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거진 ] 불운에 대처하는 유쾌한 견해
‘ 돈 십억 정도는 걍 껌값이래! ’
‘ 무슨 껌을 십억 원어치나 씹어.. 턱 부러져 죽겠네. ’ 난 처음에는 귀 담아 듣지도 않았다. 평소 구라뻥으로 악명 자자하던 동창 놈이라 또 그러려니 했다.
홍대 입구 어디쯤으로 기억하는데 요즘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투 뭐라는 꼬치구이 집이다.
나는 심드렁하게 핀잔주며 술집 TV 화면 속 젊은 김완선이 춤추며 부르는 ‘삐에로가 좋아’ 만 보고 있었다. 완선아 뭐가 그렇게 좋니? 아무튼 네가 좋다니 나도 좋다.
‘ 영화 제작비 필요하다며? 진짜라니까. 너한테 좋은 정보 주는 거야. 유명 월간지 하나를 폐간시켜 버렸대. 자기한테 안 좋은 기사 썼다고. 왕이야 왕. ’
‘ 생각해 줘서 고마운데 술이나 마셔. 이모~ 여기 병맥 둘, 소주 둘이요. 생각해 주는 김에 아름답게 오늘 술값 네가 내라. ’
‘ 그 원로 영화배우 있잖아? 그 사람이 하는 영화사에 수 십억 (요즘 기준이라면 수백억) 투자했다더라. 네가 찾는 스폰서가 그런 사람 아니냐? 내가 볼 때 딱인데. ‘
내가 거기서 흔들린 것 같다. 하는 작품마다 폭망해 자금난에 허덕이던 모 영화사가 갑자기 여러 작품을 라인업 해 영화판이 쑥덕였는데, 이 놈이 우리 바닥 얘기를 어떻게 알지?
‘ 걔 이름이 뭐라고? ‘ 녀석의 말에 관심이 없던 터라 정 씨라는 성만 얼핏 기억나 물었다.
‘ 에라이~ 이제 좀 솔깃해지냐? 자금력 엄청나고, 상대가 마음에 들면 막 쏜대. 정관계를 주름잡는 밤의 대통령이래. 김태촌도 그사람 휘하에 있다드만. ’
‘ 그니까~ 걔 이름이 뭐냐고?’ 알카포넨지 말론 브란돈지. 이름 말이야. ’
‘ 영화배우 회사 말고 다른 투자처도 찾는다던데.. 왜 유명한 액션 감독 있잖아? 그 감독이 그 회장 전화받고는 흥분해 과도로 면도하고 맨 발로 달려갔대. 넌 모르냐? ‘
그 대목에서 난 이 자식이 어서 유언비어나 줏어 듣고 와 구라 치는 게 아니란 걸 직감했다. 감독 얘기는 나도 알고 있었다. 그 의문의 인물이.. 그 사람이라고? 그러자 조급해졌다.
‘ 너 빨리 말 안 할래? 뭐 이런 웃기는 닭꼬치 같은 놈이 있나! ‘
‘ 그러고 보니 꼬치가 부실하네. 그리고 오늘 소주가 좀 쓰다. ‘
‘ 여기 닭똥집 곱빼기.. 아니 특 모둠으로 추가! 복분자주도 네 병 줘요! 오늘 내가 쏜다! 누구냐고? 다시 이름 얘기 해봐. ’
‘ 얌마, 열 번은 더 얘기했어. 넌 내 말에 집중하지 않는 아주아주 안 좋은 버릇이 있다. ‘
‘ 무슨~ 아냐 아냐... 난 네 말 한마디 한마디를 금과옥조로 새겨듣고 있거든. 진짜, 레알. 그 회장님이라는 분 존함이 어떻게 된다고? ‘
구미가 당길수록, 조급할수록 포커 페이스 해야 되는데 난 태생적으로 그게 잘 안된다. 앞뒤 안 가리고 무대뽀로 들이댔던 게 내가 지은 인생의 죄라면 죄요, 업보다.
‘맨땅에 헤딩’ 오리진의 기록, 그 강렬했던 첫 번째 헤딩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