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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無)를 나누어 만든 세계

우리는 벽을 만들고, 그 안을 존재라 불렀다

by 태식

절대적인 것은 없었다.

우리가 가진 건,

단지 나눈 것들뿐이었다.


시간도,

공간도,

빛도.


모두 무(無)를 나누며 생겨난

감각의 잔상이었다.


우리는 그것들에 이름을 붙였다.

질서라 불렀고,

법칙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 시작은 언제나

‘없음’이었다.


텅 빈 무 위에

선을 긋고,

기준을 세우고,

벽을 세웠다.


그렇게 우리는

차이를 만들었고,

그 차이 속에서

존재를 상상했다.


‘공간’이라는 단어를 생각해본다.

한자로 空間,

‘빌 공(空)’과 ‘사이 간(間)’.

텅 빈 것에 틈을 내고,

무(無)에 경계를 세운 것이다.


그 순간부터,

존재하지 않던 곳이

존재하는 곳처럼 인식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절대가 아니었다.

오직

관계 속에서만 드러나는 현상이었다.


질량이 생기면

시간은 느려지고,

빛은 휘어지며,

공간은 구부러진다.


우주는

절대적인 틀 안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나눈 틈 사이에 떠 있는

망상에 가깝다.


그리고 그 망상 위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끊임없이 나누며,

끊임없이 정리하며,

끊임없이 의미를 부여하며.


존재는

절대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다.

그저

나눈 흔적들의 조합일 뿐.


절대는 없었다.

우리가 가진 건,

무(無)를 나누는 행위와

그 위에 세운

허약한 실재뿐이었다.


누군가 말했다.

“타인이 없이는, 나를 설명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나는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결국

존재란 것도,

나란 것도,

무를 나누어 만든

또 하나의 틈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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