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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네건축가 Apr 21. 2022

뜰집 이야기

내 자리가 바뀌어보면...

  어제는 햇살이 좋기에 산책을 나섰다가 길모퉁이 핀 함박 작약에 넋을 잃고 보고 있었더니 누군가 다가와 " 너무 이쁘지요~ 나도 5일째 이렇게 사진 찍으러 내려와요~~..." 하며 자신이 찍은 사진들을 줄줄이 보여줬다. 기쁘고 들뜬 마음을 누구와라도 나누고 싶었던 모양이다. 처음 본 사람이지만 우리는 휴대폰이 울릴 때까지 그렇게 잠깐 꽃 이야기를 나누었다.

  몇 년 전 식료품 마트에 들렀다가 소금 코너 근처에 서 있던 내게 누군가가  ".. 저 어떤 소금이 좋을까요?"라고 주저하며  물었다. 평생 살림을 아주 잘 해오셨을 것 같은 분이 누가 봐도 요리하고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내게 한 질문이라 좀 의아했지만.. " 아.. 네.. 뭐하실 때 쓰실 건데요? 저는..."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짧게 말씀을 드렸다. 그런데도 그분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시더니 " 이렇게 대답을 잘해주시는데.. 우리 며느리는 나하고 말을 안 해요.. " 하시더니 갑자기 며느리가 당신을 너무 멀리한다며 마음이 많이 아프다며 하소연을 한참을 하셨다. 그 내용이 너무 심각하였기에 갑작스러운 상황에 어쩌지도 못하고 그 이야기를 듣고 서 있던 장면이 생각난다. 

  각자 사정이야 있겠지만 모두가 다 외로워하고 있다. 당시에는 이야기 벗이 되어주는 봉사를 해볼까 생각한 적도 있다. 물론 나는 그럴만한 그릇이 못된다. 끈기나 성실, 지구력.. 하고는 거리가 멀고 다른 이의 마음을 나이가 들어서야 비로소 조금 헤아리게 되었다. 그래도 먼저 다가와서 이야기를 건네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시간이 쌓이면, 나도 희망을 가져봐도 좋을 것 같다. 

  얼마 전, 20대 후반인 아들과 오랜 친구를 잠시 본 적이 있는데, 아들이 내 친구에게 간단한 인사를 건네고는 시크하게(좋은 표현으로!) 앉아 있었다. 내가 속으로 좀 불편해하고 있으니까.. 친구는 웃으며 " 젊을 때 니 같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그렇다. 나는 잊고 있었지만, 어린 시절은 배려보다는 너무 많은 나의 세계에 빠져있어서 다른 것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을 정도이다.

  내가 있는 자리가 바뀌어 보니, 지인들의 반응이 각자 다르다. 뭔가 빨리 다른 맹렬한(?) 일을 찾아서 해주길 바라는 사람, 내가 그동안 하고 싶었을 것 같은 일을 추천하는 사람, 같이 뭔가를 해보고 싶어 하는 사람,... 그중에는 은근히 바쁘던 내가 할 일 없는 삶에 힘들어할까 걱정하는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그들을 쳐다보면서 갈 시간인 것 같다. 내가 이 시간까지 보살핌과 격려와 사랑을 누렸듯이 나도 그 마음으로 바라보려고 한다. 그릇이 작으니 미미하지만... 당신들의 소중한 삶을 귀하게 여기며 사랑하는 내가 있으니까 힘내시도록 바라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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