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날과 같은 산책길이었다.
사회성이 없는 나의 강아지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시비를 걸어대는 걸 말리느라 진이 빠지고 있을 즈음, 저기 앞에서 한 할머니가 가만히 한 나무 앞에 서 계시는 걸 봤다.
혹여나의 강아지가 할머니에게도 달려들까 싶어 조심조심 옆을 지나가고 있는데 할머니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우리를 응시하시더니 "아유 강아지가 참 예쁘네요. 자그마하니"하셨다.
역시나, 본인에게 관심을 가지자마자 또리는 맹수 놀이를 시작하였고 나는 얼른 그를 안아 올리고 감사하다고 그런데 저희 강아지가 사회성이 없고 겁이 많아 먼저 이렇게 시비를 걸곤 한다고 말씀드렸다.
"건강해서 그래, 건강해서. 괜찮아요"
할머니는 그렇게 말씀하시고는 다시 나무로 눈길을 돌리셨다.
이대로 이야기가 끝난 건가 싶어 엉거주춤 뒤에 잠시 머물고 있는데 할머니께서
"저기 아가씨, 나 미안하지만 이 나무랑 사진 하나만 찍어줄 수 있을까요?"라고 물으셨다.
한 손에 버둥대는 강아지가 있긴 했지만 사진 찍는 일쯤이야 남은 한 손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니 "네 그럼요, 맘에 드시는 곳에 서주세요"했다.
할머니는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잠시 옷매무새를 다듬으시고 한 손으로 다정히 나무를 감싸며 누구보다 예쁘게 웃으셨다.
가로로 또 세로로 나름 최선을 다해 촬영을 한 뒤에 결과물을 보여드렸는데 아주 잘 나왔다며 좋아하시는 모습에 조금 더 열심히 찍어볼 걸 그랬나 하고 아쉬워하고 있을 찰나 그녀가 말했다.
"여기에 우리 강아지를 묻었어요. 일 년 전쯤인가 그랬던 것 같아. 나랑 18년을 함께 산 아이였는데... 나도 지금보다 훨씬 젊을 때 데려와서 매일을 함께했는데 일 년 전에 먼저 갔어요. 화장을 하고 어디에 묻어줄까 하다가 우리 애가 산책 때 제일 좋아하던 이 나무가 생각나서 여기에 뿌렸어요. 그 이후에 나도 이사를 가서 지금은 이 아파트에 살지 않지만 이렇게 가끔 보러 와요. 여기 오면 같이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 우리 영감은 그렇게 적적하면 하나 더 데려와 키우자고 하는데 이제 자신이 없어요. 새로 데려온 아이도 내가 묻어줄 수 있다는 확신이 없어. 혹여나 내가 먼저 가버리면 남겨진 아이는 어떡하나.... 사람도 이렇게 힘든데, 내가 먼저 가고 없어지만 우리만 바라보고 사는 강아지는 오죽 무섭고 힘들까 하는 생각에 엄두가 안나...."
당시 나의 강아지는 4,5살 남짓이었기에, 나는 그때까지 또리가 나의 곁을 떠날 수 있다는 생각이나 혹여 내가 잘못되어 나의 작은 강아지가 혼자 남겨질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럴 수도 있지, 그럴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며 한동안 멀거니 나무만 바라보던 내게 할머니는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저쪽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셨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그곳으로 가서 사진을 남기신다는 할머니는 지금도 당신만의 의식을 치르고 계실까.
5년 여가 흐른 지금, 무성히 가지를 뻗는 수많은 나무들을 보니 단정하고 다정했던 그녀와 얼굴 한번 본 적 없지만 여전히 그 나무 아래서 할머니를 반기고 있을 강아지가 떠올랐다.
언젠가 눈부신 무지개다리 아래서 꿈결같이 재회할 그들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