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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엽 감는 새를 생각하며

태엽 감는 새 연대기 273 페이지까지

by 아라베스크


이번 민음사의 태엽 감는 새 연대기 특별판 273페이지까지는 연대기 1부에 해당하는 도둑 까치 편까지이다. 198(Q)4년 6월에서 7월까지란 시간 배경을 갖고 있고 더위와 따분함이 기묘한 사건들과 혼합되어 아포리즘을 선사한다. 남긴 선물이란 텅 빈 위스키 상자.



예전 문학사상사 일 권에 속하는 분량이고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이다. 꿈과 우물 이야기는 와탸아 노보루를 잊게 하고, 여자와 성적 욕망은 남자의 본바탕과 혼합하여 삶을 축소한다. 나는 그것이 이야기라고 생각하는데, 이야기는 나에게 중요한 걸 잊게 하고, 많은 걸 재단하여 축소시켜 보여주기 때문이다. 도둑 까치는 그래서 아름답다. 그리고 그것이 아름답다.



나는 이번에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오자히르도 같이 다시 읽었다. 둘을 비교하는 건 흥미롭기 때문이다. 특별한 사건과 평범한 갈등 (태엽 감는 새) 평범한 사건과 특별한 갈등이 (오자히르) 같은 1인칭 시점의 성격을 달리했다. 오카다 도오루는 작가가 자길 표현한 것처럼 느리다. 오자히르의 성공한 작가가 아무도 아닌 사람이 되어 가는 과정, 선택받아 영성을 지닌 사람이 에스테르란 여인을 알아가며 자신을 알아가는 (탈무드의 굴뚝 청소부, 오자히르 본문의 소방수들 이야기 교훈) 속도감과는 차이가 난다. 당연 소설 분량도 차이가 난다. 그러나 더 빨리 읽히는 쪽은 태엽 감는 새다. 인물의 깨달음을 이해하는 게 아니라 독자가 사건과 대화를 생각하게 하고 의미를 주관적으로 해석하게 한다.



내가 여기 273페이지까지를 처음으로 읽었던 20대 초반엔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건 가사하라 메이가 바보라 부르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이 내게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걸 이해하는 것이 진정 보다 나은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일까? 문학으로 나를 생각하는 건 아무도 아닌 사람이 에스테르로 스스로를 이해하는 것과 닮아 있고, 와타야 노보루를 찾으러 다니는 걸로 구미코를 이해하는 과정과 같다. 그러나 가치는, 예전과 다름없이 지금도 가치는 항상 날 혼란하게 한다. 나는 벗겨지는 피부와 거기에서 뚝뚝 듣는 새빨간 피를 연상하며 미친 사람이 장님을 이끌고 다니던 세상을 떠올린다. 나는 과연 그 세상에 없는 것일까? 그 세상에서 미친 사람은 아닌 것일까?



태엽 감는 새. 이해와 깨달음으로 종이에 긁힌 마음을 대하는 지난 시간이 무엇이었는지 덕분에 헤아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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