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리로 연구하는 나...
지도교수님은 학술적으로 정통 제자인 나를 못마땅해하셨다. 전통 주거 연구에 대하여 성실과 집중으로 일관하신 당신에 비해 나는 다양한 건축에 관심이 많아 설계도 하고 인테리어도 하는 잡식성이었고 술도 전혀 못하고 당최 애교도 없어서였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도교수님이 유일하게 허심탄회하게 학생들하고 어울리는 시간이 술자리였으니까 식사하는 1차에서 마무리된 나에겐 깊은 정을 주시기가 쉽지 않았나 보다 생각했다. 그리고 결국 지도교수님 퇴임 자리는 한 선배의 차지가 되었다. 나는 애써 '그래도 우리 연구실이니까 다행이다' 생각했다.
몇 년 후 지도교수님은 췌장암으로 세상을 뜨시기 전에 우리를 불렀고, 무거운 목소리로 나를 찾으시더니 바쁘냐고 물으셨다. 괜찮다고 말씀드렸더니... 당신이 하던 뜰집 연구를 함께 마무리해달라고 부탁하셨다. 명령과 침묵으로만 대화하시던 분의 처음이자 마지막 부탁이었다. 나는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몇 년 동안, 뜰집 연구는 진행되었다. 어떤 분야든 연구를 진행해보면 다 되었을 것 같은 그곳이 사실은 출발점인 경우가 많다. 뜰집도 마찬가지였다. 민가를 중심으로 하시던 지도교수님의 뜰집 연구는 거의 초반이라 논문을 몇 편 쓰면서 학계에 검증을 받아가며 거의 5년이 걸려서 완성하였다. 몇 번을 그만두고 싶었지만 내가 약속을 했으니까 해야 할 일인 것 같아서 했다.
그리고 또 찜찜하게 남은 숙제가 있다. 지도교수님이 남기신 오래된 슬라이드 필름이다. 나에게도 오래된 민가 답사 시절 필름들이 많이 남아있지만, 80년대부터 찍으신 지도교수님의 필름들이 책상 밑에서 몇 년 동안 나를 째려보고 있었다. 버리지도 무언가에 쓰기도 애매하여 한 번씩 쳐다보면 한숨만 쉬고 있다가... 최근 디지털화해서 자료화시켜 놓아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지금 슬라이드 필름 스캐너를 구입하고 필름을 닦고 있는 내 마음이 착잡하다.
몇 년전, 뜰집을 책으로 출간해서 건축계의 한 분에게 증정하러 갔더니, '의리가 대단하시네요...! ' 하는 말을 들었었다. 그때 나는 이것이 의리인가... 싶었다. 그런데 마지막까지 이러고 있는 걸 보면 의리가 있든 내 연구분야에 대한 도리든 책임감이든 어쩔 수 없는 힘이 나에게 존재하는 성 싶다.
-위 사진은 지도교수님의 첫 필름을 사진화 한 것이다.(80년대 제주 하기리 올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