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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네건축가 Aug 16. 2022

식물들처럼 어우러져서 살아야

 어울렁 더울렁..


  서울 중부지방에 비가 많이 내려서 미안한 친구에게 오랜만에 용기를 내어 전화를 했었다. 친구에게 만나러 가겠다고 헛공약만 남발하고 몇 년째 집을 떠나지 못하고 있어서 이제는 정확한 일정이 정해지기 전에는 전화도 못하겠다고 자조하고 있던 터였다. 코로나에 대한 공포와 아직 혼자서 며칠 동안 서울에서 머물기는 나의 체력이 믿음직하지 못하여 여행 계획을 몇 번 취소해왔다.  

  내 친구는 역시 씩씩하고 반가운 목소리로 나를 맞았다. 잘 지내고 있다고 이번 비도 큰 문제는 없다고... 아들 @훈이도 아주 많이 나아졌다고... 정말 기분 좋은 톤으로 행복한 웃음을 실어서 답을 했다. 그리고 여전히 너무 바쁘다고 했다. @훈이가 일주일에 3번 물리치료받아야 하고 저녁이면 엄마가 꼭 있어야 하니까 일주일이 너무 빨리 지나간단다. 아픈 데는 없는지 물었더니 자기는 다행히 너무 건강하단다.

  



  대학교 같은 과였던 이 친구는 30여 년 전, 그때부터 남달랐다. 깊이 파인 볼우물에 웃는 모습이 환하게 예쁘고 무슨 일이든 척척 해내는 능력자이었으며 마음까지 너그럽고 고왔다. 옆에 있으면 사람들을 편하게 해 주고 기분 좋은 에너지를 주었다. 그래서 인기도 많았고 학과 선배와 CC였으며 대학 졸업하고 일찍 결혼했다. 일찍 결혼한 친구가 모두의 길잡이가 되듯이 우리는 그 친구의 행사에 있을 때마다 열심히 쫓아다녔다. 얼마 후 첫 아이를 낳은 친구를 보러 놀러 갔었는데 계속 아이가 울었다. 철없던 우리는 우유를 줘도 먹지 않고 울기만 하고 달래도 울기만 하는 아이 때문에 친구가 우리랑 오래 얘기도 못하고 일찍 헤어져야 했던 아쉬운 기억이 있다.  

  그리고 몇 년 후, 그 친구가 두 아이를 데리고 우리 집에 놀러 왔다. 나는 적잖이 놀랐다. 친구의 큰 아이는 다운증후군이었다. 다행히 나는 아들을 공동육아 형태로 하고 있어서 다양한 아이들을 많이 접하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친구는 그동안 아무에게도 이야기를 하지 않고 혼자 다 감내하며 설계사무실까지 다니고 있었다. 놀라운 것은 그 이후이다. 친구의 삶은 여전히 밝고 신나며 다른 사람들을 돕는 아름다운 시간들로 채워졌고, @훈이는 누구보다도 많은 사랑을 받으며 밝게 자라서 천사 같은 모습이다.  이제 서른 살 @훈이는 크는 동안 심장수술 2번을 했고 수많은 병치레를 거쳤으며, 3년 전에는 뇌출혈로 쓰러졌지만 친구의 극진한 사랑과 간호로 다시 휠체어에라도 앉게 되었다. 의사는 기적 같다고 한다.


  친구는 언제나... 엄마라면 다 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녀의 삶이 한 번씩 너무 벅차게 느껴질 때는 우리는 모두 좀 나눠지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사회는 전체적으로 많이 부유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장애우들에게 여전히 냉소적이고 모든 교육과 돌봄은 그 가족만의 몫이다. 장애우를 위한 시설 투자를 낭비라고 여기고 그들과 함께하는 느린 성과들을 비효율이라는 잣대로 매김 한다. 발전은 누구만을 위한 발전이 아니어야 하는데... 어리석게도 우리는 늘 자기중심적인 속도와 효율을 강조한다. 

  많은 것을 누리고 있는 이익집단들은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 사회적 희생을 초래하며 권력행사를 해왔는데도, 장애우들이 생존권을 위해서 우리의 불편을 초래하면 온 세상이 떠들썩하게 비난하는 여론이 있다. 우리는 정말 장애우( '친구')라고 생각하는가 묻고 싶다. 우리 모두도 잠재적 장애우임을 꼭 상기시켜야 하는지...  




  우리는 들판의 야생화들처럼 각자의 모양으로 서로 존중하며 살 수는 없는 것일까.  예쁘다고 땅을 더 차지도 않고 색상에 서열이 있는 것도 아니고 키 순서로 권위가 서는 것도 아닌... 각기 나름대로의 삶의 방식에 의해서 존재하고 서로 어울렁 더울렁 모여서 의지하며 지내는 일생이면 얼마나 더 좋을까. 




  다행히.. 내겐 훌륭한 친구들이 있어서 내게 묻는다, 너는 제대로 생각하고 의미 있게 살고 있는지... 야생화들을 돌아보며 친구 생각이 떠오른 지금... 나는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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