이 이쯤되고 보니 수업 때 내가 느꼈던 기묘함의 퍼즐도 맞춰졌다.

아이는 항상 내가 내민 모의고사지를 가만히 살펴보고 시험이 시작되기 전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했었는데, 그때 답안지를 암기했던 것이다.

45문제 전체를 암기했는지, 본인이 약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만 익혔는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답을 암기한 후에 문제를 풀어서 제출했고, 가끔씩 답이 밀리거나 제대로 외우지 못한 날에는 점수가 낮게 나왔던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정말 부족함 없이 키우려고 최선을 다해 노력했는데...그게 우리 아이에게는 너무나 큰 스트레스였나봐요. 맨날 괜찮다고해서 그런 줄만 알았어요. 다른 애들도 다 그렇게 하니까...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지, 아이가 진짜 괜찮았는지 주의깊게 살피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나의 의견을 묻는 어머님께, 나 또한 지금은 수능이고뭐고 아이의 멘탈 케어가 우선인 것 같다는 답변을 드렸다.

일단 모든 수업을 중단하고 이후의 공부와 진로는 아이에게 시간을 주고 맏겨보는 게 좋겠다는 결론이었다.





나는 D가 나쁜 마음으로 성적표를 조작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무서웠을 것이다. 그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된 듯한 느낌이었을 것이고 부모님의 낙담이 두려웠을 것이다.

그렇게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만들어낸 거짓은 눈덩이처럼 불어 걷잡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시기가 어떻든 멈추는게 맞았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얼굴을 보고 수업을 마무리 짓고 싶었지만 '아이가 도저히 선생님 얼굴을 뵐 수 없다'고 하여 결국 수업은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행복은 당연히 성적순이 아니다.

하지만 성적이 행복한 삶의 필요조건 정도는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 조차 아니라면 12년을 '공부'에 매진하는 우리 아이들의 노력이 너무 허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우수한 것만은 아니고 꾸준히 성적이 오르는 학생만이 노력했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이 방법의 차이이든 정성의 차이이든, 나름의 노력을 했음에도 그게 못미치는 결과는 항상 나올 수 있으니.

학생이라는 신분 안에서 자신을 증명해 낼 수 있는 일이 공부 이외에 많지 않다는 걸 잘 알고있지만, 그래도 그것으로 아이들의 자존감이나 주체성이 흔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성적은, 행복으로 가는 하나의 요긴한 수단일 뿐이니까.


작가의 이전글 임산부 좌석에 관한 고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