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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니김 May 31. 2024

우라까이

올케 사랑

  손끝 야무진 올케의 손이 닿으면 모든 것이 정돈되고 예쁘게 변했다. 음식을 접시에 먹음직스럽게 담기, 밥상에 수저 반듯하게 놓기. 빨래가 끝나면 모서리 팽팽하게 잡아당겨 바르게 펴고 접어 손바닥으로 탁탁 내리친 후 허공으로 한번 냅다 휘둘러 널기 등등 살림의 기본기를 내게 알려주곤 했었다.

  노부모와 시동생 시누이까지 있는 대가족의 장남에게 시집간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 그녀는 혹독한 시집살이를 미리 겁먹고, 결혼 전날 밤 긴 생머리를 스스로 싹둑싹둑 잘랐다고 했다. 얼마나 두렵고 서러우면 그랬을까? 혼인을 깨기 위한 극렬한 몸부림에도 나의 올케가 되었다. 결혼사진에는 그날의 저항 흔적은 면사포로 많이 가려져있지만 다 가리진 못했다. 


   올케가 시집오던 해 난 겨우 6살이었다. 어린 기억에 새엄마가 생긴 듯 설렜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그녀가 집안일을 할 때면 엄마는 내게 뭐라도 거들라는 눈치를 주곤 했다. 그녀가 맨드라미꽃으로 수놓으며 송편을 빚을 때 내가 옆에 앉아 꽃잎 하나하나 따주었던 일, 그녀와 함께 대청마루에 판 벌이고 홍두깨로 밀어 칼국수 만들었던 일 등은 내게는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놀이였다. 초등학교 입학식, 학부모회의 때 엄마 대신 올케가 학교에 오면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 할머니 같은 엄마보다 젊고 예쁜 올케가 학부모 자격으로 담임선생님을 만나는 것은 어린 내게 너무 신나는 일이었다. 


  중학교 입학을 앞둔 어느 날, 올케는 어디선가 낡아 물이 다 빠진 헌 교복 한 벌을 가져왔다. 설마 저걸 나보고 입으라고 하는 것은 아니겠지? 나는 외면하고 부정하며 도리질을 했다. 어마어마한 공사가 시작되었다. 헌 옷을 내 몸에 갖다 대고 팔의 길이, 어깨너비, 몸통 넓이를 재며 하얀 초크로 표시하고 허리 부분은 시침 핀으로 몸에 맞게 고정했다. 헌 옷은 수선해도 헌 옷일 뿐이야! 나의 불평은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고 허공으로 날아갔다. 중학교 입학하는 막내딸에게 새 교복 한 벌 해줄 형편이 못 되는 부모님이 세상에서 가장 미웠다. 

 올케는 그 교복을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뜯었다. 박음질로 이어진 부분을 면도칼로 정교하게 해체하고 한 올 한 올 실오라기를 제거해 나갔다. 마치 유물발굴단이 조각난 유물을 다루듯 천 조각을 한 장 한 장 정성스레 다루었다. 옷 만드는 과정을 완전히 뒤집어 다시 하는 거였다. 나는 뜯어 놓은 교복 천의 안과 밖이 다르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올케는 재봉을 시작했다. 안이 겉이 되고 겉은 안이되었다. 


  누군가 나만을 위해 온 정성을 다하는 일을 본 적이 있었던가? 올케의 손놀림에 헌 옷이 새 옷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마치 내가 허물을 벗고 새로 태어나는 것 같은 별난 느낌이 들었다. 이웃 사람들은 이마가 유난히 튀어나온 나에게 ‘앞뒤 꼭지 삼천 리 뺑 돌아간다 육천 리’라고 놀려댔었다. 농사일로 먹고살기 바쁘고 연로하신 부모님의 8남매 막내딸인 나는 뭐 하나 내세울 것 없는, 또래 아이들 틈에선 있으면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이란 눈곱만큼도 없었는데.. 


  드디어 새롭게 탄생한 교복을 입고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본 순간, 이전의 내가 새로 태어난 듯 기뻤다. 올케가 달아준 날개를 달고 난 뒤부터 친구에게 내가 먼저 다가가고, 수업 시간 선생님의 표정, 몸동작 하나하나까지 모두 기억에 새기며, 어떤 심부름도 웃으며 달려가는 나로 바뀌었다.

  사람도 ‘우라까이’가 가능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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