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 진단을 받다.
암 진단을 들은 순간, 세상이 멈춰 선것 같았다. 의사 선생님이 차분히 설명을 이어가고 있었지만, 그 말들은 하나도 귓가에 닿지 않았다. 백지 같은 머릿속에는 “왜 하필 나인가”라는 의문만이 무겁게 떠올랐다. 평소 잘 먹고, 잘 자고, 감기 하나조차 쉽게 걸리지 않던 내가 암이라니. 믿기 어려웠고, 받아들이기조차 두려웠다.
처음 진단을 받은 뒤에는 구순이 넘은 친정엄마와 형제들에게 차마 알리지 못했다. 괜한 걱정만 안기게 될 것 같아 마음이 걸렸기 때문이다. 직장 동료들에겐 업무상 어쩔 수 없이 설명해야 했지만, 가족에게만큼은 그 말을 쉽게 꺼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이 사실은 형제들과 가까운 이웃들에게까지 알려졌고, 예상과 달리 그들의 진심 어린 위로와 격려는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큰 힘이 되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던 떨리는 목소리, 걱정과 응원이 뒤섞인 말들, “괜찮아질 거야” 그 모든 따뜻함이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강한 에너지를 건넸다.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것, 누군가와 마음을 나눌 때에야 비로소 용기와 힘이 생긴다는 오래된 진리를 그때 다시 깨달았다. 그래서인지 누군가는 ‘병은 소문을 내야 한다’고 말한다. 주변에 알림으로써 정보도 얻고, 덤으로 가슴을 데워주는 온기도 얻기 때문이다.
2025년 3월 28일, 2년마다 돌아오는 국민건강검진을 받았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는 만 65세 이상 농협 조합원에게 정밀건강검진 티켓을 제공하는데, 조합원 배우자인 나에게까지 뜻밖에 그 차례가 돌아왔다. 사실 나이는 아직 60세라 대상이 아니었지만, 이유를 알 수 없는 순번의 밀림 덕분에 나까지 혜택을 받은 것이다. 돌이켜보면 이 우연은 단순한 행운이 아니라, 미리 준비된 보호망 같았다. 그때가 아니었다면 유방 초음파라는 검사 자체를 받아보지 않았을 터였다.
창원의 한마음병원에서 받은 초음파 검사는 유난히 오래 이어졌다. 담당 여의사 샘은 같은 부분을 반복해 비추며 표정을 굳히는 모습에 불안이 스며들었다. 잠시 후 “상급병원 진료가 필요하다”는 소견과 함께 영상자료를 건네받았다. 그래도 딱히 아픈 곳이 없다는 생각에 며칠을 미루다 부산의 순병원 유방외과로 예약을 잡았다.
4월 7일, 초음파를 다시 확인하던 의사는 조직검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 말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진료 당일 바로 조직검사를 받았고, 일주일 뒤인 14일 보호자와 함께 오라는 전화가 온 순간 이미 마음은 결과를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검사 결과는 ‘왼쪽 유방 악성종양.’ 의사가 그림을 그려가며 병의 위치와 진행 정도를 설명했지만, 그 설명은 머릿속에 단 하나도 남지 않았다. 나는 의자에 앉아 있었지만 마음은 텅 빈 공간을 떠도는 것만 같았다. 병원에서는 즉시 산정특례 신청을 도와주었고, 그제야 비로소 “내가 환자가 되었구나” 하는 실감이 밀려왔다.
산정특례제도는 중증질환자의 의료비 부담을 크게 줄여주는 제도라고 했다. 5년 동안 진료비의 약 5%만 내면 된다는 설명을 들으며, 우리나라 의료보험 제도의 든든함을 다시 느꼈다. 매달 꼬박꼬박 납부하며 가끔은 아깝게 여겼던 보험료가 사실은 이런 순간을 위해 존재해왔다는 걸 깨달았다.
순병원에서는 소견서와 검사 결과, 영상 CD까지 꼼꼼히 챙겨주며 최대한 빨리 수술을 받을 것을 권했다. 부산의 상급병원을 추천받았지만, 남편과 아이들은 서울에서 치료받기를 원했다. 가족이 있는 곳에서 더 안정적으로 지지받을 수 있다는 이유였다. 결국 나는 그들의 손을 잡고 서울에서 치료를 받기로 결정을 내렸다.
주변에는 암을 극복하고 활기차게 생활하는 친구들이 있다. 그들을 보며 ‘암이라고 해서 모두 절망할 필요는 없구나’ 생각했지만, 막상 나 자신이 그 상황에 놓이니 그렇게 가벼운 문제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초기에 발견된 암은 완치율이 높고, 요즘 의술은 정말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고맙게도 여러 사람의 조언과 응원은 내 두려움을 덜어주었다.
이제는 운명을 하늘에 맡기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치료를 받아야겠다고 다짐한다. 건강한 음식을 먹고, 마음을 단단히 붙들고, 긍정적인 태도로 임하려 한다. 이 모든 시간이 다시 건강을 되찾는 과정이라 믿으며. 그리고 무엇보다, 혼자였다면 더 힘들었을 이 시간을 함께해 준 가족과 지인들의 존재가 큰 위로가 되었다. 병은 혼자 앓는 것이 아니며, 누군가와 나누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시작된다는 것을 몸소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