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아들의 여름휴가
우리 아들은 아주 어린 시절에는 아빠랑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했다. 대부분 그랬듯이 아빠가 바쁘기도 했지만, 아들이랑 놀아주는 걸 배우지 못한 낀 세대의 착오라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거의 모든 나들이나 여행을 엄마랑 둘이서 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러다 보니 정적인 활동에 치우친 경향이 있었다. 아들은 워낙 게임을 좋아해서 주말에는 온종일 방에 있었고, 나는 걱정이 되어 중2 때 남편에게 부탁을 했다. 매 주말마다 아들이랑 등산을 가달라고. 나는 워낙 운동에 잼뱅이고 등산은 엄두도 못 낼 체력이라... 나 대신 부탁한다고.
처음엔 둘 다 무슨 날벼락 맞은 사람들처럼 나를 쳐다보더니... 갖가지 장점을 읊조리니 남편이 먼저 항복했다. 그러나 아들은 거의 울먹이며 거부했다. 그래도 아들은 절대 반항은 못하고 산으로 따라는 나섰다. 집에 돌아와서는 온갖 지치고 불쌍해 보이는 인상을 쓰면서 다리 아프고 힘들다고 나에게 호소를 했다. 나는 아들에게 최선을 다해서 위로하고 칭찬했다. 두 사람의 등산 초반에는 인근 산(장산, 금정산, 윤산... 등)에 몇 번씩 다녀오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집에서 점점 먼 곳(가야산, 내장산, 계룡산, 주왕산, 지리산, 설악산... 등)으로 확장되어갔다. 몇 달이 지나서는 1박 2일의 산행으로 바뀌어갔다. 산도 점점 높고 험해지고 겨울에는 눈이 쏟아지는 설산에서 둘이서만 산을 내려온 적도 있다.
그즈음 중3 아들의 설움과 불만은 하늘을 찌를 듯했다. 자신은 아빠 안 닮아서 평발이고, 산은 정말 싫어하고, 주말에 쉬지도 못하고..., 불평하더니 급기야 왜 산이 있는지를 모르겠다고까지 했다. 아빠 말로는 산 아래에 내려와서는 언제나 먹을 것이 풍성하게 기다리고 있어서 먹을 때는 그나마 기분이 좀 낫다고 증언했다. 아무튼 우리는 그 기간에는 주말이면 아들에게 대단하다고... 훌륭하다고... 두 손으로 추켜 세우며 보냈다. 아들이 등산을 계속하게 하려고.
4년 전, 우리 가족은 바닷가에 여름휴가를 갔고 그곳에서 서핑을 배웠다. 모두 처음 하는 것이라 재미있게 배웠지만 실전이 문제였다. 나는 또 살짝 관람 모드로 들어갔고, 아빠와 아들은 제법 큰 파도를 타면서 반나절 배웠다. 아들은 금방 파도에 적응하며 보드에 타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하며 재미있어했다. 그런데 아빠는 왠지 보드를 들고 서서 파도를 쳐다보고 있는 시간이 더 길게 느껴졌다.
그날 저녁 아빠와 아들은 석양을 보며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무슨 얘기인 줄은 모르지만, 처음으로 그들의 '대화'라고 느꼈다.
아들이 다녀 간 저번 주에는 가족 대화 중에 한라산 이야기가 나왔다. 아들은 대학기간 동안 한라산을 5번이나 등반했단다. 산이라면 쳐다도 안 본다던 아들이 다른 친구들에 비해 자신은 산을 너무 쉽게 올라간다고 은근 자랑한다. 눈 오고 난 후 한라산이 정말 예쁘니까 아빠한테 같이 가자고 말한다. 엄마는 산 밑 카페에서 기다리면 된다고... ㅋ.
아빠는 아들 제안은 받아들이고, 이번 여름휴가는 시골에 가서 마당 잡초 정리도 하고 집수리도 좀 하자고 한다. 아들은 시골 벌레를 싫어하고 첩첩산중 시골이 좋을 리 없지만, 여름휴가의 반은 아빠와 지내고 나머지는 친구들을 만나겠다고 답한다. 둘은 일이 성사되자 씩 살짝 웃음 띈다. 아빠와 아들은 서로 자기 영역으로 초대를 하며 함께 할 기쁨을 기대하는 것 같다. 나는 마냥 편한 엄마와는 또 다른 그들만의 대화법이 균형을 이루어간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아들은 요즘 부쩍 "엄마 아빠는 참 좋은 부모다..." 라며 우리를 추켜 세운다. 우리는 생각한다,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