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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영호 Jun 12. 2023

일 년 열두 곳

The birth of Life(삶∞나) Nomad #2



이별, 그리고 눈물


2010년 12월 21일



부모님이 당신에게 원하는 삶과 당신이 추구하는 삶이 완전히 상반되어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만 할 때, 그래서 원하는 삶을 구현하는 일이 부모님에게 상처를 주는 일일 수밖에 없을 때,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부모님의 바람과 상관없이 당신의 생각대로 밀어붙이겠는가? 아니면 부모님을 생각해서 자신의 꿈을 포기하겠는가?


부모님은 1도 신경 안 쓰고 철저히 내 마음대로 하던, 심지어 일부러 반대로 하던 비뚤어진 시기가 있었다.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과 깊은 미움 때문이었다. 10대 말부터 가출을 일삼은 것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해외로 나가 살기 시작한 것도, 항상 살 곳에 도착하고 나서야 집을 떠난 사실을 알린 것도 그런 악감정과 관련이 있다.


그래서 독립과 자유를 추구하는 듯 보였던 당시 내 삶은 내 자유의지의 발로였다고, 진짜였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그것은 아버지의 억압에 대한 반작용이었으며 복수를 위해 설계한 억지 연극에 더 가까웠다. 더 나아가 그것은 헛된 욕망을 통제 못하고 계속 사고를 치는 자신으로부터의 도피였으며 스스로에게 내리는 형벌이었다.





사람이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고맙고 다행인 일인가? 변하지 못하고 하던 대로만 살아야한다면 삶은 얼마나 지루하고 후회스러울 것인가? 10년간 계속된 방랑과 고생은 나를 약간이나마 철들게 했다. 1998년 해외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정착한 것은 부모님을 위한 결정인 동시에 나 자신을 위한 삶의 변화였다.


당시 두 동생이 나를 따라 뉴욕에서 같이 살고 있었는데 어머니를 위해 장남인 내가 한국에 있어야겠다 생각했다. 자식 이상의 존재인 큰 딸과 떨어져 지내며 마음고생을 하시던 장모님도 배려해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 지구 핵까지 뚫고 내려간 자존감을 회복할 기회를 주어야 했다.


그로부터 십년 후, 나는 또다시 불확실성 가득한 부모님이 싫어하는 삶의 방식으로 귀환하려 한다. 그러나 적어도 이번에는 반항이나 도피가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번에는 순수하게 내 욕망을 따르는 것이며 진짜 나와 진짜 삶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내가 부모님과의 이별을 괴로워하고 그들을 걱정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부모님을 실망시키고 뜻을 거역한다는 이유로 내가 결정한 인생의 길을 포기할 생각은 여전히 없다. 부모님이 많이 아프거나 거동이 불편해서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면 나는 독립적 인간으로서의 꿈과 이상을 쫒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게 나를 이 세상에 나아준 부모님께 보답하는 길이고 인간의 도리라 믿는다.  


그런 믿음에도 내 마음이 흔들리고 부모님에게 죄송함을 느끼는 것은 그분들 입장에서 생각하고 감정에도 공감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이야기를 들은 장모님은 한동안 말씀을 하지 못하셨다. 그리고는 눈물까지 훔치며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더 이상 숙경이(수지)를 자네와 살게 하고 싶지 않네." 


가끔 당신이 귀하게 키운 딸을 데려가 고생만 시킨다고 하신 적은 있었지만 이토록 솔직하고도 강력하게 속마음을 표현하시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얼마나 상심하셨는지 말해주는 대목이었다. 우리가 왜 이런 삶을 추구하는지 수지가 열심히 설명을 드렸지만 ‘또다시 떠돌이가 되려 한다.’는 당신의 시각을 바꿀 수는 없었다. 





내 쪽 부모님의 반응은 더 심했다. 특히 아버지는 내 의지를 꺾으려는 듯 계속 나는 공격하고 상처 주는 말씀을 하셨다. 그런데 예전 같으면 내 감정을 건드리고 폭발하게 만들었을 말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졌다. 내 마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얼음처럼 냉정하고 평온한 상태를 유지했다. 그런 내 모습에 아버지는 더 화가 나셨다.


원래 더 시간을 갖고 어머니와 많은 얘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당장 나가라는 아버지 고함에 야심한 밤 서울로 향하게 됐다. 그날따라 왜 그렇게 안개가 짙게 끼었던지. 어느 때보다 불투명해진 내 미래를 상징하는듯 보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내 생각과 감정은 흔들리지 않았다. 나 스스로 냉정함과 차가움에 놀라고 실망할 정도였다.


하지만 출발 며칠 전 어머니와 통화할 때 내 감정은 요동쳤고 한꺼번에 폭발했다. "영호야. 엄마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지? 나는 너를 믿어. 그러니까 내 걱정 하지 말고 숙경이랑 행복하게 살아." “엄마. 고마워요.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제 꿈을 이루고 성공해서 안정적으로 사는 모습 보여드릴 테니 그 때까지 꼭 건강하세요.”





내가 사회와 부모님 곁을 떠나는 것은 그들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책임감이 없어서도, 현실 도피도 아니다. 더 늦기 전에 세상이 살라고 강요하는 삶이 아닌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을 찾고, 사회와 관습에 의해 만들어진 내가 아닌 진짜 나를 만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선 나를 구속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멀어져야 한다. 


나는 부모님이 원하는 방식도 사회가 원하는 방식이 아닌, 내가 정한 나만의 방식으로 내 꿈과 이상을 향해 나아가고 싶다. 자신의 욕망에 더없이 솔직한 태도로 끊임없이 더 큰 자유를 향해 나아가며 내가 가진 고유성으로 세상을 넓히고 영혼 충만한 삶으로 세상을 채우고 싶다. 안정과 행복에 이르는 새로운 길을 만들어내고 싶다. 


그곳에 이르기 전에 부모님과 영원한 이별을 할 수도 있다. 어렵게 그 꿈을 이루어내더라도 끝내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면 두렵고 서글퍼진다. 하지만 어쩌랴. 그것이 나의 인생인 것을. 어떤 미래가 오든 나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두 눈에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은 그런 자각과 운명애에서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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